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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오 Feb 09. 2022

런던으로 이민 간 고려청자 (1)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을 통해 본 우리 도자기의 디아스포라




런던에는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 상업 갤러리들이 곳곳에 즐비해 있다. 이뿐만 아니라 런던은 수없이 많은 오페라, 뮤지컬 하우스들을 비롯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들이 천지사방에 널려 있는 도시이다.


대표적인 런던의 박물관 및  유관 전시관들 (출처: speakup london facebook page)


그도 그럴 것이 영국 런던은 가장 먼저 산업혁명을 이루어 월등한 생산성을 바탕으로 상업의 발전을 이룩하고, 그로 인한 빠른 중산층의 성장과 함께 대중의 문화 향유가 자연스럽게 자리한 도시였다.


19세기 중반 이후 기록들을 살펴보면, 서커스, 이국적인 볼거리, 파노라마(panorama)와 디오라마(diorama), 벌레스크(burlesque) 등 각종 문화가 판(?)을 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오늘날 런던에수준 높은 문화 공간들이 많은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일 것이다.


Crowd at Charlie Keith's Circus, mid-19th century, Bradford, England. © Victoria and Albert Museum,


그중에서도 전 세계에서 '공예'라는 중심 주제를 갖고 1852년도에 설립되어 사우스 켄싱턴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은 입장하면서부터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를 만큼 화려한 작품들로 가득 찬 곳이다. 중세의 유물에서부터 바로크 시대의 장식품은 물론 일본 헬로 키티 오브제들까지(?) 정말 없는 것이 없는 특이한 박물관이다. 심지어 공간도 무지막지하게 커서 다 둘러보려면 밥을 단단히 챙겨 먹고 시작해야 할 정도이다.


2018년 어느 날 내가 직접 찍은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이 중정에서 본 건물 사진


그런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의 4층에는 도자기로 가득 찬 전시실이 이어지는데, 136번 방에서부터 142번 방이 대표적인 공간들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많은 한국 여행객들이 예상치 못한 정체(?)를 마주하게 된다.


ㄴㅇㄱ



.

.

.



바로 쇼케이스를 층층이 가득 채운

고려청자들이다!


2018년 어느 날 내가 직접 촬영한 사진
2018년 어느 날 내가 직접 촬영한 사진
2018년 어느 날 내가 직접 촬영한 사진





교과서에서도 본 적 없는 수많은 종류의
고려청자는 왜 바다 건너 런던에
 이렇게 잔뜩 진열되어 있는 걸까?

그것도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도 않는
꼭대기층에 다닥다닥 붙어서 각자의 매력은
 뽐내지도 못한 채 건조하게 서 있는 걸까?




나는 막연한 궁금증을 갖고 우리나라 고려청자의 이민 역사를(?) 찾아보기 위해 조사에 나섰다.


그리고 이 중 대다수가 오브리 르 블론드(Aubrey Le Blond)라는 사람과 엘리자베스 르 블론드(Elizabeth Le Blond)라는 사람의 컬렉션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더 자세한 내용을 추적하기 위해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의 기록 자료들이 모여있는 아카이브 센터로 직행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1918년도에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서 발간한 『르 블론드 한국 도자 소장품 도록』*은 유럽 박물관에서 최초로 출간된 한국 도자 도록이다.

*Catalogue of the Le Blond Collection of Corean Pottery


여기에는 삼국시대의 도기, 고려청자, 조선백자 등 백 여 점이 넘는 한국 도자의 사진뿐만 아니라 도자 부서의 큐레이터 버나드 랙햄(Bernard Rackham)을 비롯한 영국인 연구자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한 한국 도자에 관한 글도 실려 있다. 때문에 20세기 초 영국인의 시각에서 서술된 한국 도자에 대한 평가와 인식이 반영되어 있어 서양의 한국 도자 수집 역사를 연구하는 데 의미가 큰 사료이다!


르 블론드 한국 도자 컬렉션 도록 첫 장




그렇다면 이 도록의 제작을 가능하게 했던
'르 블론드 한국 도자 컬렉션'의
주인이었던 '르 블론드'는 누구이며,

언제, 어떻게, 많은 양의 한국 도자를
수집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일찍이 19세기 말엽부터 한국에 대한 서양인들의 관심은증대되고 있었으며, 한국(당시, 조선)에 여행 온 서양인들은 문명화된 자신들과 다른 미지의 나라를 탐구하려는 민족지학적(ethnographical) 호기심으로부터 조선 사람들이 사용한 각종 생활용품을 수집하였다.


1890년대를 전후로 하여 한국 유물을 수집한 대표적인 인물들은 영국공사로 조선에 파견된 윌리엄 애스턴과 토마스 와터스가 있다. 특히 와터스는 문갑을 비롯한 가구류, 담배함 등의 은입사 공예품 등을 수집하여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Given by Thomas Watters Esq. Image courtesy of V&A. (1839:1-1888)
Given by Thomas Watters Esq. Image courtesy of V&A. (1842-1888)



이후 20세기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의 도자를 수집하여 상당한 규모의 컬렉션을 형성한 수집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의 큐레이터 와일드(Wylde)는 일찍이 1912년부터 한국 백자를 수집하고 한국 소장품을 확대하는 데 집중하였다.



Purchased from Kavanaugh & Co, Seoul; by ceramics curator C. H. Wylde. Image courtesy of V&A. (1912)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영국인 여행가 부부였던 오브리 르 블론드와 엘리자베스 르 블론드는 1912년부터 1913년까지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를 여행하는 과정에서 조선을 방문하였고, 조선의 각 지역을 여행하며 100점이 넘는 다량의 도자를 수집했다. 그리고 이들의 컬렉션을 통해 1914년에 영국에서 최초로 한국의 도자만을 주제로 한 《르 블론드 한국 도자 소장품》전시가 열렸고, 이를 바탕으로 1918년에 한국 도자 도록이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이전까지 한국의 도자기는 영국 사회에 소개되었더라도 중국 도자의 일부로 오인되거나, 잘 알지 못하는 극동의 민속품 정도로 취급되었었다. 하지만 르 블론드 한국 도자 컬렉션의 등장과 함께 20세기 초 영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한국 도자가 예술품으로서 소개되며 영국 내에서 한국 도자의 위상이 높아졌고 한국 도자를 본격적으로 연구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나타났다.


그만큼 영국을 비롯한 유럽 내에서 20세기 초 한국 도자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준 르 블론드 부부는 도대체 어쩌다가 동아시아를 여행하다가 한국의 땅을 밟게 되었으며.. 어디서 그 많은 고려청자와 각종 유물을 수집하여 영국까지 가져갈 수 있었던 걸까?




그리고 왜 본인들이 갖고 있지 않고,

이를 박물관에 넘기고자 했던 것일까?




(다음 편에 계속)






(번외)


1900년대 이후 르 블론드 부부를 비롯한 수집가들의 열렬한 활동으로 인하여 상당한 양의 한국 도자가 영국으로 반출되었고, 현재까지도 우리 도자가 영국의 여러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유물들이, 어느 기관에, 누구에 의해, 왜 그곳에 소장되었는지 구체적인 수집의 경위와 컬렉션 조성 양상에 관한 치밀한 연구는 아직도 미비한 상태이다.


근대기 우리나라의 유물이 해외로 반출된 과정을 추적하는 작업은 오늘날의 문화재 환수와 소유권 분쟁과 같은 국제법상의 민감한 문제를 다루는 데 필요한 근거가 될 수 있기에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앞서 발표된 기존 연구들은 2차 사료를 바탕으로 간략히 수집가들의 이름과 표면적인 정보만을 소개하는 데 그치고 있으며, 사료의 한계로 수집과 반출의 구체적인 양상 과정에 대해 다루지 못하였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와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당대 작성된 1차 사료를 중심으로 르 블론드 부부에 관하여 심도 있게 살펴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문헌 자료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제시함으로써 이전까지 근대기 한국 도자 수집사 영역에서 다루지 않은 사실들을 밝히고자 한다.




출처:  최효진, 「아카이브를 통해서 본 근대기 영국의 한국 도자 수집」: 르 블론드 컬렉션을 중심으로」, 한국근현대미술사학 제40집,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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