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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진 Feb 12. 2022

런던으로 이민 간 고려청자 (2)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을 통해 본 우리 도자기의 디아스포라

앞서 살펴본 르 블론드 부부가 어디에서, 어떻게 한국 도자를 수집했는지 등의 사실관계와 더불어, 소정의 컬렉션을 대대손손 물려주지 않고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영국박물관 등 각종 기관에 팔아넘긴(?) 그 이유를 알아보기 전에, 이를 추적하기 위해 직접 연구했던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의 아카이브의 의미를 먼저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난 어떻게 1910년대 초반의 사람의 기록을 보고, 알게 된 걸까?

이 사람이 말하는 말은 사실인가? 지어낸 것 아닌가?


놉!

 

바로 기록에 있어서 은은한 광기를(?) 보여주는 영국 특유의 정확하고 꼼꼼한 기록 문화 덕분이다.


이번 글에서는 기록 문화 보관소인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아카이브와 그 안에 보관되어 있던 르 블론드 부부의 기록자료에 대해 보다 자세히 다뤄보고자 한다.




1.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아카이브 자료의 출처와 그 의의에 관한 내용을 펼치기에 앞서 간략히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이하, V&A)의 기관으로서의 성격에 대하여 알아볼 필요가 있다. 영국박물관과 함께 런던을 대표하는 박물관인 V&A는 의류, 건축, 생활용품 등 전 범위를 아우르는 장식 예술품을 주제로 컬렉션을 구성한 공예박물관이다.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V&A)의 정면


19세기 초 프랑스와 독일과 같은 대륙의 국가들에 비해 디자인 제조업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영국 정부는 디자인 산업의 발전에 관한 관심을 극대화하고 있었고, 이는 1835년 예술과 제조업에 대한 특별 위원회(The House of Commons Select Committee on Arts and Manufactures)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모던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통해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야 말로 제조업의 성장을 야기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공예산업을 성장시키고자 했던 다양한 노력 중 하나로 디자인 교육을 전담하는 학교(School of Design)가 1837년에 설립되기도 하였다.


Government School of Design, 1843


당시 설립된 디자인 스쿨은 오늘날 '왕립 예술 대학'의 전신이며, 영국 정부 블로그(?)에 게시된 아래의 글을 통해 다시 한번 영국이 제조산업 및 근대화 속 영국 생필품 수준을 향상하기 위해 디자인산업에 얼마나 힘을 싣고자 하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


"Then I talked about service design and told the story of how the Royal College of Art was originally called the Government School of Design. When the school was founded in 1837, there was an ‘economic argument calling for better design.’ There was a concern at the time that ‘British-manufactured goods were lacking in quality’. At the same time there were new ideas about health, hygiene, utility and having less decoration in everyday things.The Government School of Design was for learning how to make stuff for people, by taking advantage of Industrial Revolution technologies."


*출처: https://designnotes.blog.gov.uk/2016/01/12/the-government-school-of-design/




 이와 같은 일련의 노력의 결실을 과시하기 위해 열린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는 6백만 이상의 관람객을 끌어모았을 만큼 성공적으로 개최되었고, 이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V&A의 전신인 사우스 켄싱턴 박물관(South Kensington Museum) 설립의 초기 자금으로 활용되었다. 이처럼 디자인 산업을 발전시키고자 했던 노력 속에서 탄생한 V&A는 대중에게 전 세계의 공예 장식품을 선보이며 다채로운 미적 양식을 경험할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https://talbot.bodleian.ox.ac.uk/2017/10/13/photography-the-1851-great-exhibition/
https://talbot.bodleian.ox.ac.uk/2017/10/13/photography-the-1851-great-exhibition/



이번 시리즈에서 활용하는 아카이브 기록물은 V&A의 블라이드 하우스(Blythe House)라는 기록물 보관소를 직접 방문하여 불쌍한 학생임을 강조하며 얻어낸 결과(?)이다.


다른 얘기지만, 영국이나 미국 사람들은 학생이 연구를 하겠다고 찾아오면 굉.장.히. 협조적이다. 거의 부모님 급의 서포트를 보이며 마치 자신의 일처럼 자료를 찾아주고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이메일 활자로도 느껴져서 정말 감동적이다. (T-T) 사실 나도.. 일을 하는 직장인의 입장에서 뜬금없는 문의 전화가 오거나 이메일이 올 경우 지나치게 바쁠 땐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유독 미국이나 유럽의 연구 기관에서는 자료를 찾는 도움의 연락을 보낼 때마다 굉장히 많은 도움을 받곤 했다. 내가 운이 좋았던 것인지, 영국이나 미국은 상대적으로 한국만큼 1인 당 부과된 업무량이 살인적이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는 가늠이 잘 안 가지만 매번 내 연구의 8할은 주변의 도움 덕에 이루어졌던 것 같다. 부족한 연구에 그나마 성과가 있다면, 그건 전부 주변의 우수한 사람들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부분이라고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https://www.vam.ac.uk/event/7yrk0QpX/tour-blythe-house-highlights-sept-2018



영국의 문화재 지정 건축물(a-listed building)인 이 건물은 본래 우체국 저축 은행(Post Office Savings Bank)의 자리였으나, 현재는 V&A를 비롯한 과학박물관(The Science Museum), 영국박물관의 수장고이자 기록물 보관소로 사용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V&A는 이곳 블라이드 하우스에 디자인 아카이브(The Archive of Arts and Design), 베아트릭스 포터 컬렉션(The Beatrix Potter Collections), 공연 예술 아카이브(The V&A Theatre and Performance Archives) 및 많은 양의 박물관 자체 행정문서들을 보관하고 있다.


   공공기록물법(Public Records Act)에 따라 대중에게 자료를 공개하기 위해 1992년에 문을 연 V&A의 블라이드 하우스는 1837년에 제작된 문서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기록되어온 문헌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문헌 자료들의 종류로는 행정문서, 서신, 소장품 목록, 사진 등 종류가 다양하며, V&A와 교류한 개인의 이름에서부터 기관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준으로 문서들이 분류되어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의 수집 경위(acquisition)와 출처(provenance) 뿐만 아니라 해당 작품이 기증된 것인지, 판매된 것인지, 판매되었다면 얼마에 팔렸는지 등 작품 이면에 존재하는 숨겨진 이야기들을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아카이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자료 예시 (직접촬영)



2. V&A Registry MA/1/2594


르 블론드 부부 컬렉션에 대한 보다 상세한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나는 아카이브에 소장된 수많은 자료 중에서  ‘오브리 르 블론드씨와 부인, 문서 번호 MA/1/2594’라는 분류 하에 소장된 모든 문서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여기에는 서신, 계약서, 업무용 기록 자료, 유물 입고 목록 등이 보관되어 있으며, 해당 자료들에는 르 블론드 컬렉션이 V&A에 입수되는 과정에 대한 모든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수집가와 박물관 관계자가 주고받은 서신들의 내용에는 각 이해당사자가 생각하는 소장품에 대한 평가, 당대 가치, 가격 등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작품 자체만으로는 알 수 없는 사실들을 알려주는 학술적 의미가 큰 자료이다!


한국 유물 외에도 중국 등지에서 긁어 모아 온 것들을 기증해 온 르 블론드씨 (직접 촬영)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실제 역사가 기록된 자료가 어둡고 먼지 가득한 곳에 홀로 갇혀(?) 답답하게 지냈을 생각을 하면 조금 안타깝다.


그리고 누군가 이를 발굴하고 찾아내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백날천날 좋은 유산을 갖고 있더라도 그게 해외에 있다는 사실에만 분개할 뿐, 정확히 왜,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떤 과정에서 반출되었는지는 알아보지 않고 감정적으로만 열성을 토해내는 단계에만 머무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역사 속 베일에 가려져 있던 실제 사료가 이야기를 전해 줄 차례이다.



이 아카이브 자료 중에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사료는 소장품의 기증, 위탁, 판매가 이루어졌던 20세기 초 당시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도자가 입고되었는지 나열되어있는 '유물 입고 목록'이라 할 수 있다.


해당 목록에 적힌 작품 고유의 소장 번호는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유지되어 박물관 컬렉션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추적 조사가 가능한데, 이를 통해 어떠한 작품이 당시에는 무슨 이름으로 불렸으며, 가치평가는 어떠하였는지 자세히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세기 초 한국 도자에 관한 연구가 미비했던 영국에서 중국 또는 일본 도자와 혼동하거나 도자를 부르는 명칭이 일본식으로 적혀있는 등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연구되어야 하는 자료이다!


입고 목록에서 연번과 작품 설명 그리고 박물관 번호가 기재되어 있다. (직접 촬영)ㅌ


그런데도 현재까지 해당 자료에 대한 분석은 발표된 바가 없다. 영국 현지에서 한국 도자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에 의해 단편적으로 소개되어 각주로 등장하는 경우에 그쳤을 뿐 아카이브 자료의 내용을 뜯어보는 과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사한 주제의 논문들은 대체로 수집가의 이름과 활동 시기를 밝히는 정도에 그치고 있으며, 1차 사료가 아닌 2차 사료에 의존한 내용이 재생산되고 있어 아쉬움이 있다.


해외에 소장된 우리나라 도자 및 작품들이 어떠한 경위로 그곳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분석하는 과정은 역사적 측면에서 사실관계를 분명히 밝혀 법적 근거로 활용될 수 있으므로 미술사 분야 이외에도 문화재 반환과 같은 국제법상 논의에서도 필요한 조사라고 생각한다. 이뿐만 아니라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분석을 넘어, 수집가 개인에 대한 이해와 해외에 우리나라 유물이 반출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파악하는 연구는 작품들이 말해주지 못하는 역사적 사실을 수면 위로 꺼내오는 작업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또, 아카이브 자료에는 소장품의 대여, 기증, 판매 과정이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실제 수집 과정이나 작품과 컬렉션에 대한 당대의 평가와 같은 외적인 요소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자료의 한계는 또 다른 문헌 자료인 수집가의 자서전과 당시의 신문 기사 등을 활용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실제 르 블론드 부부의 한국 도자 수집 과정은 어떠하였으며, 1912년 일제 강점 초기에 한국에서 어떻게 무수히 많은 도자를  외국으로 운반할 수 있었던 걸까?


이제 진짜 역사 속 자료를 기반으로 그 내용을 추적해보고자 한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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