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오 Oct 07. 2022

런던으로 이민 간 고려청자 (4)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을 통해 본 우리 도자기의 디아스포라

에필로그 : 한국 도자에 대한 당대 평가



   르 블론드 부부의 컬렉션을 접한 V&A의 관계자들은 이를 두고 다양한 평가를 내렸는데, 아카이브 기록에 해당 내용이 남아있다.


1914년 당시 도자부서 담당 큐레이터였던 찰스 윌드(Charles Harry Wylde, 1864-1953)는 르 블론드의 한국 도자 컬렉션을 실제로 살펴 본 후 “이 나라[영국]에서 알려진 바 없는(practically unknown in this country)” 것이며 “매우 중요한 것(a very important one)”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처음 르 블론드 소장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유물 컬렉션이 매우 협소하므로 르 블론드 컬렉션에 상당히 관심이 간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처럼 1914년 당시에는 한국 도자 컬렉션이 영국 내에서 체계적으로 소개되고 연구되기 이전이었으며, 한국의 도자가 전문가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던 때인 것을 알 수 있다.



   도록이 발간되고 기증 절차가 이루어진 1918년, 르 블론드가 국가 기관인 V&A에 유용한 자산을 기증한 사실이 많은 지역 신문에 게재되었다. 허더스필드 일간지(Huddersfield Daily Examiner)의 1918년 12월 27일 금요일자 기사에는 “국가에 전해진 귀중한 선물(Valuable Gift to the Nation)”이라는 제목으로 르 블론드의 기증 사실이 알려졌다. [아래 그림 참고]


1918년 발행된 훌 일간지(Hull Daily Mail), 셰필드 일간지(Sheffield Daily Telegraph), 폴 몰 가제트(Pall Mall Gazette), 리버풀 일간지(Liverpool Daily Post)의 기사에는 르 블론드 컬렉션의 한국 도자 작품들이 “기술을 배우는 학생들(technical students)”에게 “관심을 끌만한 것(commend them to the interest of technical students)”이라고 모두 동일한 내용을 강조하고 있어 흥미롭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와 유사한 내용이 V&A 아카이브 자료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20세기 초 영국에서는 한국 도자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는 동시에 새로운 동양의 미감(美感)이 국내 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1916년 11월 11일 자의 서신을 살펴보면 관장 스미스는 르 블론드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한다.


"당신의 소장품을 반드시 박물관에서 소장해야 한다는 선량한 의사를 표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물관 입장에서는 르 블론드씨의 한국 도자들이 많은 정보를 내포하고 있어 기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유용한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 박물관에도 교육적, 예술적으로 의미가 있는 귀중한 소장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미스는 르 블론드의 한국 도자 소장품이 “기술을 전공하는 학생들(technical students)”에게 도움이 될 것이며 “교육 목적에 부합하는 가치 있는 소장(a very valuable addition to the educational [...] interest of our collection)”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며 한국 도자가 지닌 교육적 목적을 강조하였다. 이후 큐레이터 랙햄이 르 블론드에게 전한 1918년 7월 3일 자 서신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당신의 소장품이 우리가 기존에 갖고 있던 작은 컬렉션에 추가되면서 우리 박물관 역시 다른 유럽 박물관 못지않은 좋은 한국 도자 컬렉션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른 시기의 도자기로 이루어진 당신의 기증품들이 기술적, 미적으로 배울 점이 많은 유용한 소장품이기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볼 때 당신의 소장품들이야말로 이제껏 생산된 도자기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작품들인 것 같습니다.”



버나드 랙햄(래컴) Bernard Rackham (1876-1964) | 자료 출처 : https://www.vidimus.org/issues/issue-129/feature/


랙햄은 한국 도자가 지닌 아름다움을 명시하면서도 “배울 것이 많다(so much to be learnt)”는 교육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관장 스미스가 르 블론드에게 같은 날짜에 보낸 또 다른 서신의 내용에서도 다음과 같이 한국 도자의 교육적 목적을 강조하고 있다.


“역사학적으로나 고고학적인 중요도가 있기 때문에 당신의 한국 도자 컬렉션은 우리 박물관에 중요한 소장품이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도예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본보기를 제공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매우 우수한 소장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당시 V&A의 관계자들은 한국 도자가 자국의 학생들에게 역사적, 고고학적, 기술적 교육의 측면에서 도움이 되는 유물이라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20세기 초, 한국 도자가 역사적으로 귀중한 유물인 점 보다 영국의 학생들에게 미적 귀감(龜鑑)이 되는 새로운 유형의 시각 자료이자 교육 자료로서 역할했다는 사실을 잘 드러낸다.



   이렇듯 한국 도자의 미적 아름다움을 ‘기술’을 배우는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자 교육적인 자료로 홍보한 배경에는 V&A 기관의 성격이 큰 영향을 미쳤다. 영국박물관내셔널 갤러리(The National Gallery)와 함께 영국의 대표적인 국가기관이었던 V&A는 그중에서도 ‘교육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1852년에 특수한 취지로 설립된 기관이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 (The National Gallery, London)


다시 말해, 상술한 두 기관에서 독립된 이사회를 운영하고 있었던 데 반해 V&A의 경우 1983년까지 영국의 교육부(Board of Education)에 소속되어 정부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영국을 대표하는 교육 기관으로의 사명을 지니고 있던 V&A는 1899년 내부 확장과 함께 소장품 규모를 늘리는 과정에서 이전보다 더 다채로운 표본을 입수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통해 영국의 디자인 산업 수준을 향상하는 일에 이바지해야 했다.


이는 영국의 산업 역량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중대한 과업이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디자인 산업에서도 막강한 권력을 지닌 제국주의 열강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일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유에서 V&A는 20세기 초 다양한 국가의 유물을 수집하는데, 이때 한국의 도자 역시 공예산업의 측면에서 중요한 자료였기 때문에 다량으로 입수되었다.



1915년에 발간된 V&A의 『소장품 내 보충이 필요한 주요 유물 목록 List of the Principal Deficiencies in the Collections』에는 ‘도자와 금속공예 부서’에서 구입해야 할 유물로 한국의 유물들을 명시한 기록이 있어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이전까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던 한국 도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같은 시기, 한국 도자가 아닌 중국을 비롯한 동양 도자 전시에 소개된 유물들에 대해서는 ‘흥미롭다(interesting)’라는 평가보다능 “진정으로 감명 깊은(truly impressive)”이라는 표현과 같이 유물의 아름다움을 찬사 하는 표현이나, “새로운 구입품들의 범위, 가치, 질이 매우 좋은([t]he range, wealth, and quality of many of these new acquisitions is so great)”처럼 그것의 품질을 평가하는 내용들이 주로 언급되었다.


이는 영국에서 일찍부터 연구가 진행된 중국이나 일본의 도자의 경우 이미 수많은 표본을 통해 우수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자료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윌드를 비롯한 랙햄과 관장 스미스는 한국 도자를 두고 교육적으로 도움이 되는 새로운 시각적 자료라고 제한적으로 평가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정리하며..


   르 블론드 한국 도자 컬렉션은 영국에서 처음으로 한국 도자만으로 형성된 컬렉션이며, 영국 사회에 최초로 100점 이상의 한국 도자를 소개한 소장품이다. 이뿐만 아니라 1918년에는 컬렉션을 바탕으로 다량의 한국 도자를 연구한 도록도 출간되었을 만큼 영국 사회에 한국의 도자 문화를 알린 중요한 자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자료에 대한 상세한 연구는 이전까지 이루어진 바가 없다. 이에 본고는 한국 도자 컬렉션이 영국으로 가게 된 배경과 당시 현지에서 어떠한 평가를 받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를 위해 런던 V&A의 아카이브를 직접 방문하고 기증자인 오브리 르 블론드와 박물관의 담당자가 1910~30년대에 주고받은 방대한 분량의 서신을 일일이 분석하여 그 의미를 찾아내고자 하였다. 이외에도 깊이 있는 연구를 위하여 수집가의 자서전이나 당대 신문기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파악하고자 노력하였다.


   오브리 르 블론드와 엘리자베스 르 블론드 부부는 직접 한국에서 주변 동료의 조언을 듣고 한국 도자를 다량으로 수집하였다. 특히 이 과정에서 낯선 한국 땅에서도 현지 상인들의 도움으로 한국 도자를 쉽게 구입해갈 수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르 블론드 부부는 대여, 기증, 판매 등 다양한 방법으로 100점이 넘는 한국 도자를 V&A에 넘겼고, 당시 한국 도자에 대한 부족한 정보력으로 인하여 다수의 중국 도자가 해당 컬렉션에 섞여 들어가기도 한 점을 발견하였다. 무엇보다 르 블론드 부부는 1912년과 1913년에 걸쳐 도굴되어 현지 시장에서 팔리고 있던 한국 도자를 수집하였으나, 그들이 수집한 대상에는 비단 고려청자나 조선 초 백자뿐만 아니라 근대기 도자도 속해있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당대 V&A의 관장, 큐레이터가 남긴 문서 자료와 신문기사를 통해 한국 도자가 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 도움이 되는 자료로 평가되었음을 발견하였고, 이는 공예산업을 부흥시키고자 했던 영국의 당시 상황과 맞닿아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출처:  최효진, 「아카이브를 통해서 본 근대기 영국의 한국 도자 수집」: 르 블론드 컬렉션을 중심으로」, 한국근현대미술사학 제40집, 2020.
매거진의 이전글 런던으로 이민 간 고려청자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