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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효 Jan 06. 2025

미국 대학원 박사과정(Ph.D.) 광탈기 3

실패 일지 #1

1. 들어가며: 미국 박사과정 준비 이유
2. 미국 박사과정 준비기
3. 나가며: 돌아보지 않을 용기 ✅



 3. 나가며: 돌아보지 않을 용기


2023년 하반기를 통째로 잡아먹었던 미국 박사과정 준비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실패의 경험이 나에게 가져다준 교훈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번 돈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도전해 볼 수 있었다. 재화는 선택의 기회를 열어준다. 부모님에게 의지하던 시절에는 기회도 선택적으로 올 수밖에 없었지만 오롯이 내 힘으로 번 돈으로 (허영이든 아니든) 내가 원하는 길을 걸어볼 수 있는 '시도'를 해보았음에 감사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이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즉, 나에게 재도전이란 없다.


확언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언제 또 충동질에 휩싸여 다른 마음을 먹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생각이 없다. 후회 없이 할 만큼 해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일 하면서 공부했으니까 사실 제대로 안 해본 거 아니냐?"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나에게 선택지는 직장과 공부를 병행하는 길 뿐이다. 나는 월급이 필요한 사람이니까. 


아무튼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기도 했거니와 미국은 내게 수단으로써의 '목표'였지 그 자체로 '목적'인 적은 없었다.


이 사실을 깨닫는 데만 참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하지만 나는 과정에서 버린 시간보다 결과적으로 얻은 깨달음을 있으니 후회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늘 이런 식이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데만 긴 시간을 소요한다. 그러나 그 끝에 내린 결론에는 나만이 알 수 있는 확신이 있다. 




미술사 뽕(?)을 심화시킨 '모나리자 스마일', 여전히 내 최애 영화이다.


그래서 나에게 남은 것은


1. 주어진 상황에서 후회 없을 만큼 노력했다는 사실 그 자체

2. 내 현실에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는 자기 위안

3. 타지에서 외롭고 힘든 길을 걷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그런 비겁한 마음이 남아 있다.



내가 미국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전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내 연구를 발표하고 조금은 더 넓은 세계 무대에 등단(?)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유년시절 끝내지 못했던 해외 생활에 대한 나의 오랜 미련과 집착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내 마음속 목소리를 진짜로 듣는 훈련을 한 것 같다. 속으로 다 알면서 무시하고 모른척해왔던 진짜 내 마음을 마주하는 일이다.


미국 대학원에 붙을 경우, 가족도 친구도 없이 타지 생활을 하며 잘하지도 못하는 공부를 진득하게 해야만 하는 상황이 두려웠다. 그러나 그 과정의 고됨과 팍팍함은 눈 가린 채 어려운 길을 이겨낸 사람들이 얻어낸 결과만 탐냈다. 오만한 생각이었다. 실제로는 두려워했으면서도 '나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아야 마땅하지'라는 자만심으로 내가 미국에 가지 못한 사실만 바라본 채 오랫동안 남 탓만 해왔다. 사실 나는 그럴 준비도 안되어 있고 머리 빠지게 열심히 할 의지도 없었으면서.


타인의 기대를 충족하고 남들 눈에 멋진 내가 되기 위한 미련과 집착이 나를 욕심부리게 했고 세상을 원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직접 도전해 보니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래서 재도전은 없을 것이고, 나의 비겁함을 마주하는 값진 경험만이 남아 있다. 


유창한 영어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꼭 미국에 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몇 배의 노력이 더 필요하겠지만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30대 중반이 된 지금 내가 원한다고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과 노력만으로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되었다. 숙명에 순응하며 아쉬움을 평생 안고 가는 길을 택하고자 한다. 물론 더 성숙하면 아쉬움도 털어낼 수 있을 만큼 강해지겠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를 들여다 보는 일이 참 중요하다.


1년이 지난 지금


지금은 좋아하는 연구보다 생존을 위한 '업'에 더 혈안이 되어 있다. 지난 2024년 하반기는 꾸역꾸역 학교를 다니면서 회사를 병행하는 광기 어린 삶을 살았다. 바쁘게 사니 잡념이 사라져서 좋기는 했지만 온전히 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많이 아쉬웠다. 


앞으로도 온전히 좋아하는 연구에 천착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지만 커리어도 내게 중요하므로 한국의 좋은 여건 속에서 대학원을 잘 수료하는 것과 일과 연구를 균형 있게 맞춰가며 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석사 때도 그랬지만 여전히 나는 이 분야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등~ 바등~ 살아내고 있다.

21세기에 인문학으로 밥 벌어먹고 살자니 정말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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