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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Aug 18. 2021

Power of recognition

우리가 서로를 인정하는 방법

전에 일했던 한국 회사에서는 묵묵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중요했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고, 원치 않는 일이라도 기꺼이 감 뇌하며, 이견이 있어도 말하지 않고 상사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분위기를 흐리지 않고 장수하는 비결이었다. 의견을 낼 거라면, 그 의견이 대단히 총명하다는! 자신감과 확신이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회의실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는)를 야기할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반대와 비난에 직면해야 하는 등 리스크가 너무 컸다.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은 ‘팀'의 성과 혹은 ‘팀장'의 성과가 되어 내 이름 석자는 공중분해되는 경우가 즐비했다. 팀이 잘 되어야 내가 잘 되는 거라고 귀가 따갑게 들었다. 팀장이 더 잘 나가야 추후에 나를 이끌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린 한 라인이니까! 가족이니까! 게다가 회사에서 나 혼자 이룬 성과라는 건 없다. 뭐가 됐든 그 프로젝트를 위해 함께 일한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까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도 가끔, 누군가 내 노력을 좀 알아줬으면. 이번 주 매일 야근하고 밤새 업무 고민에 잠까지 뒤척이면서 했던 일인데 잘되든 안되든 수고했다는 한 마디라도 누군가에게 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도 많았지만 어쩐지 회사라는 곳은 칭찬에는 한없이 인색했다. 물론 꾸지람 하나는 모두가 적극적이었다. 월급을 받으니 수고하는 것이야 당연한 거고 실수하는 건 월급 받을 자격이 없다는 걸 뜻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일은 언제나 화장실 가기도 바빠 주어진 일 외 다른 것을 생각할 틈이 별로 없었다. 누군가 도움을 청하면 사실 순간적으로는 좀 귀찮았지만 언젠가 나도 도움을 청할 날이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돕기 마련이었다.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만 있어도 잠깐이나마 짜증을 냈던 스스로를 반성하게 됐다. 반면, 다른 부서 상사가 갑질 하듯 일을 던지거나 얌체 동료가 은근슬쩍 자신의 일을 떠넘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이런 환경과 관계에 익숙해지면 어떻게든 타인과의 관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일만 하도록 노력하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어차피 나를 평가하는 것은 직속 상사뿐이니, 나는 그 사람만 만족시키면 충분할 뿐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 사용하고 있는 내부 결제 시스템의 프로세스가 그간 많이 간소화된 것을 보고 문득 이 일을 해낸 IT팀 대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채팅 창을 열었다. 같은 층에 앉아있던 그 대리가 매일 같이 야근 학고, 아침 일찍 출근하던 모습이 떠올라 충동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대리님, 저는 영업팀 XXX입니다. 잘 지내시죠? 대리님 덕분에 시스템 프로세스가 정말 많이 개선된 것 같아요.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일하기가 진짜 편해요.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적어 놓고 5초 정도 고민하다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버튼을 누르자마자 듣보잡인 사원이 보내는 이런 쪽지가 의미가 있을까 싶은 마음에 부끄러움이 밀려와 얼른 채팅 창을 닫아 버렸다. 그런데, 몇 초후 그 대리가 내게 전화를 하는 것이 아닌가. (참고로 난 전화 공포증이 있다.) 


“XX 씨 쪽지 진짜 고마워요. 아무도 피드백을 안 줘서 속상했는데, 도움이 되었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런 쪽지 보내주셔서 감사한 마음에 전화했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꼭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하마터면 덜컥 울 뻔했다. 회사에서 누군가 그렇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마음을 전해준 게 처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분의 목소리에서 느낄 수 있는 그간의 마음고생 때문이었을까. 어쩐지 그 대리가 하는 일은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다 도와드려야지 하는 다소 우스운 동료애 같은 게 생겨버린 것도 같았다. 고작 말 한마디에 마음이 180도 바뀌는 게 사람 마음인데, 어쩌면 이 놈 의회 사는 이렇게 마음을 몰라줄까 싶어 안타까웠다. 


주저리주저리 전 회사의 경험을 꺼내 놓은 것은 현재 회사에 와서 차이를 가장 실감한 것이 ‘인정(Recognition)’이라는 키워드였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누군가의 공로를 ‘인정'하는 거라면 이곳만큼 잘하는 회사가 있을까 싶다. 현 회사는 앞서 예로 들었던 한국 회사처럼 실수만 잘 캐치하는 것도 아니고, 독일처럼 자신이 한 일을 알아봐 달라고 스스로 떠들도록 부추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모두가 다른 사람의 공로와 노력, 도움을 적극적으로 알아봐 주도록 장려했다. 누군가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열심히 일하면, 그의 왼 손은 물론이고 조직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오른손이 한 일을 내가 대신해서 확성기에 대고 마구 떠들어주는 것과 같았다. 


이곳에 입사 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동료로부터 보너스를 받았습니다. 축하합니다!’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받았다. 이게 대체 뭐지? 하고 열어보니 나와 같이 외부 이벤트를 진행했던 동료가 이벤트 진행에 내가 큰 도움을 주어 고마웠다며 사내 시스템을 통해 소정의 선물을 보내준 것이었다. 해당 이메일의 수신자에는 직속 상사와 팀원들들이 모두 들어가 있었다. 수신자에 있던 상사와 동료들이 그 이메일에 계속 축하한다며 답장을 보내주었다. 별로 한 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일에 이렇게 대대적으로 이메일과 선물을 받는다는 게 어색하고 머쓱하면서도 정말 뿌듯했다. 솔직히 직장인이 일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 주고 인정해 줄 때가 아닌가. 사람 마음이 이렇게 쉽다. 


현 회사에는 이렇듯 공식적으로 누군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대략적으로 약 3가지 단계가 있는데, 첫 번째 단계로는 상대의 주 업무 역할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도움을 준 경우 보내는 감사장 같은 것이 있다. 그냥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는 것도 좋지만, 이 감사장을 보내면 보다 수신자의 직속 상사에게도 이메일이 발송되어 상대의 노력을 보다 공식적으로 인정해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단계는 상대가 본인의 주 업무가 아닌데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 경우에 감사장 외에 소액의 선물을 보낼 수 있다. 물론 그 액수는 크지 않지만 어찌 됐든 받았을 때의 기분은 정말 꿀맛이다. 보내는 사람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축하해 줄 수 있도록 관련된 이들을 모두 참조에 추가하기도 한다. 마지막 단계는 금액이 조금 큰 보너스다. 이는 본인의 업무에서 큰 성과를 보이거나, 큰 노력을 했을 때 부여하는 것으로 금액에 따라 받는 이의 상사나 임원이 승인을 해야 발송이 된다는 점이 조금 다르다. 


직원들은 대부분 이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그래서 어떤 날은 하루에도 몇 개씩 우리 팀 누군가가 감사장이나 선물을 받았다는 이메일을 받는다. 물론, 가끔은 나와 가까운 동료가 아니라서 얼핏 제목만 보고 아카이브에 넣어 버릴 때도 있지만, 최대한 많이 나도 함께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에는 한국 오피스에 있는 직원들이 다른 나라의 직원들에 비해 이 프로그램을 훨씬 적게 이용한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그래서 사내 '문화 수호단'에서는 이 프로그램 사용을 더욱 장려하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했다. 바쁜 와중에도 타인의 공로를 인정하는데 소홀히 하지 않도록 1주일에 한 번 감사 인사 전하기, 잊었던 사람들에게 동료 보너스 보내기 등을 포스터와 이메일을 통해 지속적으로 리마인드 하는 방식이었다.  


직원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만으로는 본업과 직접적인 관련은 적지만 기업의 문화를 유지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직원들을 칭찬하기엔 다소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예컨대, 사내에서 주도하는 봉사활동이나 멘토링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는 직원들의 노력을 치하함으로써 다른 직원들도 업무 외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도록 동기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유였다. 다른 오피스에서는 이런 직원들을 칭찬하기 위해 별도의 상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 오피스에서도 '훌륭한 시민상'이라는 상을 만들어 봉사의식이 뛰어난 직원들의 공로를 전사적으로 알리는 프로그램을 론칭했다.  


최근 우리는 또 다른 관점에서 고민을 시작했다. 이렇게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를 매우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반면 여전히 소극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일 테다. 어찌 됐든 공식적인 메시지를 써야 하는 것이 단순히 귀찮아서 일수도 있고, 자신이 생각하는 ‘인정'의 기준이 훨씬 더 까다로울 수도 있고, 정작 그동안 본인은 인정을 잘 못 받아서 남을 인정해주는 데 소극적인 경우도 있다. 나아가 본래 내성적이고 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 티 안 나게 열심히 도우면서도 눈에 잘 띄지 않을 수도 있고, ‘시민상' 같이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야 상을 받는 경우, 내가 참여한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한 동료들이 바빠서 혹 이메일을 제대로 못 봐서 추천을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면서도 어떻게 소극적이고 내성적이고 다소 까다로운 사람들에게도 인정이라는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은 아직 없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먼저 시도해보고 수정해 나가다 보면 최선의 방법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믿음은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여러 고마운 직원들의 얼굴이 눈앞에 선하다. 미운 사람보다 고마운 사람들이 떠오른다는 건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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