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기획 의도
고백하자면 나는 입사 전 현 회사에 대해 큰 환상을 품지는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일했던 마지막 독일 회사가 충분히 좋은 곳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그 이상의 업무 환경이나 기업 문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멋대로 단정 지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외국계라고 해봤자 한국에 자리 잡은 지 5년 넘었으면 다른 한국 회사와 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편견은 이토록 쉽고 무섭다.) 외국에서 선망받던 많은 회사들이 우리나라에 와선 그들 본연의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문화, 쿨함 따위는 금세 벗어던지고 그 어느 곳보다 빠르게 한국화 되는 모습을 많이 보았던지라 그보다 작은 규모의 조직이라면 특히나 빠르게 현지화되었을 거라고 나름 합리적 의심을 했던 것이다. 내 편견을 합리화할만한 작은 구멍은 있었다. 인터넷이나 출판 도서를 통해 접한 기업 정보는 대부분 외국 오피스에 대한 이야기였고, 한국 오피스에 대한 정보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회사가 나에게 어떤 경험을 줄 수 있을까 구체적으로 잘 그려지지 않았다. 면접 후기만 몇 백 페이지가 족히 넘는 국내 대기업들과는 천지차이의 정보량이었다.
그렇게 입사한 회사는 갖가지 편견을 깨준 유일한 회사가 되었다. 입사한 지 어느덧 3년이 가까워져가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회사와 열애 중이다. 그리고 이제 연애사의 일부를 공개하려고 한다. 다행히 나는 그사이 기업 문화에 너무 많이 익숙해져 버렸고, 그만큼 사랑의 콩깍지도 절반 이상 벗겨졌다. 장점을 소중히 여기기보다 단점을 더 많이 보는 권태기도 수차례 맞았다. 그래서 “뭐야, 회사 자랑하는 거면 너 혼자 화장실 가서 해!, 라는 말에 조금 자신 있게 받아칠 준비도 되어 있다. “싫은 것도 무지하게 많은데, 아직 여기보다 더 사랑할 자신이 있는 회사는 아직 못 만나 봤어!”라고.
앞으로 쓰는 글들은 회사를 이렇게 멋지게 만들어놓은 CEO의 자서전도, 인사담당자의 전략서도, 홍보팀의 홍보자료도, 굉장한 성공을 거둔 리더의 자기 계발서도 아니다. 그저 조직의 사다리 가장 아래에 있는, 존재감 없는 팀원 하나가 끄적인 유치한 “우리 회사는" 시리즈물 정도밖에 안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나의 깨알 같은 회사 염탐 글이 자신의 기업 문화를 보다 개방적이고 수평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다른 직장인들에게 작은 아이디어가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초고속 승진을 하며 촉망받는 임원이나 엄청난 제품을 개발해 세상의 주목을 받는 천재보단 아무렴 '언제 잘릴지 모르는' 나 같은 말단 노비의 애사심을 사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 아니던가? 그것을 해냈다면 분명히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것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