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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Aug 13. 2021

기업의 문화를 지키는 수호단

(이 매거진의 글은 온전히 주관적 생각을 바탕으로 쓴 글이며, 회사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니므로 기업명이나 특정 명칭등은 밝히지 않고 쓴다.) 


입사 첫날 신규 직원 오리엔테이션을 떠올리면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 동료 한 명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래퍼 같은 스웨그, 자신감 있는 말투, 크고 우렁찬 목소리의 남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첫눈에 ‘저 사람은 엔터테인먼트 쪽에서 일할 것 같다’ 하고 느낌이 올 것 같은 크리에이터 포스의 직원 한 명이 뚜벅뚜벅 미팅룸으로 들어와 외쳤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XX고요,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회사의 ‘문화 수호단(가명)’을 소개하기 위해 왔습니다. 자, 박수!” 문화 수호단이라니. 클럽 이름 치고는 참 유치 뽕짝이다, 멋도 없다 생각했지만, 어쩐지 우렁찬 소개를 들으니 뭐가 됐든 저 사람이랑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아니, 그의 에너지를 전수받기 위해서 가입이나 한 번 해보자는 욕심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문화 수호단에 입성했고, 이듬해 그 클럽의 리드가 되었다. 


단순히 사내 문화와 관련된 활동들을 함께하고, 가끔 이벤트를 계획하는 ‘동호회' 같은 것인 줄 알았던 이 조직의 임무는 알고 보니 좀 더 특별했다. 일반적으로 다른 회사에서 인사팀이나 경영팀에서 조직 문화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전략들을 고민하고 시행하는데 여기선 이 클럽이 관련된 일을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있었다. 다양한 부서 사람들이 자신의 본 업무와는 아무 관계가 없음에도 ‘자발적으로' 모여 (여기서 자발적이라는 말은 앞으로도 무수하게 반복될 아주 중요한 기업의 특징이다.) 조직 문화를 지키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대부분의 이니셔티브는 가벼운 수다에서 출발한다. 한 달에 한두 번 모여 요즘 우리 사무실 환경이나 분위기가 어떤지, 개선해야 할 것이 있는지, 만약 조직에 전반적으로 어떤 챌린지가 있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지 수다를 떠는 와중에 아이디어가 나오고, 실행 계획이 세워진다.  


이 수다 모임이 중요한 이유는 불평을 기회로 만들기 때문이다. 어느 조직이든 모두가 그 문화에 100% 만족할 수는 없다. 천국 같은 곳에도 나름의 흠이 있고, 불평 있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예컨대 나는 천국 같은 독일이 변화가 더디고 느리다고 하루에도 12번씩 불평을 했었다.) 다만 이런 모임이 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양상은 두 가지다. 1) 불만을 가진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불평, 남의 험담만 마구 늘어놓다 끝나거나 2) 이런 불평불만이 높은 분의 귀에 닿게 되면 관련된 부서에게 문제를 해결하라는 압박이 들어가거나,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 생각되면 그냥 열정이 떨어진 못난 직원들의 푸념으로 치부된다. 예컨대, 한 임원이 “아니 요즘 사무실 사기가 왜 이렇게 떨어졌어? 즐거운 일 좀 만들어보지!”라고 언급하면 막내 사원이 부리나케 회식 자리를 만들고, 사내에 안 좋은 소문이 떠돌면 인사팀에서 관련 사례를 조사하고, 이를 예방하는 특단(?)의 조치를 고안하는 식이다. 


내가 클럽에 가입한 이후 가장 먼저 진행했던 사내 문화 증진 캠페인도 단순한 불평에서 출발했다. 요새 우리 회사 사람들 진짜 별로지 않아?라는 질문이 불을 지핀 대화였다. 요즘 직원들이 스낵바에서 커피나 음료를 마시고 컵을 닦지 않고 싱크대에 던져둔다거나, 미팅룸을 예약해놓고 사용하지 않아서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거나, 사람들이 몰리는 점심시간에 식당 테이블 위에 휴대폰 등을 올려놓고 자체적으로 테이블 예약을 해버린다는 등 일상적이고 사소하지만 계속 반복되는 비매너 행동들에 대한 불평이었다. 그 해에 특히 몇몇의 직원들이 전사 이메일로 ‘이렇게 하지 맙시다' 라며 권고 이메일을 보낸 것도 큰 이유였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이런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을 때, 총무팀이나 인사팀에서 어떻게 하자 또는 어떻게 하지 말자는 가이드라인을 정하여 공지를 하고, 필요한 곳에 프린트 물을 부착하여 리마인드를 하거나 아니면 직접 그런 문제들을 감독, 관리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 이런 방식에 익숙해져 있던지라 문화 수호단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하는 논의가 시작되었을 때 너무나 자연스럽게 미팅룸마다 경고문을 좀 붙여 볼까요? 하는 구태의연한 제안을 던져 놓고는 돌아오는 반응에 적잖이 민망했던 기억이 난다. 멤버들의 반응이 ‘음, 다들 몰라서 그러거나 나쁜 의도로 그런 건 아닐 테고 아마 바쁘거나 손님이 있어서 그런 경우가 많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너무 가르치듯이 프린트물을 붙이는 것보다는 재미있게 풀어 나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맞아요 요새 안 그래도 우리 회사가 너무 재미가 없다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많던데, 이걸 어떻게 재밌게 풀어 볼 수 있을까요?’ ‘캠페인 같은 거 해서 사람들이 즐겁게 참여하고 그걸 계기로 배려심 없는 행동들을 잠시 되돌아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였던 것이다. 멤버들의 피드백에 녹아있는 ‘선한 의도', ‘Fun’, 그리고 ‘Positive’ 이 문화 수호단이 리드하는 기업의 문화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키워드였다.  


멤버들이 편하게 던진 아이디어들을 종합하여 밈 콘테스트가 탄생했다. 매너 없는 행동들을 해학적으로 표현하는 일종의 ‘짤'을 만들어 사내 밈 플랫폼에 올리고,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짤의 주인에게 상을 주는 사내 콘테스트였다. 결과물은 뉴스레터와 이메일, 사내 카페 게시판 등에도 공유하여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웃으면서 그 메시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 캠페인은 그 해에 가장 피드백이 좋았던 캠페인 중 하나로 다른 오피스에서도 여러 번 소개되었다. 캠페인을 주도적으로 진행한 나는 어쩐지 그런 피드백들이 신기했다. 분명 그냥 우리끼리 논 것 같은데, 이게 일한 건가? 왜 즐겁고 난리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일을 실행하는 사람도, 그 일에 참여하는 사람도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야 말로 이 기업 문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였다. 


근래 가장 즐겁게 일했던 때는 재택근무 관련 캠페인을 진행할 때였다. COVID-19으로 인해 오랜 시간 재택근무를 하며 힘들어하는 직원들에게 소소한 기쁨과, 혼자가 아니라는 연대감을 주기 위해 고안한 아이디어였다.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집에 있는 업무 공간, 본인이 만든 점심 식사,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 겪었던 예상치 못한 에피소드와 관련된 사진을 짧은 묘사와 함께 슬라이드에 공유하고 가장 인상 깊은 사진을 공유한 직원에게 문화 수호단에서 작은 상품을 지원하는 캠페인이었다. 예상과 달리 굉장히 많은 직원들이 참여했고, 참여하지 않은 직원들의 호응도 높았다. 고작 사진을 공유하는 단순한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립된 업무에 얼마나 지쳐하고 있으며, 이 단순한 캠페인을 통해서 동료들이 어떻게 집에서 일하고 있는지 엿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이나마 위안과 공감을 받고 싶어 하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문화 수호단은 사실 이 회사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 오피스에서도 리더십의 지원과 예산을 받는 공식적인 클럽이다. 각국에서 클럽 리더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기업 문화와 관련된 이슈, 챌린지 혹은 좋은 사례들을 공유하고 논의하기도 한다. 각 지역의 특성과 사무실 사이즈에 따라 경험하는 챌린지도 다를 수 있어 사이즈 별로 하위 단위 미팅을 만들어 비슷한 환경의 사이즈에서 겪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토론도 진행한다. 예컨대 최근에는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채용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오피스 규모가 커지는데 오히려 문화 수호단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비율은 줄어들어, 현재 클럽을 운영하는 멤버들의 부담이 가중된다는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나 말고도 그런 일을 할 사람은 많이 있을 거야’라는 일종의 바이 스탠더 효과였다. 처음엔 어떻게 하면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그룹의 멤버로 참여하도록 만들까, 어떤 동기 부여와 리워드를 제공할 수 있을까, 이제는 회사 사이즈가 너무 커져 어쩌면 자발적 참여 기반 자체를 재검토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도 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규모가 어찌 됐든 기업의 문화와 가치에 대해 애정을 품는 직원 한 두 명, 그리고 나처럼 그들과 함께 그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팔로워 몇 명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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