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편견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거기 외국인 직원도 있나요? 많은가요?’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이 매우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이다. 이 질문을 묻는 이유는 대부분 두 가지다. 항상 영어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 혹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섞여 이루는 글로벌한 환경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후자의 경우, 외국인 직원이 많다는 건 다른 나라에 위치한 사무실과 비교해 업무 환경이나 기업 문화가 크게 다르지 않겠구나 하는 예측도 포함된다. 현 회사에는 사실 기대하는 것만큼 외국인 직원이 많지는 않지만, 다른 국내 기업과 비교했을 때, 직원들의 출신 국가가 매우 다양하고, 한국 직원들 중에서도 외국 혹은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조금 더 많은 편이다. 국가뿐 아니라 성별과 연령도 물론 다양한 편이다. 내가 2018년 한국에 귀국해 이직할 회사를 찾을 때 외국계를 선호했던 이유도 같은 선상에 있었다. 해외에서 근무하는 동안,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섞여 일하고 교류하는 것이 굉장히 큰 장점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곳에 있는 한 명 한 명의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문화에 기반하여 완전히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신선했고, 어떤 곳에서는 갈등이 될 수 있는 ‘논쟁'이 어떤 곳에서는 너무나 일상적인 ‘대화'인 것처럼 단일 문화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생각의 전환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다.
물론 요즘은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워낙 다양한 채널의 미디어를 통해 해외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외국인과 교류할 수 있다. 그러나 주체적으로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 환경에서 지내보지 않는 경우, 본인이 선택하여 보고 접한 정보에 대한 편견이 더욱 쉽게 생긴다는 제한점이 있다. 예컨대, 미국 드라마에서 침대 위로 신발을 신고 뛰어대는 미국인만 본 사람은 모든 미국 사람들이 그런가 보다라며 문화를 일반화 짓기 쉽다. 한국인처럼 집 안에서 신발을 신지 않는 미국인 친구와, 실내에서는 실내용 신발만 신는 사람, 실제로 미드처럼 집 안에서도 밖에와 똑같은 신발을 신고 다니는 미국인을 다양하게 만나본 사람에 비해 미국인에 대한 일종의 편견을 갖기가 더 쉽다는 이야기다. (물론 대다수는 그렇지만)
가끔 직장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남편은 본인도 모르게 ‘높은 직급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아무래도 좀 성격이 세니까..’ 라거나 ‘여자들은 영업 같은 힘든 일은 하기가 어렵잖아, 못한다는 게 아니라 술 먹고 접대하고 그런 건 싫어하니까..’라는 편향적인 시각의 말을 해 나를 깜짝 놀라게 하고는 한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를 나누다 보면, 결국 본인이 남중-남고-공대를 나온 데다 기업 문화가 매우 보수적인 건설업에 종사하며 만나온 여자 동료나 상사의 숫자가 워낙 적고, 특히 그 회사에서는 실제로 많은 여성 직원들이 거의 지원직에만 배정을 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고착화된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최근 대학원에 진학하여 현재 회사보다 좀 더 배경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며 그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을 접하게 되어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사람은 자신이 하던 방식을 가장 쉽고 편안하여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으면 그 방식을 계속 고집하게 되는데, 다양성이 존재하는 문화에서는 자기 고집을 꺾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보다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보수적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독일 회사에서 일할 당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상사가 이번 크리스마스 파티는 우리 팀 유일한 아시아인인 나를 위해 한국 스타일로 해보고 싶다고 내게 이번 파티를 계획해 보라고 요청했다. 나는 이때다 싶어 한국 스타일의 ‘노래방’ 밤을 기획했다. (세상 진부하기 짝이 없지만, 노랩랑은 독일인 상사가 제일 싫어할만한 아이템이었고, 어쩐지 그를 좀 골탕 먹이고 싶었다. 개구쟁이 마음이다.) 그리고 파티 바로 전까지 모든 동료들과 상사들을 거품 물게 만들었다. 절대 파티에 가지 않겠다는 사람부터, 다시는 나한테 이런 걸 시키지 않겠다는 상사, 다들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른 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불평을 해댔다. 그러나 나는 꿋꿋이 밀어붙였고, 그날의 파티는 모두가 기억하는 회사 파티 중 최고. 그야말로 전설적인 밤으로 기억되어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그때 나의 상사는 노래방의 광팬이 되어 그 이후에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노래방 어플을 이용하여 노래를 부르곤 한단다. 이렇듯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 곳에는 평소라면 절대 받아들이지 못할 것에도 상대적으로 더 관용적인 태도, 도전하는 자세를 이끌어 내는 힘이 있다.
세계적인 서비스와 제품을 만들어내는 글로벌 회사라면 이 다양성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고객의 다양성은, 곧 직원의 다양성- 기업 문화의 다양성의 연장선이다. 그래서 지금 회사는 이 다양성을 아주 열심히 프로모션 하고, 교육한다. 그래서 사실 눈에 드러나게 이런 다양성의 가치가 침해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내가 회사의 모든 곳을 대변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적어도 다양성이 침해되는 경우가 있다면 적어도 언젠가 어떤 방법으로든 밖으로 드러나게 되고, 회사는 그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개선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대 최근 우리가 더 깊게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마이크로 어그레션(Microagression)'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먼지 차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눈에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다양성의 가치를 더 크게 훼손할 수도 있는 일상생활에서의 미묘한 차별을 일컫는다. 예컨대, 가해자가 자각하지 못하거나 의도하지 않았지만 듣는 사람이 미묘하게 기분이 나쁘거나, 말속에 차별적 요소가 내재하는 언어적 공격이다. “서울에 온 지 오래됐는데 아직 사투리 쓰시네요~” 라던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모르겠지만..”라는 말들이 모두 이 범주에 포함된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수없이 비슷한 종류의 공격을 받고, 또 남에게 던졌지만 이곳에 입사해 교육을 받기 전까지는 잘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회사 내부에는 직원들이 자신이 직접 경험한 마이크로 어그레션 혹은 적극적인 포용의 순간들을 공유하는 메일링 그룹도 있다. 이 그룹의 메일을 구독하면 일주일 혹은 한 달에 한 번씩 직원들이 공유한 이야기를 모은 요약본을 받을 수 있다. 어떤 직원은 본인의 이름과 프로필 사진이 중성적으로 보여 다른 직원들이 쉽게 남자라고 짐작하고 메일을 보낸다며 조금 더 조심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공유하기도 하고 또 어떤 직원은 최근 워크숍에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팀원들을 고려하지 않은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어 아쉬웠다고 토로하고, 또 누군가는 상사가 임신한 직원을 먼저 배려하여 자신의 의자를 내어주어 무척 감명을 받았다는 등의 경험담을 나누었다. 이 메일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나 역시 어쩌면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소외감을 느끼게 하거나, 작은 마음의 상처를 줬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사실 이전에는 많이 착각했었다. 나는 친절한 사람이니까, 내가 내뱉는 말과 행동 때문에 누군가 다치는 일은 없다는 착각. 누구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건 갑질을 일삼는 못된 사람들, 타인을 고의로 따돌리는 나쁜 사람들, 다른 사람의 감정 따위는 잘 헤아리지 못하는 공감 능력 제로의 사람들이나 저지르는 잘못이라고 단정 지었다. 나 역시 누군가의 의도하지 않은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에 소외감을 느낀 경험이 수도 없이 많으면서 그렇게 생각하다니. 참 사람이란 간사하다. 자신이 경험하기 전까지는 타인의 상처에 대해 빠르게 공감하지 못하니 말이다.
입사 후 반드시 들어야 하는 교육 ‘Bias Busting(편견 부수기)’ 에서는 이런 마이크로 어그레션을 자각하고 본인의 커뮤니케이션에 들어가는 메시지가 누군가에 대한 편견이나, 미묘한 차별을 내포하지 않도록 고민하도록 돕는다. 또한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편견이 바탕이 되는 어떤 프레임을 상대에게 씌우지 않도록 타인과의 대화 시, 나이나 학력, 출신지, 결혼 여부, 종교 등을 묻지 않도록 한다. 이런 것들은 당연히 면접에서도 제외되는 항목들이다. 한국인이라면 가장 쉽게 묻는 것들을 사실상 다 피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보수적인 곳에서 근무했던 경력자들은 이런 문화를 낯설어하거나 어려워하기도 하는 것도 사실이다. 나 역시, 입사 초반에 다른 직원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할 때 도대체 무슨 이야기로 상대를 알아갈 수 있을까 라며 대화 소재를 고민하게 되고, 혹시나 말실수를 하지 않을까 지나치게 조심하여 동료들과 거리를 좁히는 게 너무 어렵다는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그런 모든 사적인 것들을 알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대화의 소재가 너무 많다는 것을 배웠고 그래서 같이 일한 시간이 2년이 다되어 가는 지금도 나랑 친한 동료가 나보다 나이가 적은 지 많은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 동료랑 함께 하는 시간이 무척 즐겁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더욱 다른 사람들과 경계 없이 친해지고 그들로부터 항상 배울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