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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Sep 22. 2022

세상의 멸망을 바라는 자


   작년 겨울 12월 마지막 날, 온 가족이 마당에 나와 달을 보고 소원을 빌었다. 새해 새벽에 뜨는 달에게 소원을 비는 건 가족의 오랜 전통이다. 남편의 가족들은 새해 첫날 일출을 보러 가서, 해를 보며 새해 소원을 빌었다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언제나 밤에 나와 달을 보고 집 마당에 달아 놓은 작은 종 하나를 똥똥 세 번씩 치며 세 가지 소원을 빌었다. 뭐, 비단 새해에만 그런 건 아니고 사실 보름달과 대보름이 뜨는 날, 추석, 구정을 다 챙겨서 밤마다 달 앞에 섰다. 종교가 없는데도 이렇게 달만 보면 뭔가 빌어대는 걸 보면 나는 문교인가? 밤하늘교인가? 싶은데, 또 어디 여행을 갈 때마다 100개 소원 계단, 소원 연 날리기, 소원표 달기 등은 하나도 빠짐없이 꼭 해대는 걸 보면 나는 그냥 소원빌기 중독자인가 싶다. 뭐라도 자꾸 의지를 하고 싶은가 보다.


나는 아마 그날 2022년에는 회사에서는 더 좋은 팀으로 옮기게 해 주시고, 가족들이 크게 아픈 일 없도록 해주시고, 남편의 마음을 옥죄고 있는 돌덩어리 하나가 빨리 없어지게 해 주십사 하는 세 가지 소원을 빌었던 것 같다. 여보는 뭐 빌었어, 엄마는 뭐 빌었어, 그렇게 옆 사람들에게 묻는데 소원은 혼자만 알고 남에게 알려주면 안 되는 거라면서 다들 입을 꾹 닫았다.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는 무슨 소원 빌었어. 아빠는 씩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엄마보다 하루라도 빨리 죽게 해달라고 빌었어. 그래야 니들이 고생을 안 하지."


   그렇게 말하는 아빠의 얼굴에는 미소가 있었지만,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울었다. 원래 울보이기는 하지만, 대답해 줄 말이 없어서 울음으로 침묵을 대체했던 것 같다. 그런 게 어딨어, 누구라도 오래 살면 좋지라던가, 아빠가 있는 게 무슨 고생이야, 둘 다 오래 살아야지라던가 뭐 그런 말들을 충분히 할 수 있었음에도 그 순간에는 진심이 아닌 그런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 않은 가족들도 많이 있겠지만, 아빠와 아무리 친하다고 한들 혼자 남은 아빠가 조금 더 버겁고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며칠만 엄마가 없어도 집에는 뭔지 모를 홀아비 냄새 같은 게 났고(본인은 청소를 한다고 하는데도), 아빠 몸에도 냄새가 났으며(아마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어서 대충 씻고 담배를 겁나 많이 피워대서겠지), 대충대충 끼니를 때우다가 피골이 상접한 꼴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래도 그런 말을 직접적으로 듣고 나니 참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다 생각했다. 나는 나중에 남편보다 하루라도 먼저 죽어야 좋을까, 아니면 남편이 하루라도 먼저 죽어야 좋을까. 자식이 없는 딩크 부부인 우리는 생각해보면 누가 먼저 죽는다 한 들 크게 중요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이기심에 내가 먼저 갔으면 좋겠다 싶지만 어차피 우리가 어떤 불의의 사고 없이 기대수명만큼 살고 죽는다면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을 때는 둘이 손잡고 요양원에 가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차피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것보다는 요양원에 계신 분들에게 우리의 마지막을 맡겨야 하겠구나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니 우리는 적어도 폭력적이고 비위생적인 요양원에는 가지 않기 위해 돈을 잘 벌어놔야 한다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내 주변에는 마흔이 가까워지도록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이 많은데, 그 친구들과 만나서 놀 때마다 늙어서 같이 요양원에 가자고 서로가 서로를 지켜줘야 하지 않겠냐는 우스갯소리를 곧잘 하곤 했다. 내 사촌 동생은 내게, 언니, 돈 많이 벌어서 병원 가까운 곳에 집을 하나 얻어서 다 같이 살자란다. 되도록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먼 미래와 죽음이지만 한 번씩 상상을 하면 나는 너무 섬뜩해진다.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부모와 나와는 달리, 낙천적인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장수에 대해 고민, 아니 장수를 기대한다. 시아버지는 어머니가 다니는 절에 가서 연초에 스님과 이야기를 나눴더니 스님이 아버지가 장수할 팔자라며 130살까지 거뜬히 살겠다 하셨단다. 근데 그게 그렇게 아닌 말 같지는 않다. 아버지는 늘 멋지고, 활력이 있는 데다 가끔씩 걱정은 없으시냐 물어보면 나는 아무 걱정이 없다 하시니 몸과 정신이 장수에 딱 알맞은 조건을 맞추고 있지 않은가. 시어머니는 어쩌다가 자신의 막내 동생 덕으로 젊어지는 주사인지 세포 재생 주사인지를 맞으셨다고 하는데 그렇게 보면 어머니도 오래오래 사시지 싶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장기가 성하지 못해 언제나 배가 아프고, 온갖 알레르기를 달고 살며, 세상 예민 보스라 온갖 스트레스를 다 짊어지고 사는데 아 이렇게 내 관리를 안 하면 우리 시부모님이 내 장례를 치르게 하겠구나 하는 불효스럽고도 우스꽝스러운 미래가 상상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또 섬뜩하다.


   부모님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하고 났는데, 막상 정말 부모님이 130, 150살까지 사시면 어떻게 봉양할 수 있을까. 나는 80 넘어 사는 내 몸뚱이를 제대로 봉양은 할 수 있을까. 정년퇴직이 60이라지만 45세 이상을 찾아보기 힘든 우리 회사에서 나는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는가. 그럼 그다음에는 내가 얼마나 더 일을 할 수 있고 해야지 건강히 먹고살 수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남편이 나를 저지한다. 이럴 거면 그냥 온 세상이 다 같이 한 날 한 시에 어벤저스처럼 멸망하게 해 주세요라고 내가 또 보름달에게 기도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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