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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Dec 24. 2018

책을 읽는 이유

17년 1월, 그 날의 디스크




  대단한 철학자도 아니건만 그렇다고 공들여 부를 쌓은 경제인도 아니건만, 마음이 지나치게 회오리다. 그 마음이란 녀석 만큼은 소크라테스 부럽지 않고 혼란의 모양새는 꼭 폭풍우와 같다. 좀 남우세스럽고 부끄럽지만, 한동안은 정말 그랬다.

   그저 뭐가 문제인 건지 알고 싶었다.  알면 고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변해가는 마음도 잃어버린 꿈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주욱 그런 마음이었다. 드문드문 이었지만 '이게 답일 거야' 싶은 순간도 왔다. 그러면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덜 민망해지기 위해서였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나의 현재를 누군가에게 설명한다는 건 때때로 숨막히는 일이다. '정답'이란 녀석의 바짓단이라도 붙잡고 있으면, 적어도 이 불안정한 오늘에 대해 의미 없이 하소연만 하고 앉아 있게 되진 않았다. 그래서 더 집착했다. 정답, 혹은 정답을 찾는 일에 말이다.


아주 가끔은
운명처럼 귀한 책을
만날 때도 있다.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모르겠다 싶을 때 찾을 수밖에 없던 곳이 있었다. 집 앞 도서관이다. 어쩐지 책이란 건 바라봄 만으로도 편안함을 줄 적이 있어서 심난할 때면 종종 찾아가곤 했다. 물론 얼굴을 몇 차례 비췄단 이유로 책이 옛다 정답을 던져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운명처럼 귀한 책을 만날 때도 있다. 정답이란 수식을 붙여도 아깝지 않을 만큼 답답한 속을 뚫어주는 ’뚫어뻥' 같은 책 말이다. 오늘, 고맙게도 그런 책을 만났다.
 
   몇 장을 펼쳐 읽는 순간 화살을 맞은 듯 경직되었고, 조금 이따가는 꼴깍 침을 삼켰다. 침체돼 있던 기분이 놀랍도록 좋아졌다. 절반 가량 읽었을 땐 속으로 선언했다. 남은 책 내용이 형편 없을 지라도 상관 없을 만큼 나는 이 책을 좋아하겠노라고. 책에서 말하는 것들이 정답이 아닐지라도 문제될 게 없었다. 그것 덕에 나의 세상이 변화 되었으니 책과의 '인연'에 무조건적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겠는가. 그래, 이래서 책을 읽는 거지, 하고 무릎을 탁 쳤다.

    언젠가 책을 좋아한다는 친구와 물 만난 고기 마냥 신나게 얘길하다 그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이를테면 내게 책이란 "황홀경"과 같다고. 말하자면 이럴 때 우리는 책을 통한 황홀경을 경험할 수 있다. 단 한 줄의 문장에 남은 평생을 바쳐도 모자랄 만치 뜨거운 공감이 느껴졌을 때. 자신을 던져서라도 쟁취하고픈 글귀를 만났을 때. 책을 읽고 나서 그 책을 읽기 전이 감히 상상되지 않을 정도로 내 세상이 달라져 있을 때. 나는 그 때의 '책' 혹은 '책 읽기'는 사람이 태어나 느낄 수 있는 정서적 만족감을 최상위로 끌어올린다고 생각한다. 그 느낌을 아는 사람은 책을 구태여 외면하며 살기가 힘들다. 그것이 내가 책을 읽는, 평생을 다해 쫓고 싶은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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