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 여행의 성공열쇠는 여행사가 쥐고 있다.
베이스캠프에 들어가기 전, 우리는 대형마트에 잠시 들렀다. 두 분 팀장님들은 우리에게 간식이나 주류, 음료 등을 구입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사실 술을 잘 못하기도 하고, 워낙 이 여행 일정에서 제공하는 음식의 퀄리티가 좋다는 후기를 들은 터라 정말 최소한으로만 구입을 했다.
* 혹시 이 글을 읽고 같은 일정을 떠나는 사람이 있다면 간식은 추천! 특히 초콜릿은 말 타는 동안, 또는 휴식하는 동안 당충전하기 좋았다. 술을 좋아한다면 보드카, 맥주 등을 구입하는 것도 좋은데, 사실 두분 팀장님이 따로 마시멜로, 보드카 등을 추가로 준비해주신데다 우연히 우리 일행은 모두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여행 끝에는 술이 참 많이도 남았다. 결론적으로 난 솔직히 뭔가 많이 사양한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군것질거리를 제외하면 정말 모든 게 준비되어 있었다.
다시 한참을 달리다 보니 드디어 우리의 베이스캠프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의 베이스캠프는 초원 중앙에 위치했는데, 잘 다듬어진 길 끝에 식당이 있었고, 이를 기준으로 한쪽에는 게르식 숙소와 원목으로 된 숙소가 나뉘어진 꽤나 고급스러운 숙소였다. 몽골여행을 준비하면서 여러 게르식 숙소에 대한 후기를 확인했는데, 여긴 그 중에서 호텔로 치면 5성급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시설이 좋았다.
우리는 2인 1조로 게르에 머물렀는데 5인실을 2명이서 사용했기 때문에 매우 여유롭게 공간을 사용할 수 있었다. 내부 시설도 매우 좋았는데 보통 게르는 가운데에 화로를 놓기 때문에 천장이 뜷려 있어 벌레가 많이 들어오는 반면, 우리 숙소는 화로 대신 각 침대마다 전기장판이 깔려 있었고, 천장은 열 수 있는 형식의 돔으로 막혀 있었다. 이런 방식의 게르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펼치고 접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유목민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현대식이지만, 어쨌든 관광객의 입장에선 매우 편안한 숙소였음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마음 한켠에는 제대로 된 게르를 경험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도 있었는데, 나중에 비슷한 시기에 몽골여행을 한 친구로부터 벌레가 너무 많아 결국 게르에서 나와 차에서 잤다는 후기를 듣고 나서야 완전히 그 아쉬움을 덜어낼 수 있었다.
숙소에 짐을 풀기에 앞서 두분 팀장님들(가이드)은 식당으로 우리를 불러모았다. 그 쯤 늦게 도착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던 마지막 인원이자 나의 룸메이트가 도착해 드디어 우리는 10명의 완전체가 될 수 있었다. 서로 간단하게 통성명을 하고 난 후, 팀장님들은 우리에게 말 모양의 기념품을 나누어주었다. 승마캠핑을 떠나기 앞서 준비한 작은 선물이자, 사고 없이 모두들 안전하게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해주셨다고 했는데 그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참고로 이 말 친구는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여전히 내 노트북용 백팩에 잘 달려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우리는 본격적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그 중엔 이번 여행에서 기대하고 또 기대했던 몽골식 만두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기대했던 것보단 피가 두꺼워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우와.. 우와..를 반복하며 한 끼를 마무리했다. 특히 양고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잡내가 안나서 맛있게 즐길 수 있었다. (이때부터 난 음식에 대한 걱정을 완전히 놓을 수 있었다.)
이후 우리 일정은 승마캠핑에 앞서 말을 1시간 정도 배우는 것이었는데, 그 전까지 시간이 남기에 팀장님들은 캠핑투어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아이스커피를 마실 생각이 없는지 물었다. 사실 난 새벽비행기를 타고 온터라 피곤했던 만큼 숙소에 남기를 바랬는데, 단체로 움직여야 한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간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왠걸! 안 갔으면 정말 정말 후회할 뻔했지!
버스를 타고 다시 몇 분을 이동하여 도착한 곳은 테를지 호텔이라는 곳이었다. 몽골 팀장님 말로는 5성급 호텔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호텔이지만 과거에는 돈 많은 정치인들이나 기업가가 찾았던 휴양지였다고 한다. 실제로 내부를 살펴보면 굉장히 엔티크한 디자인을 유지하고 있고, 복도 중간 중간 오래되어 보이는 물건들을 전시해놓기도 했다. '앤티크'라는 단어는 사실 촌스러움과 고급스러움을 모두 담을 수 있는데, 테를지 호텔은 고급스러움에 가까운 곳이었다.
우리는 몽골팀장님의 제안에 따라 호텔 뒷편에 있는 야외 공간에서 커피를 마셨다. 테라스 한 구석에는 동상이 하나 있었는데 왠지 그 모습이 굉장히 익숙하다 했더니 무려 레닌동상이다. 소비에트 연방국가, 그러니까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을 만든 사람이자 마르크스와 함께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이기도 한 인물이 도대체 왜 이곳에 있을까? 몽골팀장님이 이 건물이 워낙 오래된 곳이기 때문에 과거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던 시절의 유물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렇게 야외 캐노피 아래에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새삼 여유로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부터 난 여행사를 참 잘 선택했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사익이 존재목표인 기업의 입장에서 여행사는 꼭 우리에게 깨끗하지만 비싼 숙소도, 일정에 없던 5성급 호텔 커피도, 예쁜 말 모양의 기념품도 제공할 의무가 없었다. 2인 1조로 잠을 자기 위해 5인실은 더더욱 필요가 없었고,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애초에 도심에서 숙소까지 15명 내외의 인원이 이동하기 위해 45인승 대형버스를 제공할 필요도 없었다.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들은 좀 더 수익을 내는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사실 기업의 이익과 거리가 먼 선택들을 했는데, 그렇게 결정한 데에는 무엇보다 여행객의 편의가 우선시 되었기 때문이었을거라 생각한다. 두분 팀장님이라고 불렀던 여행사의 가이드분들은 실질적으로는 한국과 몽골 사무소를 지키는 대표님들이셨는데, 그들이 이 여행업에 얼마나 진심인지 느껴졌다. 패키지 여행은 사실 거부감도 있었고, 몽골에 도착한 후로도 패키지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그럴 필요는 전혀 없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패키지여행을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는 것을. 그보다 어떤 여행사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