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라는 동물을 조우하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이번 여행에서 내가 잡은 테마는 두 가지였다. "말" 그리고 "별". 패키지여행답게 유명 관광지를 모두 여행하고 나서 드디어 본격적으로 내가 그렇게 하고 싶었던 그 여행테마로 돌아와 말을 타기로 했다. 둘째 날부터는 우리가 직접 말을 몰아야 하기 때문에 첫날은 말을 타면서 간단한 예행연습을 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숙소와 가까운 승마체험장에 도착해 우리는 팀장님들 주변에 원을 만들고 섰다. 팀장님들은 몇 가지 주의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가장 중요하고, 또 계속해서 강조했던 것들은 세 가지였다. 첫째, 말의 왼쪽으로 올라가서 왼쪽으로 내려올 것. 둘째, 절대로 말의 고삐를 놓지 말 것. 마지막으로 절대 말의 뒤쪽에 서지 말 것. 이 세 가지 주의사항들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강조했는데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였을 거다.
몽골의 말은 크기가 일반 말에 비해 작다고 한다. 제주도는 작은 크기의 조랑말이 유명한데, 그 조랑말이 바로 13세기 고려시대에 몽골에서 넘어온 말의 품종이라고 하니 '몽골의 말'하면 제주도의 말을 떠올려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좀 더 자세히 찾아보니 몽골 말은 엄밀히 말해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 말과 유전적으로 아예 다르며 현재는 유일하게 남은 야생말이라고 한다. 크기 자체는 평균적으로 122 ~ 142cm, 그러니까 보통 성인의 키를 넘지 않는 크기지만, 체격이 다부지고 일반 말에 비해 힘이 더 세다. 특히 아무 풀이나 잘 먹고, 내구력이 강하기 때문에 혹독한 몽골의 추위도 잘 견뎌낸다고 하는데 그런 조건이 있기 때문에 아마 지금까지도 가축이 아닌 야생동물로써 생존할 수 있었나 보다.
간단하게 말을 타는 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2인 1조로 말을 탔다. 사실 '말을 탄다'기 보다는 앞에서 우리를 이끌어주는 사람이 우리말을 끌고 갔으니, 말 위에 '실려 있었다'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난 이때부터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고작 지면에서 150cm도 안 되는 높이였지만 말을 탄 순간부터 겁에 질린 것이다. 내 엉덩이 밑에 다른 동물을 깔고, 그 동물의 움직임에 따라 나 역시 움직이는 그 느낌이 뭐랄까.. 내 몸의 통제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굉장히 낯선 기분이었다.
나를 제외한 일행들은 모두 문제없이, 재미있게 말을 탔는데 나는 고작 1시간의 승마체험에서 이 투어를 신청한 내 결정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초원을 달리는 칭기즈칸'이 되겠다는 꿈은 고사하고, 난 투어를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는지가 의심스러워지는 그저 '도시에서 온 관광객 1'이었던 것이다. 사람은 역시 메타인지, 즉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가져야 한다고 하는데,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고소공포증을 갖고 있고, 관람차조차 무서워서 타지 못하는 엄청난 쫄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1시간 정도 말을 타고 들판을 한 바퀴 걸었다. 그렇게 출발지점으로 돌아오니 몽골팀장님이 매우 편안한 자세로 말 위에 올라 능숙하게 고삐를 쥐고 말을 움직인다.
"팀장님... 저 내일 말 탈 수 있는 거 맞죠?"
"그럼요. 초등학생도 하고, 60대 어르신도 했어요."
'그래.. 어린이도, 어르신도 했다잖아. 나도 내일이면 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애써 긍정회로를 돌려보며 그렇게 난 약간의 불안함을 안은 채 승마 체험을 마무리했다. 그 후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간단한 저녁식사를 한 뒤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 마지막으로 문명의 따뜻한 온수샤워를 즐기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온수샤워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리가 묵은 숙소가 매우 훌륭한 곳이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여행을 마무리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짧게 회고해 보자면, 이번 몽골여행이 유독 인상적일 수 있었던 건, 어딜 가도 광활한 초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아도 파란 하늘과 그저 넓게 펼쳐진 자연이 있었다.
유럽여행을 떠났을 때, 또는 미국이나 아시아 국가들을 여행할 때 보통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어떠한 유산이었다.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면서 젊은 천재의 상상력에 감탄하고, 마드리드 박물관에 배치된 카우치에 가만히 앉아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바라보며 예술에 감동했고, 시애틀의 스타벅스 1호점 앞에서는 지는 해를 등지고 애정을 표현하는 연인의 그 설레는 감정이 내 마음에 그림처럼 남았다. 그 밖에도 다낭의 골든브리지, 일본의 쿠마모토, 부산의 벽화마을, 그동안 나는 여행을 하며 주로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놓은 무언가에서 경이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몽골 여행은 뭐랄까.. 그 넓은 초원 가운데에서 인간이 만들어놓은 것들은 매우 작게 느껴졌다. 정확히는 대자연 앞에 인간이 만들어놓은 그 무엇도 빛을 잃었다. 영어에는 'Mother Nature'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인간을 포함한 지구의 모든 생명을 품는 대자연을 '어머니의 품'에 빗대는 표현인데, 몽골 여행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모든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넘어, 문자 그대로 'Mother Nature'의 품 안에 잠시 들어가 보는 경험이었다. 그 속에선 핸드폰의 시간을 확인하지도, 알람에 맞춰 일어나지도 않았고, 인간이 만든 모든 것, 심지어 우리 삶의 매우 중요한 한 부분인 핸드폰마저도 그저 하나의 기계덩어리로 전락하는 느낌이었다.
나의 여행 첫날은 이렇게 마무리 지어졌다. 몽골 시내에서 시작해 관광지와 테를지 국립공원의 한 숙소를 오가고, 말과 처음 조우했다. 그 하루의 끝, 나는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과 어머니의 품과 같은 자연을 가로지르는 어느 경계선 어디쯤에 서있었고, 다음날 그 선을 넘어 좀 더 자연에 다가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