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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동운 Don Ko Jul 19. 2024

한국 신문, 미국 신문

미국 이야기

81년 미국에 와서 보니 집도 크고, 차도 크고, 수박도 크고, 길도 넓고, 모든 것이 컸다. 신문도 그중 하나다. 그 무렵 한국신문은 16-32쪽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LA 타임스의 한 섹션이 한국의 일간지 분량과 비슷했다. 전국, 경제, 캘리포니아, 캘린더, 인터데인먼트, 스포츠 등의 섹션이 있었고, 모두 합치면 평일판도 50-60 페이지는 족히 넘었다. 게다가 미국 신문은 공휴일이 없다. 일 년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신문이 나온다.


일요판은 이 보다 훨씬 더 많아 끈으로 묶여 있었다. 부동산을 비롯 별도의 광고 섹션이 있었고, 주간지, TV 가이드, 그리고 컬러풀한 쿠폰들이 들어 있었다. 주말에 카페나 도넛 가게에 가면 일요판 신문을 사들고 와서 커피를 마시며 여럿이 모여 신문을 나누어 읽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월요일 회사에 출근하면 휴게실에는 누군가 가져다 놓은 일요판 신문이 있었고, 한쪽에는 필요한 사람 쓰라고 쿠폰을 놓아 두어 잘라 갈 수 있었다. 나도 이런 쿠폰을 오려 장을 보곤 했다. 일부 마켓에서는 더블 쿠폰이라고 해서 쿠폰에 적힌 금액을 두배로 계산해 주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섹션은 만화다. 한국의 스포츠 신문에 실리는 연재만화가 아닌 한쪽, 또는 네 쪽짜리 만화다. 전에는 두 페이지 가득 있었는데, 이제 줄어들어, 1과 1/3 페이지다. 다 인종, 다 문화가 공존하는 미국 답게 만화도 다양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브론디,’ ‘피너츠,’ ‘개구쟁이 데니스’ 도 있지만, 다양한 연령대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10대의 외아들과 사는 부부, 어린아이 셋이 있는 가정, 혼자된 늙은 아버지와 사는 딸 부부, 70대 노 부부, 중년의 미혼녀 등 우리가 흔히 이웃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린다. 어디서 들어 본 듯한, 언젠가 경험해 본 듯한 에피소드도 등장한다.


새로운 소식을 전하기에 신문은 이제 너무 느리다. 사건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금방 뉴스를 접한다. 그래서 신문은 속도보다는 심층 보도에 초점을 맞추고, 사건보도보다는 기획 기사를 많이 다룬다. 이런 기사를 접하면, 다큐 한편, 단편 소설 한 편을 읽은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아직 한국 신문은 매일 받아 보고 있지만, 미국 신문은 인터넷판을 구독한다. 잉크 냄새를 맡으며 종이 신문을 펼치는 대신 태블릿으로 신문을 본다. 편리한 점도 있다. 아침에 눈을 떠 침대에 누워 읽기도 하고, 밤에 잠들기 전에 잠시 보기도 한다. 기획 기사는 신문에 실리기 전 인터넷 판에 먼저 올라온다. 태블릿으로는 사진을 확대해서 볼 수도 있다.


다시 81년으로 돌아가, LA 와서 보니 현지에서 발행하는 한국 신문이 있었다. 종이값이 싼 탓인지 한국 신문도 분량이 꽤 되었다. 본국판과 미주판, 그리고 광고 섹션이 따로 있었다. 미국 신문과 다른 점은 일요일과 일부 공휴일에는 신문을 발행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이제 미국으로 이민 오는 한국 사람은 눈 씻고 잘 찾아보아야 할 정도로 줄어들었고, 한국어가 편한 1세대들은 노인이 되었다. 미국에서 자란 2, 3세들은 한국말을 하더라도 한국 신문을 보지 않는다. 그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하며 종이신문을 잘 읽지 않는다. 구독자 수가 줄어들자, 광고도 줄어들었다. 신문사들은 경영란에 힘들어한다.


LA 타임스도 신문의 분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평일 신문은 30-40쪽에 불과하다. 한국 신문은 이제 토요일에는 발행하지 않는다. 미주판에 글을 싣는 필자들도 모두 60-70대, 독자도 필자도 모두 노인이다. 과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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