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가을 학기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하나를 배우면 둘과 셋을 스스로 깨우친다고 하지만 그다지 잘하지 못하는 사람도 계속하다 보면 깨달음이 오는 때가 있다. 요즘 내가 그렇다. 아내가 대단한 작가(artist)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내는 10여 년 전, 5-6년 동안 LAVC에서 거의 모든 미술 실기 공부를 했다. 그림 그리기 (drawing/life drawing), 수채화, 아크릴, 유화 등을 기초반부터 상급반까지 들었고, 나중에는 독자적으로 수업을 이어가는 independent 클래스도 들었다. 그 후 조카아이들이 우리와 함께 살게 되며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붓을 놓았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학교 수업을 들어보니 미술 클래스에서 한 학기에 실제로 그리는 그림의 숫자는 3-4개에 불과하다. 화가로 인정받고 성공하려면 독창성과 창조력이 돋보이는 작품을 그려야겠지만 공부하는 과정에서는 우선 많이 그려 보아야 한다. 그래야 의도하는 작품을 마음대로 그릴 수 있다.
아내는 미술 수업을 들으며 매주 그림을 2-3개씩 그렸었다. 매년 학교 전시회에 초대되어 작품을 전시했고, 교수의 추천으로 지역 화가들에게 전시 공간을 내어주는 월남식당에 한 달 동안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었다. 학교 초대전 팸플릿과 포스터에도 아내의 작품이 실렸었다.
난 그때 그러려니 하고 별생각 없이 지냈다. 붓을 들어 그림을 그려보니 아내가 참 대단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난 숙제만 겨우 마치며 학교에 다닌다. 과제를 받으면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있어도 테크닉이 부족해 엄두를 못 내고 쉬운 쪽으로 간다. 영어공부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림에도 왕도는 없다. 흘린 땀만큼의 결실이 있을 뿐이다.
이번 과제는 캠퍼스 공간에 과거 또는 미래의 이야기를 담아 그리는 것이었다. 아트 빌딩 복도에 있는 전시 공간에 50년대 TV와 전화기를 넣은 그림을 그렸다. 다양한 빛을 그라데이션으로 표현했어야 하는데 잘 되지 않았다. 디스플레이 케이스의 입체감이 부족하고 벽면에도 다양한 빛과 그림자를 넣지 못했다. 그래도 지내놓고 보면 지난번 그림보다는 조금 발전한 듯싶어 자위한다.
목요일, 집에 오는 차의 운전기사는 72세의 아주머니였다. 파트타임으로 일을 한다는 그녀는 딸과 함께 모빌홈에 산다고 했다. 한때 은퇴했다가 생활고로 복직했다는 그녀는 언제까지 일을 계속해야 할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다음 주 화요일에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번 선거의 관건이 경제였다는데, 그녀는 누구에게 투표를 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