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15 늦은 기록
최서영 작가이자 아나운서, 가전주부로 알려진 유튜버인 그녀의 최근 도서에서 영감을 받아 글을 남긴다.
실패를 예상하고 대응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방법은 있다고 믿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이며, 해결방법을 찾는 해결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잘될 수 밖에 없는 너에게
나 또한 과거 10대 정확히는 17세~24세까지는 무기력하게 살아왔다.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기 시작할 무렵에 나는 서울의 작은 동네에서 대치동으로 이사를 갔다. 초등학생의 생각으로는 새로운 학교를 가고, 친구가 바뀜, 잠자는 곳의 변화 정도로만 이해하였지만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우리아버지는 결정과 실행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사를 온 후 처음으로 본 수학시험은 42점이었다. 이전 초등학교에서는 100점을 수시로 받았던 나로서는 충격을 받았. 어머니께서 학업과 학원의 수준이 다를 것이라는 예고편을 간과한 것이 문제였다. 다행히 다음 성적에서는 이전의 학교에서와 유사한 성적을 이어갔지만 그때의 충격은 마흔이 가까운 나이임에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초등학생의 나이였지만 가히 충격적인 사건이었기에 그 이후로 전반적으로 의기소침하게 지냈던 것 같다. 친구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분(?)들의 부모님의 직업은 의사, 변호사가 대부분이었고, 하교 시간이 되면 학교 앞에는 온갖 외제차들이 친구들을 학원에 실어나르기 위해서 대기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었다. (대치동 학원가가 걸어서 5분이면 갈 길이긴 한데 왜 그랬나 싶기도 하다.) 명품은 잘 몰랐었지만, 고3이 되면서 친구들이 하고 다니는 옷과 가방들이 수백만원을 넘는 "루이비똥"과 "구찌"였던 것을 나중에 알았을 때는 상대적인 박탈감이 더욱 컸다. 그러한 물질적인 것들이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매사에 더욱 더 위축들었다.
다행히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덕에 중상위권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 전역하고 직장을 다니면서는 그러한 태도의 변화가 이루어졌다. 뭔가 축구에 비교하자면 의사, 변호사를 목표로 하는 축구 리그에서 후보선수로 활동하다가, 건설관련 전공으로 리그가 바뀌면서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분야로 넘어오면서부터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 내었다.
할수 없는 점에서 고민을 하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분야에서 더욱 에너지를 쏙도 배우는 것에서부터 달라졌던 것으로 생각한다.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세상을 맞서면서 긍정적인 태도로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다보면 눈빛은 살아나고 생동감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 의기소침했었던 래리킴을 가엽게 생각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러한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이 건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도 생각이 든다.
어려운 시기에 있거나 환경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 더욱 집중을 하면서 자신감을 하나씩 쌓아가다보면 자신감을 더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짧은 글이지만, 그러한 분들에게 도움이 일부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래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