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생물학적으로 마흔이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국제적 나이표준으로 세는 흔히 한국에서 세는 ”만 나이”로는 여전히 35개월이라는 넉넉한 시간이 남아있긴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흔히 통용되는 나이로는 내년이면 마흔이 되는 나이다. 30대와는 사뭇 다르게 40이라는 숫자는 100이라는 숫자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절반에 가까운느낌이 들어서 그런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받아들이는 방식도 점차 바뀌어 가는 것같다.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한 번 더 다루는 큰 주제로 하고, 오늘은 건강염려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최근에 들어서 장례식장을 가게되는 빈도가 많아졌다. 10대에는 외할머니 장례식 한번이었던 것 같고(2002년), 20대 이후에는 드물었지만 간혹 친구들의 외조모, 외조부 상에 조문을 하기도 앴다. 30대에 들어서는 친구, 회사 동료의 부모님 장례식을 가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빈도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다만, (그냥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코로나를 겪은 이후부터는 장례식이 급하게 많아졌다. 빈도도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강도도 점차 크게 다가왔다.
죽음을 통해 영원히 이별을 한다는 의미가 과거에는 추상적이었다면, 지금은 굉장히 구체적으로 눈 앞에 그림이 그려진다.꽤나 구체적이다. 특히나 얼마전 다녀왔던 학교 선배이자 같은 회사에 다니는 분의 배우자상에 다녀왔을 떄에는 마음이 굉장히 무거웠다.내가 알고 있었던 형님은 온데간데없고, 체중은 80kg가 넘는 건장한 체격에서 60kg대까지 거의 20kg가 빠졌다고 한다. 눈은 퀭하고, 아내의 간병을 위해서 많은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면서 있었던 일들과 중간중간의 희망이 있었던 시간, 수술을 하는데 사무적인 태도의 의사로부터 느끼는 서운함, 2인병실을 사용하지 못하고 4인실을 쓰게 한 점부터, 손짓과 끙끙 앓는 신음소리로 아픔을 표현하였는데 병실의 다른 사람이 새벽에 자야된다며 다그쳤던 일의 반성까지...혼자서 본인이 겪었던 것들을 그대로 덤덤히 읊어내며 촛점없이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고나서부터의 약 10개월 간의 세월을 느낄 수 있었다. 거의 말에는 겨울내 바싹 말라진 낙엽처럼 슬픔이라는 감정이 묻어나오지 못하는 상태였다. 아내를 잃은 슬픔과 남겨진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을 간신히 견더내는 그의 모습에서 대단한 정신적이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정확히는 말로만 생각했던 것에서의 구체적인 처리방식, 그 이후의 삶의 태도까지 종합적인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전에 준비하면서 대비하는 것보다는 그 사건을 당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이 든다. 연말 바쁜 회사 업무로 인해서 11시가 넘는 시간에 찾아가서 민폐라 생각했지만,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낸 2~3시간 남짓동안 나와의 대화가 그에게 힘이 되었기를 바라였고, 나 또한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 기회가 되었다. 일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되는 전환의 기회가 되었다.
2024.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