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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초 Aug 21. 2019

안타까운 날

20190615

매실의 씨를 발라내라고 말했더니 남자 1은 완전히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걸 어떻게 다해? 뭐하러 많이 보내셔 가지고... 내년부턴 아예 보내시지 말라고 해."

며느리인 나는 따러가지도 않은 걸 보내주신 게 고맙기라도 한 마음인데, 친아들은 그냥 매실 씨를 발라내기가 엄청 싫은 것 같다. 혹은 자신은 이 일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아마도 결국은 하게 될 나의 힘듦을 걱정하는 듯한 발언이다.

"계속 두면 독성이 생긴다잖아. 100일 지나서 건져내야 한다는데, 7,80%가 흠집 난 것들이니 칼 잡은 김에 씨도 같이 발라내자고." 

"그냥 하지 마."

버릴 마음은 없었지만,

"그래?... 그럼  딱 버리면 되겠다."

남자 2는,
"할머니는 왜 많이 보내셔 가지고...(엄마 힘들게)"

아이가 특별히 효자 여서도 아니고, 할머니를 싫어해서도 아니다. 기말고사 준비로 바쁜 자신에게는 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엄마에 대한 믿음에서 마음 놓고 엄마 우호적인 발언을 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것도 안 시키고, 힘든 티도 안 내고, 완성품만 보여줬다면 남자 1은 내심 흐뭇해했을 것이다. 남자 2는 아직 매실진액에 관심도 없으므로, 지나가다 보고 '엄마가 또 뭔가를 만들었구나.' 하고 말았을 것이다. 

어머니의 아들이나 나의 아들이나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만 매실을 바라보고 있다. ㅜㅜ  

일기를 쓰던 도중 이변이 발생했다. 새벽 1시 축구를 보기 위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 남자 1이 갑자기 일어나서는 칼을 잡은 것이다. 그리고 매실 씨를 발라내기 시작했다. 11kg 중 어느 정도나 발라낼지 일기를 쓰면서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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