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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평강 Sep 26. 2023

[바이블클래스] 예수님은 실패를 어떻게 보실까?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다 

우리는 너무 자주 실패하고 끝없이 낙담한다. 말씀을 따라 살다가도 연약한 우리는 모든 것이 의심스러운 순간을 맞이한다. 원죄를 가진 인간의 한계다. 나는 끝없는 의심 속에 빛을 찾지 못하는 순간을 '인생 부정기'라고 부른다. 지난 성공도 현재의 낙담 앞에서 힘을 잃어버리는 시기. 그래서 모든 인생을 부정하는 시기다. 내가 그랬다. 브런치에는 애써 '믿음'을 적었지만, 사실 마음속에선 계속해서 후회의 말들이 차올랐다.


요즘 나와의 대화에서(내 안에서 내가 대화하는 순간) 가장 핫한 주제가 바로 '만약(If)이었다. 만약에 내가 그때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낙담스러운 일들을 피할 수 있었을까? 계속되는 실패 앞에서 주눅이 들었다. 하나님 안에서 확신했던 모든 선택들이 사실은 나의 생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게 아니라,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린 것 같았다. 인생 하나하나가 후회스러웠다. 


요즘 가장 크게 후회되는 일이 있다. 잘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석사를 시작한 일이었다. 그때는 석사를 시작하는 이유가 분명했는데, 지금은 누가 나에게 "왜 공부를 시작했나요?" 하면 "그러게요..(한숨)"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4학기 안에 졸업할 줄 알았는데 나는 지금 6학기 째 장수생이 되었다. 공부가 길어지다 보니 사람들은 내가 박사를 밟는 줄 안다. "저는 석사생입니다."라고 정정할 때마다 수줍어졌다. 내 동기들은 평균 3~4살 어리다. 가장 많이 차이나는 동기는 8살 차이까지 난다. 


한때는 내 이력에 자부심이 있었다. 그래도 현장에서 일을 해보고 학교에 왔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객관적이고 현실적으로 학문 세계를 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젊은 동기들과 경쟁에서 살아남기란 쉽지가 않았다. 학교 졸업 후 6년이란 시간 동안 공부하는 방법을 잊었다. 무엇보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았다. 동기들은 일주일 밤을 새도 그럭저럭 며칠 자고 일어나면 회복했다. 나는 하루 밤만 새도 일주일은 몽롱한 상태로 공부를 해야 했다. 2년 정도는 버틸만했다. 새로운 시작이 주는 설렘이 도파민을 뿜어냈다. 하지만 2년 동안 공부만 하다 보니 몸이 상했다. 운동도 한다고 한 것 같은데, 체력은 전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세월에 무상함을 느끼며, 곧 노안이 오거나 시력이 떨어져서 글자 자체를 못 읽는 때가 오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께 기도도 해봤다. 

"전 한 발자국도 더 못 나갈 것 같습니다. 독수리 같은 힘을 주세요. 새 힘을 부어 주세요."

힘이 차오르지 않았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체력만 소진되고 공부할 시간만 줄어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에 에너지가 고갈되어 가는 게 느껴질 때쯤 교회 공동체 수련회를 통한 은혜가 있었다. 




수련회 주제는 마가복음 4장이었다. 이 장에는 광풍과 풍랑 속에서 극한의 두려움에 빠진 제자들과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온다. 


마가복음 4장 35-41절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제자들을 보면 알겠지만 예수님과 다녀도 '풍파'는 찾아온다. 무튼 이 구절에서 주목해야 할 건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라는 예수님의 제안이다. 예수님은 험한 바다를 모르고 계셨을까? 나는 예수님이 그마저도 아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풍파가 예상되는 바다를 건너 가자고 하셨다. 험한 바람과 물결이 이는 곳을 먼저 제안하셨다. 


이 말씀을 듣는데, 마음이 고요해졌다. 제자들 앞에서 '잠잠하라 고요하라'라고 바다를 꾸짖으시던 예수님이 내 마음에도 명령하셨다. 고요한 마음 뒤로 하나님의 마음이 들렸다. 


"너는 너의 인생을 후회할지 모르지만, 나는 너의 인생을 부른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나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신다. 나를 도와주고 내 삶을 돌보기로 작정하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신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평안이 찾아왔다. 


내 눈앞에 문제들은 여전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이 바뀌었다. 내 삶이 하나님의 목적 안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하니 인생에 불어닥친 풍랑이 두렵지 않았다. 나에게 '저기로 건너가자'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이 이 풍랑을 곧 잠잠케 하실 것이란 확신이 생겼다. 


예수님은 우리를 잘 아신다. 우리의 연약함이 무엇인지, 소망이 무엇인지, 나의 감정 하나까지도 살피신다.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시 71:6)


시편 저자는 고백했다. 나를 이미 택하신 분이 계신다고. 

예수님은 실패를 실패로 보지 않으신다.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실 기회로 보신다. 

예수님은 풍랑 앞에 허둥거리지 않으신다. 오히려 '잠잠하라'며, 그 풍랑을 잠재우시는 분이다.


실패, 두렵다.

실패, 당혹스럽다. 

실패, 때론 죽기보다 싫다.


하지만 우리가 실패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전능함을 영영 구경도 못할지도 모른다. 

실패의 자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을 경험할 수 있는 은혜의 자리다. 

제자들은 풍랑 속에서 예수님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지금 실패의 때는 하나님을 고백할 가장 완벽한 타이밍이다. 


"와! 당신은 누구 시기에 나의 실패도 승리로 바꾸십니까!"

영적 무기력에서 빠져나와 기지개를 켜고 하나님의 승리를 바라보자.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셨다. 당신의 실패를.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신다. 자신의 능력을! 

그래서 두려움 없다. 나의 실패는 하나님의 능력을 만나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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