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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평강 Jan 29. 2024

하나님이 우울증도 고쳐주나요?

[우울증 치유기] 시리즈 1 - 시편으로 시작한 치유의 과정 

☀︎이 이야기는 의학적 소견과는 무관한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작성합니다. 심리학, 정신학, 치유와 관련한 책을 두루 섭렵하고, 오랜 상담을 거쳐 끝내 하나님 앞에서 치유받은 지극히 사적이지만 결코 주관적이지만은 않을 그런 이야기를 담습니다. 당신도 어느 날, 출구 없는 터널 같은 우울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오랜만에 우울증을 가진 친구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설교를 듣다 보면 내가 믿음이 없어서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 같아 마음이 어렵습니다."


우울증을 앓는 크리스천들이 가장 자주 하는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 우울증의 기본 증상은 슬픔, 무기력, 권태감, 불안, 두려움 등인데 내 마음에 자리 잡은 근본 감정이 하나님이 말하신 것들에 하나도 부합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울증을 가지고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고, 우울증이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아직 내가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증거처럼 생각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러다 보니 애써 우울증을 감춥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밝은 믿음이 아니라, 속은 썩어 들어가는데 "믿습니다. 그렇죠 지금 살아 있는 것도 은혜죠!"와 같은 번쩍거리는 말들로 갑옷을 지어 입습니다. 


제가 우울증이라는 걸 인정하게 됐던 건 23살 때였습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났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이혼을 하셨다가 재결합하셨는데, 불화가 심해져 다시 이혼을 하셨습니다. 제겐 두 번의 상처였습니다. (브런치북 '이혼도 유전이 되나요'에 자세히 써놓았습니다.) 


저는 엄마, 동생과 다세대주택 빌라의 맨 꼭대기 층, 다락방 같은 곳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저희 집은 해를 거듭하며 가난해졌고, 이제는 그나마 있던 가정도 반쪽자리가 되어버렸습니다. 꿈도 많고, 욕심도 많은데 매일 수업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취업은 해야 하는데, 남들 흔히 듣는 토익학원 마저 등록할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카페를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였습니다. 손님이 없어, 카운터 근처에 앉아 해가 지는 것을 봤습니다. 저녁이 오며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깔리던 시간이었습니다. 짙은 색이 가라앉듯, 그날 제 마음에도 어둠이 깔렸습니다.

영원히 이 가난이, 불행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이 엄습했고, 카페의 주황 전구가 머리를 어지럽게 했습니다. 


온몸에 힘이 풀렸습니다. 커피잔을 닦아야 하는데, 커피잔 하나를 제대로 쥘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몹시 초조했고, 곧 정신을 잃고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겨우 정신을 부여잡고 아르바이트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집에 가자마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너무 두려웠습니다. 모든 것이 나를 공격하는 것 같았습니다. 거실의 시계 초침이 째깍째깍 흐를 때마다 이런 말이 함께 들렸습니다. "넌 곧 죽을 거야." 

"넌 죽을 거야." 


난 아직 죽고 싶지 않은데, 곧 죽을 것 같았습니다. 초조한 마음 때문에 눈물이 계속 흘렀고, 차라리 당장이라도 죽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내 마음과는 다르게 누군가 내 안에 들어와 나를 조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가 육체 안에 갇혀서 죽어가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저 울기만 했습니다. 가족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아침이 되면 꾸역꾸역 괜찮은 척을 했습니다. 하지만 증상이 계속 심해졌습니다. 


거울을 보는데, 낯선 사람이 서있었습니다. 분명 어제까지 보았던 나인데, 내가 나가 아니라 그냥 껍데기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증상을 찾아보니 '이인증'이라고 하더군요. 


이인증을 찾아보니 "자신의 삶을 외부에서 관찰하는 사람처럼 자신의 신체나 정신적인 과정으로부터 분리된 느낌(이인화) 및/또는 자신의 환경으로부터 분리된 느낌(현실감 상실)이 지속되거나 반복되는 것"이라고 나옵니다. 


제가 기계처럼 느껴지고, 제 삶이 마치 꿈같았습니다. 사실 눈을 뜨고 일어나면 제 모든 환경이 사실은 진짜 나의 꿈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보도블록이 튀어나와서 걷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매일 밤 울다 지쳐 잠이 들면 죽음을 알리는 시계의 초침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깼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동네 신경정신과를 찾았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취업에 정신과 기록이 공개되어 취업을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내가 정말 미쳤기 때문에 앞으로 결혼도 못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면 어떻게 되나? 그래도 일단 가보아야겠단 생각에 정신과를 찾았는데, 그날 유독 사람이 많았습니다. 


진료 대기 시간이 한 시간 정도가 된다고 했습니다. 제 앞으로 3명의 대기자가 대기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중에 기억나는 건 할머니, 30대 중반의 남성, 아주머니 한 분이었습니다. 

작고 살집이 있는 30대 중반의 남자는 스포츠머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얼굴과 눈두덩이가 붉어져 있었습니다.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울었구나.'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살들이 짓눌려 있었습니다. 툭 치면 금방이라도 핏방울 같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다른 한 분은 아주머니였습니다. 아주머니는 매우 신경질적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대기시간이 긴 건가 하면서 화를 냈습니다. 혼잣말이지만 혼잣말이 아닌 누군가 반응해 주기 바랄 때 나오는 어투였죠. 듣고 있는데 저까지 신경질이 났습니다. 


마지막으로 머리가 허연 할머니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신문의 사건들을 살펴보며 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신문에 난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사고들을 하나하나 읽어주시려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이비 종교의 목사가 신도의 돈을 갈취한 이야기 등을 저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지금 나도 저 사람들과 같은 모습일까?'

'한눈에 보기에도 희망 없는 얼굴을 하고 있을까?'

'지금 내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당시 저희 교회의 표어는 '예수가 희망이다'였습니다. 그 표어가 떠올랐습니다. 


'예수가 희망이라는데, 성경을 보면 예수가 병을 고치는데, 나도 한 번은 예수님한테 먼저 진단을 받아봐야겠다.' 


내가 저 진료실 문고리를 열고 들어가는 순간 두 번 다시 난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대기실 소파를 박차고 일어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4층, 다락방. 일어서면 머리가 닿는 낮은 층고의 제 방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저 좀 고쳐주세요.."


그리고 두꺼운 성경을 펴서 무릎에 올려놓고 무작정 시편을 폈습니다. 그리고 소리 내 읽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흑,, 악인들의 꾀를 다르지 아니하며,,, 흑,,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 마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편 1편 1절)


그냥 읽었습니다. 눈물이 마르질 않았지만, 그냥 읽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시편 3편 1절)


31편쯤 넘어가기 시작하며 마음에 안정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시편 31편 9-10절)


"여호와여 주의 노하심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분노하심으로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시편 38편 1절)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픔 중에 다니나이다."(시편 38편 6절)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시편 38편 8절)


시편 저자의 상황이 나 같았습니다. 내가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 하지만 가슴과 목구멍이 슬픔으로 콱 막혀 버려 토해지지 않던 슬픔의 말들이 시편에 쓰여있었습니다. 마치 내가 쓴 것처럼 나의 마음을 정확히 표현하는 구절들이었습니다. 부모에게 상처를 줄까, 친구들이 나를 멀리할까, 교회에서 구원받지 못했다는 소리를 들을까, 크리스천 답지 않다는 비난을 들을까 두려워서 꺼내지 못했던 말..


나는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주르륵 소리를 내어 읽어갈수록 눈물이 그치고, 정신이 또렷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머리가 쾌청해졌습니다. 내 영혼이 나의 작은 육체에서 해방된 것 같았습니다. 내 머릿속에서 끝없이 불안을 말하던 앵무새가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마치 나를 가두던 철장이 벗겨지고 빛을 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됐다! 하나님이 살려주셨다." 


시편을 읽고 잠이 들었고, 다시 일어났을 때 이인증이 사라진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낯설게 보이는 강도가 약해졌고, 남동생과 이야기를 나눌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그렇게 깊은 수렁에서 건져주셨습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시편 40편 2절)


저의 치유는 시편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치유는 즉각적이었지만, 모든 우울과 불안이 한꺼번에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후 저는 약 10년간 우울증과 사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중간에 믿음을 잃고 마음대로 살며 죄의 문제와 우울증이 겹쳐져 나락까지 떨어진 적도 있었고, 삶에서 고난이 겹쳐지며 완전히 우울증에 짓눌려 죽기 직전까지 갔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끝내 치유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2013년, 살려달라는 저의 간절한 부르짖음에 응답하셨고.

약 10년간의 여정을 통해 '완전한 치유'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혹시, 지금 살아야 하나요?

그럼 이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고쳐주세요."

딱 이 두 마디면 됩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내가 고쳐져야 하는지 설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도움을 요청하면 됩니다.

그리고 시편을 읽으세요.


하나님이 억울한 다윗에게 그러하셨듯,

희망 없음에 절망한 저에게 그러하셨듯,

당신을 일으켜 세워주실 것입니다.


제가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장 3절.


당신의 치유는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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