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이탈리아 자동차 여행
퇴직하고 한 달이 지난 어느 날(2023. 2.) 문득 이탈리아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신용카드로 쌓아둔 항공마일리지로 예약이 될까 검색했다. 가능한 항공권은 없었다. 혹시나 해서 1인당 가능한 대기 예약건수를 총 동원했다. 당연히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비용지출도 없고 예약대기에 큰 품이 들지 않은 일이라 어려움도 없었다.
덜컥 걸렸다. 2월 말에 항공일정이 확정되었다. 4월 초에 가서 5월 초에 돌아오는 일정이다. 거기에 가는 날과 오는 날의 간극을 약 33일로 했다. 왜 하필 이탈리아였을까? 아마도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분이 그곳에서 사업을 했던 영향도 있었을게다.
퇴직여행으로 명분을 삼았다. 잘 된 셈이다. 자유투어, 차를 빌리기로 했다. 국제면허증으로 운전이 가능한 곳이고 운전대도 우리처럼 왼쪽이다. 항공일정 컨펌으로 인해 초 단기간에 행선지를 정하고 여행준비를 했다. 장고 끝에 악수라는 말처럼 우리의 선택이 악수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여행준비를 위하여 아내와 역할을 분담했다. 나는 한 달 동안 전체 일정을 짜고 도시별 머무는 날 수를 계산했다. 아내는 취사에 필요한 기본 도구와 양념 등을 준비했다. 이동은 렌터카로, 숙소는 취사가 가능한 에어비앤비로 하고 예약은 도시 이동 전에 하기로 했다. 소매치기, 좀도둑, 인종차별 등에 대비해 마음을 다지고 먹을거리와 옷가지도 준비하다 보니 어느새 떠날 날이 빠르게 다가왔다.
여행의 경험이 다양한 편은 아니다. 1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떤 연유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의아하기까지 하다. 일종의 생존게임으로 여겼다. 차량렌트 예약, 수령, 반납, 에어비앤비 숙소 호스트와의 소통, 내비게이션, 성격 급한 현지인의 운전습관도 고려해야 했다. 이탈리아만이 가지는 관광지 주변 차량진입금지구역인 ZTL 우회하는 방법, 주유소 이용, 고속도로 톨게이트 통과 등 인터넷 카페를 돌아다보고 메모하고 뭐라도 적어놓아야 그나마 안심이 될 판이었다.
아내와 함께 연신 '원팀'이라고 외치면서 팀워크를 다졌다. 사람 사는 곳이니 가면 된다 하면서도 내심 걱정이었다. 30인치 캐리어 두 개에 보조가방 각각, 그리고 내가 챙기는 배낭하나까지 총 짐이 다섯 개다. 휴대폰 분실과 도난에 대비한 줄을 달고 유심칩도 준비했다.
도착하는 날,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출발 전에 숙소에서 제공하는 픽업서비스를 예약해 두었다. 여행 첫날에 숙소를 찾는데 헤매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영화에 나올법한 올백의 헌칠한 남자를 공항에서 만났다. 여행이 시작되었다.
4월인데도 햇볕은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했다. 주요 관광지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이 다양한 피부색 인종으로 가득하다. 그 무리들 중에 우리도 한몫했다.
렌터카 사무실을 찾는데 족히 한 시간은 소요했다. 안내판도 부족하고 몇 마디 영어도 알아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차를 수령하고 시내로 나왔다. 아내는 조수석에서 '천천히 그리고 침착하게'를 반복하면서 안전운행을 도왔다. 한 시간쯤 후에 고속도로에 들어가니 조금 나아졌다.
고속도로 운전은 시내보다 용이했지만 유료도로의 입출이 걱정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교통 안내표지판을 학습했고 지불방법도 확인해지만 막상 기억이 나질 않았다. 실전은 어려웠다. 좌충우돌이다. 다행히 차가 아주 많은 편은 아니어서 게이트를 잘못 들어가도 다시 나와서 맞는 곳을 찾아 재진입하곤 했다. 문제는 아니었지만 긴장감은 컸다.
이동시에는 휴대전화기에 미리 다운로드한 현지 내비게이션과 구글지도, 두 개를 이용했다. 하루정도 지나니 조금 익숙해졌다. 여행 중 고속도로 1차선은 상시 추월차선으로 이용하는 것에 조금 놀랐다. 급하고 다혈질로 알려진 이탈리아 사람들의 습관이라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가장 인상 깊었던 드라이빙에 대한 기억은 세 번이다. 처음은 남부 포지타노를 가는 아말피 해안도로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절벽과 해안을 낀 왕복 2차선의 좁은 길이다. 구불구불하니 더 스릴 있다. 두 번째는 이동 중에 사계절을 다 볼 수 있다는 돌로미티 산악지역의 구불진 길이다. 4월임에도 주행 중 폭우와 눈도 만나고 환한 햇빛과 꽃도 본 곳이다. 세 번째는 볼차노에서 밀라노로 가는 중에 보이는 바다를 닮은 큰 호수를 낀 드라이빙이다. 세 곳 모두 007 영화 등 액션 스릴러 영화의 배경이 될 만큼 멋진 드라이빙 코스이다. 세 곳 모두 좌우로 펼쳐지는 자연의 풍광이 매력적인 코스였다. 누군가 이탈리아 자동차 여행을 한다면 반드시 거쳐 오라고 말해주고 싶은 곳이다
휴양여행은 아니었다. 늘어질 여유가 없었다. 매일 일정을 체크하면서 낯설고 생소한 길을 내비게이션 안내대로 이동하고 숙소도 찾아야 했다. 모든 게 낯선 것에 대한 긴장감은 생각보다 컸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익숙해지고 자유스러움도 즐길 수 있었다. 지나다가 경치가 좋으면 쉬어 가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고 그러면서 일정은 좀 더 유연해졌다
슈퍼에 들러 식자재도 구입하여 하루 중 한 끼는 음식도 해 먹었다. 와인과 맥주는 물론 파스타와 피자 역시 쉬는 날이 없었다.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마음대로 쉬어보자고 시작한 여행이지만 돈 쓰는데 익숙지 않고 좋음을 즐기지 못한 세월에 다소 자연스럽지 않고 머뭇거림도 있었다. 그럼에도 여행기간 중 큰 호사를 누렸다는 생각이다.
힘들면 쉬어가고 유적지보다는 자연풍광에 더 눈이 갔다. 매일 파랗고 깨끗한 하늘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축복받은 사람들이라는 생각 했다. 여행도중 천사 같은 호스트도 있었고, 이해득실을 따지거나 시크한 이웃처럼 줄 건 주고, 받을 것은 받는 분들도 있었다.
머물렀던 에어비앤비의 뒷정리는 처음 상태만큼 더 깔끔하게 정리 후 퇴실했다. 민간차원의 한국의 위상을 높이려 나름 노력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에어비앤비 게스트가 숙소 및 호스트에 대한 후기가 있는 것처럼, 호스트도 게스트에 대한 후기를 남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고가 되면 좋겠다.
한편 이탈리아에는 약 삼만 개 정도의 성당이 있다고 한다. 이동 중에 수많은 성당이 있었고 가능하면 특색이 있는 곳은 들르려고 했다. 여행 중 성당을 방문하는 일은 기분 좋은 일중 하나였다. 그때의 기도가 지금의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주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시간을 아내와 함께 할 수 있었음이 좋았다.
한 달 이상을 아내와 24시간을 보냈다. 지금까지 이처럼 오랫동안 둘만이 같이 있는 시간은 거의 처음이다. 둘이 지내는 여행이다 보니 많은 얘기를 나누며 공감하는 시간이었다. 무리 없이 잘 지냈다. 나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컸던 이유였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음에 실감했다. 지금이라면 가능할까? 퇴직한 직후였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우린 이 때다 싶으면 해야 한다. 그때는 우리를 절대 기다려 주질 않는다. 그때가 언제인지를 알아차리고 놓치지 않으려고 우린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경제활동도 한다는 생각이다. 혹시 비슷한 처지의 분들이라면 익숙한 것들을 잠시 접어 두고 낯선 곳으로 가는 것을 권한다. 가능하면 멀리 그리고 낯선 곳으로 가길 추천한다.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살아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먼 미래보다 지금이 행복해야 함도 느끼면서 말이다. 그리고 각자가 지금 까지 잘 살아온 까닭에 긴 여행을 즐길만한 자격도 있음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