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블레
최근 딸 내외가 키우는 세 마리 고양이 중 노묘 한 마리가 아프다. 아픈 냥이(심바)와 둘째(레오)는 사위가 오래전에 2년 정도 간격을 두고 입양한 유기묘들이다. 레오는 다리가 부러진 채로 길에 스러져 있던 차에 발견되었던 냥이다. 지난해 가을 1개월이 갓 지난 귀여운 아메리칸 쇼트헤어(블루)를 입양해서 셋이 되었다. 이름의 앞 글자를 따서 심블레라고 부른다. 아픈 고양이는 그중 처음에 입양한 고양이다. 셋 중 맏이다.
사위가 학부시절 처음 유기묘 센터에 갔을 때 시선을 마주친 고양이였다고 했다. 마치 뭔가 운명처럼 다가왔던 아이라고 했다. 영화 '고양이 밥'에서처럼 어깨에 올려 학교에 데리고 다닐 정도라고 했다. 그만큼 심바는 사위와 청춘을 함께한 고양이 이상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사위는 고양이 양육에 관한 기본 상식은 물론 훈육이나 놀이에도 능숙하다, 기본적으로 동물에 대한 마음가짐이 남다른 고운 성정을 타고났다. 다행히 딸도 동물을 좋아하는 터라 냥이 세 마리와 잘 살고 있는 중이다.
심바는 코리안 쇼트헤어라는 노란색의 부드럽고 촘촘한 털을 가진 토종 한국 고양이다. 활달하진 않지만 마치 사색에 잠긴 것처럼 진중하고 노묘답게 지혜로워 보이는 아이다. 언제부턴가 소화가 원할치 않아 구토를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번처럼 기운이 빠지고 걷는데 불편을 느낄 만큼 아픈 적은 없었다.
급하게 병원에서 검사를 진행했다. 노묘에게 흔히 나타나는 신장과 심장이 비대해져 제 기능이 약화된 상태였다. 수분 공급을 위하여 주사를 놓고 수액을 주입했다. 식사 또한 주사기로 극 소량만을 주는 상황이었다. 3일 동안 병원에서 긴급치료를 받았다. 아침에 맡기고 오후에 데려왔다. 주말이 되면 집에서 집사인 사위가 그 행위를 반복했다.
아프다는 소식에 딸 내외 집에 방문했다. 이미 한 차례 대성통곡의 기운이 감돌았다. 왜 아니겠는가. 가족인데. 기운이 없어 축 쳐 저 있는 심바를 보니 마음이 애잔해졌다. 사위와 딸은 아픈 고양이를 무릎에 두고 주사기로 약간의 미음을 먹이기 위하여 애쓰는 모습이다.
딸내외는 심바가 아프기 전, 아침에 눈을 뜨면 건강한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았다고 했다. 당연한 게 아니라 감사할 일이었음을 느낀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두 어 차례 위급한 상황이 지나고 사위의 정성 어린 간호 덕에 조금씩 회복되는 심바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5킬로의 몸무게가 줄어든 사위와 딸의 얼굴이 조금 환해졌다. 그럼에도 긴장을 놓지 않은 모습이다. 약을 먹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심바에게 손을 물리거나 심지어 얼굴을 할퀴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집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모습이다. 하루종일 심바 옆을 지키며 관찰하는 사위의 모습을 보며 그래도 한편으로 심바는 행복한 고양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위는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아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심바에게도 사위에게도 지금의 시간은 다행이다
이러한 정성 덕에 심바는 약간의 호전으로 조금은 활기를 찾은 모습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반려동물은 가족이 된 지 이미 오래다. 강아지는 귀엽고 애교도 많지만 고양이의 경우 조금 다르다. 호기심도 많지만 시크하면서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 정말이지 매력적이다. 심블레는 어떤 액션이나 태도에 대한 반응이 즉각적이다. 가끔 그들을 만날 때면 나를 바라보고 소리 내는 모습에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하루 중 불편한 감정이나 신체적으로 겪은 피로감도 해소되며 한 번 두 번 웃음 짓게 한다.
사실 내 경우 사위의 고양이 삼 형제(심블레)를 만나기 전에는 고양이에 대한 편견이 심했다. 당연히 손으로 만지는 것은 상상도 못 했고 어린 시절 읽었던 소설 '검은 고양이'의 내용처럼 불길하고 조금은 두려운 영물정도로 생각했다. 훌륭한 사위 덕에 예전에 가진 양이에 대한 불편한 생각이나 편견은 사라졌다. 고상하면서도 친숙하고, 다가가면 차가운 모습처럼 휙 돌아서는 매력이 있음도 알게 되었다.
아마도 내가 가진 고양이에 대한 편견이 바뀐 이유는 동물이 가지고 있는 맹목적인 순수함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계에서 상처받고 지난 친 경쟁과 효율에 노출되어 여유를 가지지 못한 채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모든 게 과잉공급일 정도의 경제적 수준이지만 정작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세계 1위의 자살률, 행복지수 OECD국가 중 하위권의 오명을 가진 현실이다. 마음으로 아파하고 정석적으로 가지는 불안감이 크다. 각박하고 바쁜 일상에서 동물을 대함에는 계산하지 않고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순수함이 있다. 그 순수함으로 우리는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보이는 대로 바라보면서 힐링하게 된다.
이러한 순수함을 가진 애완동물과의 동거는 오히려 자연스러움이 되었다. 그들과의 눈 맞춤은 일방적 소통일지언정 복잡하고 힘든 일상에서 잠시 웃음 짓게 한다. 서로에게 위안을 주기도 하며 감정의 교류도 가능하게 한다. 단순하게 말 못 하는 생명체에 가지는 동정이나 연민의 수준이 아니다. 마치 같이 사는 냥이들과 친구인 양 지낸다. 그 순수함으로 서로를 속이려 하지도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집 근처 길냥이를 볼 때면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게 되었다. 가끔 집 마당에 찾아오는 날이면 사료와 물을 챙긴다. 플라스틱의 두부포장 상자를 버리지 않고 모으게 되고 길냥이에게 줄 사료도 사서 비치해 두었다. 처음엔 길냥이들도 겁먹고 몹시 경계하며 주저했으나 지금은 다가가며 사료를 주어도 그냥 보고만 있다. 더 가까워지면 아는 척이라도 할 기세로 보인다. 한마디를 건네며 웃는다. 천천히 잘 먹고 가라.
샛 중 맏이인 심바의 불편함 몸 상태와 집사가 겪는 힘든 시간을 지켜보면서 둘만의 사이에 소중한 관계를 헤아려 보았다. 입양 후 같이 생활하면서 서로가 나눈 감정의 교류, 때론 집사에게 위로도 주고, 행동과 태도로 위안도 주고받았음이 분명하다. 지금 집사의 극진한 간호는 어쩌면 전에 심바로부터 받은 위로와 위안에 대한 보답하는 보은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힘든 고비는 지났지만 아직도 진행 중이다. 영화 라이온킹의 주인공인 심바처럼 건강하고 지혜롭고 용기 있는 심바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애완동물과 주인(집사) 사이의 순수함 교감으로 소통하는 것처럼 우리 사는 세상에도 이해득실을 조금 덜 따지고 진정 상대를 위하는 순수함을 좀 더 가진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