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스타벅스
유럽의 물가는 정말 비싸다. 특히 북쪽으로 올라가면 갈수록 더 비싸지는 것 같았다. 영국에서 네덜란드로 갔을 때, 아 네덜란드 물가 정말 비싸네 생각했는데 네덜란드에서 덴마크로 이사를 오니 와 물가가 더 비싸네? 하며 정말 매일매일 몸소 체험 중이었다.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 상태로 덴마크를 온 데다가, 후덜덜한 물가에 집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약간은 부담스러웠다. 늘 그렇듯 숨만 쉬어도 돈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기에.
CPR 등록을 완료했던 날, 오늘은 cv를 한번 돌려볼까 싶어 아무래도 나에게는 제일 만만한 근처의 스타벅스를 가봤다. 마침 손님도 없고 한산하길래 파트너에게 "안녕, 나 일 구하는 중인데 혹시 하이어링 중이니?" 했더니 "아마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애매하게 대답하는 걸 보니 매니저가 아니었나 보다. 매니저가 있나 물어볼까 싶다가 그냥 cv나 주고 가려고 했더니 온라인 지원밖에 안 받는다고 했다.
덴마크의 스타벅스도 전부 프랜차이즈 스토어였는데, 내가 알기로는 3개의 회사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내가 물어봤던 코펜하겐 시내의 매장은 salling group이라는 곳에서 관리하는 곳이었고, 코펜하겐 중앙역의 스타벅스는 ssp, 그리고 공항의 스타벅스는 hmshost라는 회사에서 관리를 한다. (2019년 당시)
집에 돌아오자마자 시내의 스타벅스, 즉 salling group의 스타벅스에 온라인 지원을 검색해서 지원을 했으나 역시나 덴마크어를 못하는 외국인인 게 너무 티가 났는지 연락이 오지를 않았다.
시간은 참 빨리도 흘렀고, 주말이 지나 날씨가 좋았던 어느 평일 cv를 돌릴 겸, 광합성도 할 겸, 겸사겸사 시내를 나왔다. 맑은 날씨에 취해 걷다가 cv는 새까맣게 잊어버렸고, 나의 외출은 그저 관광으로 변해 있었다. 집에 가려고 메트로를 타려다가 제대로 구경을 못했던 Magasin du nord 지하 식품 코너를 구경했다. 음식 종류는 많이 팔지 않았지만, 식료품들은 참 정갈하고 보기 좋게 잘 진열되어 있었다. 네토나 리들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백화점 지하를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울린 전화 벨소리에 깜짝 놀라 전화를 받았는데 세상에나, 주말에 jobindex에서 보고 cv를 냈던 공항의 출국장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약간 인도 악센트 같았던 영어를 하던 매니저였는데, 악센트도 그렇고 주변이 약간 시끄러워서 100프로 정확히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내 경력을 보고 마음에 들어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내일 인터뷰 겸 트라이얼을 하러 오라는 얘기였다. 내가 잘 안 들려서 어디서 만날지 문자나 메일로 보내달라고 전화를 끊었고 바로 문자가 왔는데, 만날 장소와 함께 드레스코드를 갖춰 입고 오라고 했다. 아마도 트라이얼을 시킬 생각인 것 같았다. 덴마크의 스타벅스는 아직 영국이나 네덜란드처럼 바뀐 드레스코드가 아니라 예전 드레스코드인 듯싶었다. 다행히 검은 셔츠와 바지가 있어서 문제는 없을 듯싶었다. 오늘 내내 cv는 하나도 돌리지 않고 그냥 한량처럼 산책만 해서 조금 찔렸는데 기대도 안 했던 인터뷰 전화가 올 줄이야. 게다가 공항이라는 특수한 장소인데 외국인인 내가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설렘 반 걱정 반 마음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사실 그동안 두 번의 주말을 코펜하겐에서 보냈는데, 지내면 지낼수록 암스테르담이 더 생각나고 심지어 한국에 가고 싶기도 했다. 덴마크를 정말 너무너무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 어쩌다가 보니 오게 된 거라 뭔가 정이 안 든다고 해야 할까... 사실 그전에 네덜란드 생활이 너무 재밌어서 그랬던 것 같다. 이 정도 경력이면 일도 쉽게 구하겠지 싶었는데 일도 생각보다 구하기가 힘들어서 무기력함에 빠진 것도 한몫한 것 같다. 잡 서치를 해보면 대부분 일반 카페나 레스토랑도 you must speak fleunt Danish or one of Scandinavian language라고 쓰여 있어서 지원할 엄두도 잘 나지 않았다.
공항이 집에서 가까운 편이라 공항에 가서 입국장에 있는 스타벅스에 cv를 줬는데, 그 파트너는 매니저는 아니었지만 나에게 스칸디나비아어를 할 줄 아냐고 물었고 못한다고 하니 그럼 아마도 뽑힐 확률이 낮을 거라고 대놓고 얘기하길래 기분이 상해서 집에 온 일이 있었다. 일단 cv를 받아준 건 고마웠지만 그런 얘기를 내 cv를 보지도 않은 사람이, 게다가 매니저도 아닌 사람이 얘기를 하니 기분이 참 별로였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서 주말에 여기저기 잡 서치를 하다가 공항 스타벅스 2개의 구인 공고를 봤고, 어디가 내가 cv를 냈던 곳인지 몰랐기에 일단 둘 다 메일을 보냈다. 덴마크어를 못한다는 얘기를 쏙 빼고 나의 경력을 어필해서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이미 공항에서 언어 문제로 기분이 상해서 집에 온 터라 연락이 올 거라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연락이 온 것이었기에 흥분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다음 날, 드디어 덴마크에서의 첫 인터뷰가 있는 날이 다가왔다. 시간 맞춰서 만나기로 한 장소 앞에서 기다렸다. 점점 시간이 다가오자 갑자기 배가 아픈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솔직히 스타벅스 인터뷰는 늘 껌(?)이라고 생각해서 별로 긴장을 한 적이 없었는데 장소의 특수성 때문인지, 언어에 대한 불안함인지 안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긴장을 한 듯 싶었다. 매니저인 드완은 방글라데시 사람이었는데 꽤 친절했다. 시간에 맞춰 나를 데리러 왔고, 나는 좋은 인상을 위해 쫑알쫑알 말을 걸었다. 나는 인터뷰를 그냥 공항 어딘가에서 대충 보고 결과를 알려주겠지 했는데, 나를 공항 밖 아이디카드 발급 장소로 데려갔다. 네가 일하게 될 곳은 면세 구역에 있는 곳이라 비지터 카드가 필요하다면서 말이다. 아이디카드 발급은 공항 관할 경찰들이 담당하는 듯싶었다. 컴퓨터로 비지터의 이름, cpr, 전화번호를 적고, 또 다른 칸에는 비지터 인솔자의 정보를 적었다. 사진까지 찍고 제출을 누른 후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내 차례가 되어서 내 여권과 드완의 출입카드를 내고 몇 가지를 입력하더니 내가 입력한 내 신상과 사진이 프린트된 종이와 비지터 카드를 줬다. 다시 공항으로 들어가 승무원들과 공항 직원들이 출입하는 곳으로 들어가서 짐 검사와 엑스레이를 통과한 후 면세 구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여행 가는 게 아닌데 공항에, 특히 출국장에 온 건 처음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일하고 있던 두 파트너와 인사를 하고 커피 한잔을 받아서 앉을자리를 찾다가 바로 옆 프레타 망제에 갔다.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프레타 망제라니. 하지만 매니저는 프레타 망제도 같은 회사 소속이라 괜찮다고 했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자리에 앉아 본격적인 인터뷰를 했다. 사실 그렇게 거창한 질문들은 아니었고, 그냥 내가 어느 나라에서 일을 했었는지, 간단한 지원 동기 같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두 가지 예시를 주면서 내가 겪었던 일이 있으면 얘기해달라고 해서 한참 생각을 한 후 몇 가지를 얘기했다. 인터뷰 막바지에 일단은 15시간 아니면 20시간 컨트랙트밖에 줄 수 없다고 해서 흠칫했다. 덴마크에서는 20시간 일한 걸로는 집세를 내면 끝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시급은 꽤 높은 편이었고, 아주 이른 아침 혹은 저녁, 그리고 주말에는 페널티가 붙어서 시급이 더 높다고 했다. 쉬프트는 로테이션이지만 아마 아침에 일 할 확률이 높을 거라고... 나는 클로징 쉬프트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아침에 일하는 게 훨씬 좋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내 휴가 계획이 있는지도 물어보길래 4월 말에 네덜란드, 그리고 5월에 독일에 며칠 갔다 올 생각이라고 했고 어차피 지금 컨트랙트는 20시간이니 따로 휴가를 빼지 않고 갔다 올 수 있어서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대충 대화를 마치고 트라이얼 아닌 트라이얼을 하기 위해 오피스에 짐을 두고 건네받은 앞치마를 하고 나와 음료를 몇 개 만들었다. 주문 들어온 음료를 그냥 바로 만들라고 해서 우유가 헷갈리니 뭐가 스킴 밀크고 뭐가 세미 스킴 밀크인지 정도만 알려달라고 하여 음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다행히 컵에 쓰여 있는 손님의 이름도 어렵지 않은 이름이어서 음료를 만들고 핸드오프까지 정확하게 했다. 오랜만에 음료를 만들어서 아주 약간 긴장을 했지만 다행히 무사히 지나갔다. 손님 음료 3개를 만들고 충분하다며 이번에는 라테아트를 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로제타와 튤립 두 가지 라테아트를 한 후 다시 오피스로 돌아와 드완에게 내가 하는 거 어땠냐고 물어보니 아주 잘했다고 하며 축하해! 넌 이제 잡을 얻었어!라고 말해주었다. 너무 놀래서 정말? 진짜야? 고마워! 를 계속 연발했다. 사실 덴마크어를 아예 못해서 뽑히기 조금은 힘든 상황이었는데 오로지 경력만 보고 뽑아준 것이었다. 그나마 여기가 출국장이라 외국인 직원의 비율이 조금 더 높았다. 덴마크인 7 외국인 3 정도의 비율이었달까. 그나마도 다른 외국인 동료들은 덴마크 산지 꽤 된 사람들이라 덴마크어를 조금이나마 했지만 나는 아예 제로베이스였다. 그래도 상관없으니 뽑아줬겠지.
드완은 나에게 몇 가지 서류를 프린트해서 주며 집에서 작성해서 내일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 criminal record를 제출해야 한다고 해서 코펜하겐 중앙역에 있는 경찰서에 가서 뽑아오라고 했다. cpr 생성된 이후로 조회가 가능한데 나는 덴마크에 온 지 얼마 안돼서 며칠짜리 뿐이라 이런 것도 증명이 되나 급 걱정이 되었다. 혹시 이전 국가의 레코드가 필요하다면 네덜란드와 영국에서도 받아야 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런 말은 없었기에 일단 덴마크 꺼만 내면 될 것 같았다. 드완과 함께 다시 밖으로 나와 비지터 카드를 반납하고 나서 그럼 나는 언제부터 일할 수 있는 거냐고 물었더니 출입카드가 발급되면 바로라고 했지만 그 발급까지 거의 1-2주가 걸린다고 했다.
인터뷰 후 바로 공항에서 코펜하겐 중앙역을 찾았다. 중앙역에 있는 경찰서는 rejsekort를 만든 DSB 바로 옆에 있었다. 입구에 있는 경찰분에게 크리미널 레코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 물으니 nem-id가 있냐고 물어봐서 (아직) 없다고 하니 테이블에 있던 종이 중 하나를 주면서 작성을 하고 기다리라고 했다. cpr번호는 있었기에 종이에 cpr 번호와 집주소 등등 쓸 수 있는 건 최대한 쓰고 제출을 했다. 경찰서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금방 처리를 해줬다. 내가 받은 질문은 딱 하나, 무슨 이유로 이걸 발급받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발급 비용은 0원이었다.
어찌어찌해서 크리미널 레코드도 발급받고 드완이 준 아이디카드 발급을 위한 신청서를 작성을 마치고 다음날 다시 공항으로 가서 잡 컨트랙트를 썼다. 오피스에 도착했는데 담당자 이름이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 드완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었다. 다행히도 담당 부서가 적혀 있어서 제대로 찾아갔고 hr 담당자는 옆 방 담당자가 놀러 와서 수다를 떨고 있었고 얼떨결에 함께 인사를 했고 리사라고 내 소개를 하니 아, 네가 그 여러 나라에서 일한 리사냐며 반겨줬다. 어딜 가나 "여러 나라"에서 일한 게 주목을 받는 것 같았다.
딱히 문제가 되는 점은 없었지만 기억나는 건 백그라운드 체크를 굉장히 꼼꼼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지난 3년간의 경력 중에 28일 이상의 갭이 있는지 없는지 체크를 했다. 그 외에 어제 받아온 크리미널 레코드, 그리고 지금 가지고 있는 비자 체크까지. 비자에는 일을 할 수 있는 기간이 9개월로 제한되어 있어서 컨트랙트도 딱 9개월로 했다. 시간은 일단 20시간으로 적었지만 수많은 나라의 스타벅스 근무 경험상 20시간 컨트랙트여도 거의 기본 20시간에 오버타임은 늘 있었던 터라 딱히 걱정은 되지 않았다. 아직 계좌 오픈만 하지 못해서 그 부분만 빈칸으로 남겨두었다. 계약서는 친절하게도 덴마크어는 물론 영어도 함께 쓰여있어서 내가 못 읽을 일은 없었지만 담당자인 마티아스가 하나하나 짚어가며 굉장히 상세하게 설명을 해줬다. 뒷장을 넘겨보니 영어로 안 적혀있는 부분도 안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이렇게 계약서 작성을 마치고 바로 은행에 가서 계좌를 만들고 디테일을 알려주겠다고 마티아스에게 얘기한 후 계약서를 들고 은행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