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뭅스타 Jun 17. 2019

<더 보이>

어찌 됐든, 어떤 의미로든, 신선하긴 하다.

19.05.27. @CGV평촌


주말을 정신없이 보낸 후 나름 오랜만에 극장 나들이에 나서서 관람한 오늘의 영화 <더 보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제임스 건 감독이 제작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이 영화는, 일종의 안티히어로 장르로써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정도의 재미만큼은 충분히 선사해 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영화를 보고 나니 영 기분이 찝찝해지기는 하지만.

영화는 아이를 갖고 싶어하던 카일 부부가 우연히 집 앞에 떨어진 우주선에 홀로 있던 아이 브랜든을 입양해서 키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느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자라온 것처럼 보이는 브랜든은 열 두살 생일 즈음부터 점점 그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고, 그를 세뇌하는 우주선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그만의 기이한 능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해 나간다.


익히 알려졌듯 슈퍼맨의 오리진을 비틀어서 만든 이 영화는, '지구에 온 존재가 영웅이 아닌 악당이라면 어떨까' 라는 흥미로운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처럼 보인다. 상위 0.1%에 드는 우수한 성적에 가족과도 화목하게 지내던 브랜든이 점차 자신의 능력을 깨닫게 되고 이를 통해 세상을 지배하는 목적을 이루고자 마음먹기 시작하면서 급격히 변화하는 영화의 분위기는 호러물로써 제법 인상적인 재미를 자아낸다.

아직 열 두 살에 불과한 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면서 그를 결코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는 극악무도한 싸이코패스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영화는 굉장히 혼란스러우면서도 흥미로운 매력을 선사한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사악한 면모와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의 면모를 함께 담아내면서 더욱 차갑고 소름 돋는 공포를 자아낸다는 것도 이 영화의 확실한 개성처럼 느껴진다.


결국 브랜든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극악무도한 존재로 보이는지가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상황에서 이를 연기한 2003년생의 배우 잭슨 A. 던은 캐릭터에게 몰입하게 만드는 좋은 연기를 선보인다. 더불어 다양한 영화에 주조연으로 등장하며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엘리자베스 뱅크스의 활약 또한 무척 두드러지는데, 브랜든을 향한 극진한 모성애를 보이며 때로는 마냥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하는 토리를 연기한 그녀는 영화 내내 강렬한 호연으로 극의 무게감을 더한다.

전형적인 히어로 장르를 비튼 공포 영화로써 본격적으로 사건이 전개된 후 긴장감을 자아내는 연출 방식은, 때때로 지극히 공포 영화의 클리셰처럼 느껴지는 몇몇 시퀀스에도 불구하고 쫀쫀한 재미를 선사한다. 다만 결과적으로 엔딩까지 다 보고 나면 결국 초반의 신박한 설정을 끝까지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전형적인 호러물의 틀을 쉽게 벗어나지 못한 듯한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무엇보다 앞서 말했듯 영화는 결국 보는 동안에도, 그리고 상영관을 나선 후에도 쉽게 가시지 않는 찝찝함과 불쾌함을 선사한다. 어쩌면 그러한 찝찝함마저 의도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어떤 면에서든 실로 당황스럽게 흘러가는 스토리 전개는 기존의 영웅 서사물의 설정을 깨뜨렸다는 신선함을 자아내는 동시에, 지나칠 정도로 패륜적인 행동의 연속으로 불쾌한 혼란을 안겨준다.

어쨌든 참신한 소재를 기반으로 한 공포 영화로써 러닝타임 내내 제법 긴장감을 자아낸다는 점에서는 흥미롭지만, 브랜든이 제대로 미쳐 날뛰기 시작하면서부터 초반의 쫄깃한 재미가 반감된 채 전형적인 킬링 타임 영화 정도에 머물고 마는 아쉬움을 남긴 작품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정도 속편을 염두한 것처럼 끝맺는 마무리가 혹시 제작될 지 모를 속편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기는 하지만, 왠지 속편이 나온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욱 뛰어난 완성도를 자아내지는 못할 것 같단 생각이 들기도.

ps. 이미 <에이리언 커버넌트>나 <독전>이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았을 때부터 영등위의 판정 기준이 의아하게 느껴진 적이 종종 있긴 하지만 이 영화가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은 것은 특히나 놀랍고 미스테리하다.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에서 볼 법한 고어스러운 묘사와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범위를 가뿐히 뛰어넘는 스토리가 펼쳐지는 이 영화가 청소년 관람불가가 아니라니, 등급 심의 기준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