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정말 고질라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할 때.
19.05.29. @CGV평촌
2014년판 <고질라>도, 이와 세계관을 같이 하는 <콩 : 스컬 아일랜드>도 썩 좋게 보지 않았던 만큼 기대보단 걱정이 앞섰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관람한 오늘의 영화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결국 예상했던 대로 이렇다 할 장점을 갖추지 못한 채 황당함과 짜증만을 유발하고 말았다. 대체 할리우드가 언제까지 '고질라' 시리즈에 집착할 것인가에 대한 푸념만을 늘어놓게 만들 뿐.
영화는 2014년판 <고질라>에서 벌어진 샌프란시스코 사태로 아들을 잃은 엠마, 마크 부부가 미확인 생물 연구 기관 모나크의 소속으로서 괴수들을 조종해 지구를 초토화시키려는 세력에 맞서는 과정을 그려나간다. 세계 각국에 잠들어있던 각종 괴수가 하나 둘 깨어나는 과정 속에 실로 당황스러운 반전까지 드러나면서 영화는 점점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앞서 언급한 두 영화와 함께 워너 브라더스와 레전더리 픽처스가 야심차게 기획한, 이른바 '몬스터버스'의 세번째 작품으로써 영화는 더더욱 화려한 스케일과 다양한 크리쳐들의 활약으로 눈길을 사로잡고자 애를 쓴다. 자연스럽게 이전 두 시리즈와 연관을 짓는 스토리라인이 나름대로 흥미를 이끌어내는 상황에서 괴기한 형태의 크리쳐들의 향연은 자연스러운 CG 속에서 어느 정도 볼거리를 선사하기는 하지만, 아쉽게도 그 이상의 재미를 끌어내지는 못한다.
거대 괴수와 소통할 수 있는 주파수 오라크를 개발한 엠마가 딸 매디슨과 함께 정체 모를 이들에게 납치당하는 초반부만 해도 이후 전개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던 영화는, 전개가 거듭될수록 도저히 종 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몰입감에 앞서 당혹감을 선사한다. 마치 미리 큰 틀을 잡아두지 않고 그저 생각나는 대로 시나리오를 써내려 간 것마냥 전반적인 스토리는 황당하기 이를 데가 없다.
머리가 세 개 달린 용 형상의 크리처이자 고질라의 강력한 라이벌이라는 기도라의 활약이 펼쳐진 이후 보는 재미를 이끌어내던 영화가 정작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는 이렇다 할 볼거리를 자아내지 못한다는 것은 아쉽게 느껴진다. 이보다 더욱 눈에 띄는 활약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크리처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면서도 거대 거미의 무자비한 활약으로 큰 재미를 선사했던 <콩 : 스컬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시퀀스만큼의 감흥을 자아내는 시퀀스를 찾기는 힘들다.
고질라나 기도라를 비롯해 각종 괴수들이 등장하지만 괴수보다 인간들의 심리 변화나 행동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상황에서, 관객이 온전히 이해하고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의 부재도 단점으로 다가온다. 일단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엠마라는 인물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말만을 늘어놓으며 절정의 황당함을 선사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는데, 여기에 후반부에 이르러 주인공 버프를 제대로 받으며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매디슨의 활약 역시 긴장감을 이끌어내기보단 진부함만을 안겨준다.
결국 크리처들이 얼마나 인상적인 활약을 하느냐가 가장 관건 포인트였던 영화가 제대로 벌린 판을 수습하기 위해 선택한 후반부 설정은 이 영화에서 기대한 마지막 한 줄기 희망까지 무참히 앗아가고 만다. '이런 식이라면 <고질라> 시리즈가 앞으로 스무 편은 더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들게 만들 뿐인 영화의 엔딩은 결국 132분의 러닝타임 내내 그 무엇도 남기지 못했다는 처참함만을 안겨줄 뿐이다.
정리하자면, 당장 내년 몬스터버스의 네번째 영화 <고질라 VS 콩>이 개봉을 앞둔 상황에서 현재까지 세 편의 시리즈가 나온 동안 단 한 편도 기대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이 세계관을 계속해서 지켜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만든 작품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샐리 호킨스가 대체 왜 이 영화에서 이런 식으로 낭비당해야 하는 가에 대한, 장쯔이는 대체 왜 이 영화에서 이런 역할로 소비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자아내는 것은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