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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뭅스타 Jul 16. 2019

<물 속에서 숨쉬는 법>

이 씁쓸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

19.06.05. @아리랑시네센터


지난 달에 만난 <졸업>에 이어 독립영화 반짝반짝전이라는 의미있는 기획전을 통해 관람한 두번째 영화 <물속에서 숨 쉬는 법>. 지난 2017년 부산 영화제에서 상영됐을 때만 해도 곧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아직까지 정식으로 개봉하지 못해 이제서야 만나게 된 이 영화는,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깊은 여운과 진한 후유증을 안겨주었다. 한 번의 방문 이후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생각할 정도로 멀고도 험한 아리랑시네센터에서의 상영이었지만 그토록 먼 걸음을 한 보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던 영화였다고 할까.

영화는 대구에서 살아가는 두 부부의 이야기를 이후 그들의 삶에 큰 전환점이, 만 하루에 집중해서 그려나간다.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는 반장 현태와 아들 영준을 끔찍히 아끼는 그의 아내 지숙, 극심한 산후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은혜와 아내의 고통을 미처 알지 못하는 남편 준석까지, 네 인물이 하루동안 겪는 형용하기 힘들 만큼 비극적인 사건은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에게도 무척이나 씁쓸한 뒷맛을 선사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러닝타임 내내 단 한 순간도 마음 편히 웃을 수 없는 상황 상황들은 연이어 겪는다. 준석에게는 누군가에게 급히 돈을 입금해야 하는 상황을, 은혜에게는 불쑥불쑥 찾아오는 극심한 고통을, 현태에게는 직원 누군가를 해고해야만 하는 상황을, 그리고 지숙에게는 아들 영준이 난독증을 앓는다는 상황을 초반부터 던져주며 시작하는 영화는 이후에도 그들에게 더욱 큰 갈등과 시련을 안겨주면서 가뜩이나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을 더더욱 큰 비극으로 내몬다.

기본적으로 이렇게 인물들을 그 어떤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끝없는 비극으로 치닫게 만드는 영화를 크게 선호하지 않는터라 전개가 진행되면서 인물들이 맞이하는 상황이 다소 힘겹고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영화는 그들을 마냥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게 만드는 촬영 방식과 진중하고도 사려깊은 연출을 통해 마냥 멀리 하고 싶은 힘든 이야기가 아닌 더욱 귀 기울이고 싶어지는 의미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단순히 비극적인 사건의 나열 이상의 여운과 이해를 이끌어내는 데엔 이야기를 풀어가는 독특한 연출 방식이 크게 한몫한다. 현태의 가족과 준석의 가족 각각의 구성원이 어떠한 이유로든 크고 작게 부딪히게 되는 상황을 부여한 것은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마냥 가상의 상황이 아닌 어쩌면 나와 가까운 누군가에게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일지 모른다는 일종의 생동감과 사실감을 더하는 효과를 낳으며, 두 인물이 전화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 상황들을 시간 순서를 재구성하여 표현한 방식 역시 각각의 인물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들 각자의 감정에 이입하게 만드는 효과적인 방식처럼 느껴진다.

결국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어줍잖은 희망을 던져주면서 끝맺는 것보다 분명 누군가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들처럼, 혹은 그들보다 더욱 힘겨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이 세상의 어떤 단면을 그대로 담아낸 이 영화의 표현 방식이 더욱 유의미하게 느껴지는 결과를 낳는다. 결코 그들 중 누군가가 큰 잘못이나 과오를 저질렀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체 왜 그들은 그러한 비극을 겪어야만 하는가를 곱씹다 보면 끝끝내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 이 잔인한 영화가 무척 묵직하게 다가온다.


뚜렷한 가해자 없이 하루 아침에 비극의 대상이 되어버린 이들이라는 점에서 과연 이 영화 이후의 삶에서 그들이 행복할 수 있을지도 쉽게 가늠할 수도, 예상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부디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고 믿고 싶은 것은, 혹은 그러리라고 믿어야만 할 것 같은 이유는 마냥 먼 곳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그들의 모습에서 어쩌면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미래를 투영할 수 있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결국 누구도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 세상에서 어떻게든 숨을 쉬고 살아가려면 몇 번이고 물을 먹으면서 무뎌지고 단단해지는 수밖에 없을테니. 아마 <기생충>을 처음 봤던 지난 주 수요일처럼 이 영화를 보고 난 오늘도 쉽게 잠들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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