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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 또는 예술가 Dec 18. 2022

금지에서 허용으로

젊은 시절, 육아에 정성을 기울였다고 믿었다. 애착이 형성되는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신경을 썼고, 시간이 허락하는 한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노라고 자부했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엄마의 모습을 각인시키기 위해 이것저것 남들이 좋다는 것을 따라 하다가 하루는 역할 바꾸기 놀이를 하게 되었다.

입장을 서로 바꿔 보면 상대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진다는 말에 딸과 나는, 엄마와 딸이 되었다. 우리는 평상시처럼 상대방이 하는 말을 그대로 하기로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당황했다. 딸이 나에게 하는 말(실제로는 평소 내가 하는 말)은 금지와 억압과 규제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하면 안 돼, 
~해야 해. 


그러지 마. 아니. 
~는 반드시 해야 해. ~하지 않으면 절대 안 돼.  
   

나의 말은 금지 아니면 규제, 부정적인 색채로 가득 차 있었다. 평소 아이에게 나름 허용적이고 좋은 엄마라고 내심 자부했기에 그날의 충격은 컸다.

그 이후로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그날 기억이 반성의 기회가 되기는 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딸이 들어보라는 캐럴을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사는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애들엔 선물을 안 주신대요.
산타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였는데 최근의 가사는   

  

울어도 돼. 울어도 돼. / 산타할아버지도 정말 힘들 땐 용감하게 울어버린대.
산타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슬픈 앤지 더 슬픈 앤지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잠잘 때나 일어날 때 짜증 낼 때 장난할 때도 산타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이해하신대.
울어도 돼 울어도 돼 / 산타할아버지가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로 바뀌어 있었다. 


     

노래를 들려주던 딸이 말한다. 

그까짓 선물이 뭐라고 울면 안 된다고 규제를 하느냐고. 

이제는 그런 걸로 먹히는 세상이 아니라고.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그까짓 선물이 뭐라고 울면 안 된단 말인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세상에 얼마나 슬프고 힘들고 헤맬 일이 많은데 왜 산타할아버지의 기준에만 맞추려 했던 것이지? 왜 울면 안 되는데?

그러나 새로 바뀐 가사에 등장하는 산타할아버지처럼 ‘정말 힘들 땐 용감하게 울어버리’고 ‘누가 슬픈 앤지 더 슬픈 앤지’ 알아보시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분이라면 기대어 울기도 하고 기꺼이 그가 주는 선물을 받고 싶지 않을까. 



 

처음엔 가사가 흥미롭게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가사만 바뀐 게 아니었다. 사람들의 의식과 생각, 가치관이 바뀐 것이다. 예전에 우리는 늘 줄을 서거나 줄을 세우는 문화 속에서 자라왔다.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줄을 섰고 이후 평생을 줄서기에 매달려 살아왔다. 입시도 취업도, 심지어는 삶의 형태도 모든 것이 줄서기의 변형된 모습이었다. 줄을 왜 서야 하는가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앞세대도 줄을 섰기에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배웠다. 배운 것을 외우느라 현실에 적용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개체의 감정이나 상처는 중요하지 않았다. 보다 의미 있는 건 집단의 가치와 생각이었다. 왜 ‘울면 안 돼’라는 말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순응했을까.


그랬는데 이제 더는 금지와 규제가 먹히는 세상이 아니라는 말인가.

개인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고 이해하는 산타할아버지가 등장한 사회.

이것이 진정한 변화일까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고라도 힘들 때 우는 산타할아버지가 존재하는 것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울면 안 돼’가 아니라 ‘울어도 돼’는 사회.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회. 산타할아버지나 아이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울어도 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회가 우리 앞에 펼쳐졌으면 좋겠다. 새해에는.     

따뜻한 것이 따뜻함을 부르고 좋은 생각이 모여서 좋은 세상을 만드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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