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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 또는 예술가 Dec 25. 2022

헤어질 결심

오늘 학교 축제가 열렸다.

코로나 이후 전교생이 모여서 함께 하는 최초의 축제지만 역시 3학년은  자리에 없다.

코로나 이후로 제일 안쓰러운 아이들은 현재 고3. 내년에 대학에 입학하는 아이들이다.



코로나가 생기고 급속도로 상황이 나빠지면서 현재 3 입학식도 하지 못하고 2020 6 3일에 처음 학교에 왔다.

당시 1학년 13학급, 신입생은 390여 명이었다. 학생들의 명단을 갖고 있었지만,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원격수업을 시작했다. 지금처럼 줌으로 하는 실시간 수업이 아니라 <EBS 온라인클래스>에 아이들이 가입해 영상 수업을 듣고 과제물을 점검하는 형태였다. 담임은 학급 아이들 얼굴도 모르면서 아침에 클래스에 들어오지 않은 아이들을 깨우고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전화하느라 바빠 열세 학급이 모여있는 학년 교무실은 전화상담실을 방불케 했다.


2020 4.

3학년은 개학을 하여 4 16일부터 등교했다. 수능 때문에 더는 미룰  없었다.

방역을 위해 1, 2학년은 온라인 수업을 했다. 그 후 2학년이 5월 중순에, 1학년은 6월 초부터 등교하기 시작했다. 3학년은 매일 학교에 나왔지만 1, 2학년은 격주로 나와 학교에 3개 학년이 모두 모이기 힘들었다.


2020 그때 입학한 아이들. 3 내내 마스크를 쓰고 학교에 다녔던 아이들.

 아이들은 지금 3학년으로 올해 수능을 치르고 내년 대학 입학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체육대회를   적도 없고, 체험학습이나 수학여행은 꿈도 꿔보지 못한 아이들.

이번 축제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학교에 있는 동안  마스크를 썼기에 교사들이 학생의 원래 얼굴을  알지 못한다. 교사가 아는 학생의 모습은 마스크를  상태의 얼굴이다. 우스갯소리로 마스크를 벗고 거리에서 만난다면 서로가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말하며 웃었다.

어쩌다 잠깐 마스크를 벗었을 , 내가 상상한 학생의 얼굴과 달라 깜짝 놀란 적도 많았다.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완전한 얼굴도 모른 채 입학했다가 이제 학교를 떠날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3 만에 열리는 학교의 축제일이다.

오전에는 학급별로 부스를 만들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오후에는 체육관에 모여 공연을 한다.

오전에 학급을 둘러보았다. 포토존을 만들고 한껏 크리스마스와 축제 분위기를 만드느라 노력한 아이들이 거기 있었다. 코로나 시기를 견뎌온 작은 청춘들이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사랑스러우면서도 왜 이렇게 애잔해지는 것인지. 아이들은 영하의 날씨에도 함박웃음이 떠나지 않는 얼굴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준비한 것들을 무대 위에서 펼쳐 놓는 아이들을 보면서 기말고사가 끝난  얼마 되지 않았는데 공부와 병행하며 연습했을 아이들의 시간이 떠올라  목젖이 아팠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학급별로 앉아서 무대를 향해 뜨거운 환호를 보내고 차분하게 공연을 보고 있는 아이들. 이런 바르고 착한 아이들을 어디 가서  만날  있을까.

출연자 중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노래가 흐트러지자 학생회에서 구원투수가 나와 노래를 같이 하며 마무리를 해주는 마음 씀. 사복을 입었는데도 너무나 단정하고 튀지 않는 그저 학생다운 모습. 모습들. 이 모든 것을 잊지 않으려 기억해 두었다.



마지막 학교에서 마지막 축제를 보는 기분이 흐뭇하고 따뜻했다.

정말 좋은 아이들과 한바탕 놀고 가는 느낌.

‘끝이 좋으면 다 좋아’라는 영화 제목처럼 내 청춘을 통과한 지난 시간이 따스함과 감사함으로 물들어 간다.




내년 2월이 정년이니 실질적인 나의 학교생활은 다음 주가 마지막이다. 1월에 이틀 나온다 해도 종업식과 졸업식이니 아이들을 개별적으로 만날 기회는 없다.

아직 아이들에게 학교를 떠난다는, 헤어짐에 관해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 말을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사라져야 하나, 고민하다가 아이들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1학년 학생들은 자신들이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 같이 있어 달라고, 그때까지 다른 곳에 가지 말라고 한다. 교사의 말에 예의상 하는 답이라도 감사하다.


이제 아이들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

늦어도 다음 주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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