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요일 또는 예술가 Mar 25. 2023

커피에 얽힌 슬픈 이야기

출근하면 책상을 닦고 제일 먼저 물을 끓인다. 1교시가 없으면 느긋하게 원두를 갈기도 하고, 물을 정식으로 천천히 내려 마시기도 하지만 1.2교시가 연속으로 있는 날에는 그런 호사를 부릴 수가 없다. 

급한 대로 커피 믹스에 물을 부어 호르르, 마신다. 물의 양은 컵의 반보다 적은 분량을 넣는다. 그래야 커피 맛이 진하다. 입가에 맴도는 진한 향의 냄새. 내가 오랜 시간 동안 이렇게 커피를 마시게 된 데는 아픈 기억이 있다.



중학교 때였다. 그때만 해도 소풍 철이면 각 학급에서 돌아가며 담임 선생님이 드실 도시락이거나, 과일, 음료수를 학생이 챙겨가던 시절이었다. 우리 담임 선생님은 영어를 가르치셨고, 미혼이셨다. 열정적으로 수업 하는 모습에 외모와 관계없이 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셨다. 지금 생각해 봐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어찌 됐든 당시 집에서 부모님 몰래 인스턴트커피를 타 먹는데 재미를 붙인 나는, 용감하게 도시락 대신 선생님의 커피를 담당하겠다고 나섰다.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삼삼오오 모여서 먹는 학생들과 달리 교사들은 따로 모여서 식사를 했다. 그 당시는 주로 ○○릉 같은 곳으로 갔기에 주변에 식당이 없기도 했고 학생들을 홀로 두고 교사들만 따로 나가 밥을 먹기도 편치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각자 반에서 아이들이 가져온 꾸러미들을 내놓고 선생님들이 모여 같이 드시곤 했다. 내가 발령을 받고 학교에 갔을 때도 그런 문화가 남아 있어서 소풍날 각 반 반장들은 각자 선생님께 드릴 음식을 알아서 가져왔다. 도시락을 열었을 때 유난히 정성이 담긴 것이거나 과일이 종류별로 다양할 때, 괜히 그 반 담임의 어깨가 으쓱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나는 그날 커피를 타 가기로 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한 학년이 12개 반이었고 담임, 비담임을 합쳐서 열다섯 분의 선생님이 우리와 함께했다. 소풍날 아침, 용감하게도 엄마에게 커피를 타 달라고 부탁하지 않고 평소 내가 먹던 스타일대로 커피를 조제하기 시작했다. 늘 엄마 몰래 먹다가 나름 당당하게 늘어놓고 커피를 탔지만 일 인분을 먹던 나에게 십오인 분의 커피는 어마무시한 양이었다. 부어도 부어도 병이 차지 않았고, 아무리 간을 맞춰도 윤기가 자르르한 때깔이 나질 않았고 밍밍한 상태여서 물 첨가, 커피 첨가, 설탕 첨가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커다란 보온병을 들고 씩씩하게 학교로 갔다. 병에 넣을 때 커피 맛을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선생님께 드리고 친구들과 밥을 먹고, 소풍이 끝나 집으로 갈 시간이 되었다.



보온병을 나에게 주러 오신 선생님이 지나가는 말로 물으셨다.

“어머님이 커피를 타 주셨니?”

나는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어린 내가, 어찌 그 심오한 질문을 이해했겠는가.

“아니요, 제가 탔어요.”

나의 의기양양한 대답을 들으신 선생님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던 것 같다.

“다음부터는 어머니께 부탁 드리는 게 좋겠다.”

그 의미를 보온병을 돌려받고서 알았다. 병은 조금도 무게가 가벼워지지 않았던 것.


등에 멘 가방은 가벼운데 상대적으로 무거운 보온병을 들고 집으로 온 이후부터, 나는 커피를 무조건 진하게 탄다. 나의 화끈거림이 커피 맛에 가려지기를 바라면서.

왜냐, 그날 나의 커피는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밍밍의 바탕에 약간의 씁쓸함. 그 무미함이라니...

선생님은 나에게 다시는 커피 타 오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작가의 이전글 헤어질 결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