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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 또는 예술가 Mar 31. 2023

옛 추억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성문 밖 우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꿈을 꾸었네.
 가지에 희망의 말 새기어 놓고서
 기쁠 때나 슬플 때 찾아온 나무 밑.

찾아온 나무 밑. 

    

오늘 밤도 지났네 보리수 곁으로
 캄캄한 어둠 속에 눈 감아 보았네.
 가지는 흔들려서 말하는 것 같이
 그대여 여기 와서 안식을 찾으라.

안식을 찾으라. 

    

차가운 바람이 내 얼굴로 바로 불어 닥쳤네,

모자가 벗겨져 날아가 버렸지만,

나는 몸을 돌리지 않았네. 지금 나는 그곳으로부터

여러 시간이 걸리는 곳에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보리수의 소리를 듣고 있네.

너는 그곳에서 안식을 찾아라.

너는 그곳에서 안식을 찾아라.              


 

<보리수>와 <보리밭>은 전혀 다른 노래이지만 나는 늘 두 노래를 혼동하듯 좋아한다.

아무도 없는 보리밭 사잇길을 걸어가며 옛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는 화자의 그리움이

<보리수>에서는 좀 더 깊이 있게 나타나기 때문인가. 눈을 감고 두 노래를 불러보시라. 가없는 그리움의 물결이 당신 가슴 속에서 일렁이며 새로운 보리밭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돌아보면 저녁놀 가득한 빈 하늘.

빈 하늘. 그리고 푸른 보리밭.


어렸을 적 이 노래를 들으며 나는 기약 없는 슬픔에 젖어 든 적이 있었다.

마치 엄마가 굴 따러 간 사이 혼자서 울다가 잠든 <섬집 아기>와도 같은 진한 외로움이 보리밭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은 아닌가.


가지에 희망의 말 새기어 놓고서 기쁘나 슬플 때나 찾아온 나무 밑에서 나는 최인호의 소설 <겨울 나그네> 속 민우를 생각한다. 첫사랑을 뒤로하고 자포자기로 은영과  맺어질 수밖에 없었던 나그네 민우. 소설의 군데군데 보리수는 잔영처럼 물결쳤고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가슴앓이가 기억난다.

     

오래전 기록했던 이 글을 보며 나는 문득 깨닫는다.

사람은 누구나 되고 싶은 대로 산다는 것이다. 

듣고 싶은 음악, 듣고 싶은 말, 보고 싶은 글, 보고 싶은 그림. 

그것이 모여 그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나 역시 내가 되고 싶은 그 무언가를 향해 아직도 나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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