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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 또는 예술가 Jun 30. 2023

常識이 滿天下하나 知心能幾人고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은 국어를 가르치셨다. 매일 아침 우리에게 좋은 글을 써주셨는데 그때 칠판에 적어주신 구절 중에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문장이 있다. 매일 좋은 구절을 적어주는 게 얼마나 부지런해야 하는 일인지 그때는 몰랐다. 내가 교사가 되어 선생님의 본을 받으려 하니 그냥 문장을 찾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깊은 독서가 바탕이 되고 그 영향으로 자신도 감명받은 문장이 가슴에 남았고 선생님은 그것을 우리와 나누셨다.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은 최치원의 <秋夜雨中>을 배운 후에 우리에게 적어주신 구절이다. 세상에 나를 안다는 사람이 많지만, 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능히 몇 명이나 될까.

나는 이 문장이 당시 나의 마음을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나에 대해 안다고 하는 사람은 많다. 가족과 친구와 지인들이 모두 다 나를 안다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아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나에 대해 무엇을 안다는 것인지, 정말 내 마음까지 알아주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에 생각이 머물자 앎의 실체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아는 것은 나의 외모와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 취향 등이다. 그러나 그게 나의 전부인가? 그건 또 아니지 않는가.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심지어 부부 사이라도 한 인간의 전체 모습을 아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이번에 읽은 앨리스 먼로의 작품 <The bear came over the mountain>에서도 그것을 느꼈다. 치매를 앓고 있는 부인은 남편을 잊고 남편은 그런 부인에 대해 당혹스럽다. 그들은 오랜 세월을 같이 살며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을 텐데 결과적으로 아는 것이 없었다. 남편은 자기가 아는 부인과 다른 여자를 비교하지만, 그 내용 역시 빈약하기 그지없다. 머리 색깔과 눈빛, 말투와 단정하고 꼿꼿한 성품 등을 기억하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과 차별화하는데 그것만으로 한 인간을 다 안다고 말하긴 어렵지 않은가. 그 긴 기간 동안 그들은, 우리는, 아니 나는 누구를 얼마만큼 자세하게 알고 있는가.


사람들은 지음(知音)에 대한 환상이 있다. 나 역시 그랬다. 이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이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 여겼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까지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그 옛날 최치원이 그랬듯이 피 토하는 절규가 남을 뿐이다.

밖에는 비가 온다. 비 오는 날은 맑은 날보다 기억의 속도가 빠르게 느껴진다. 기억이 섞이고 새롭게 배합되어 전혀 다른 성격의 감성을 만들어낸다. 최치원의 <추야우중>이 그리운 밤이다.


秋風唯苦吟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나니

世路少知音 세상에 나를 알 이 적구나.

窓外三更雨 창밖엔 삼경에 비가 내리는데

燈前萬里心 등 앞의 마음 만 리를 달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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