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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푸름 Jan 03. 2024

가게 내 놓은 날

벌어질 일은 벌어지는 걸까.


2023.03

고대하던 퇴사를 결정했다. 회사에 들어온 목적은 서점을 열기 위해서였다. 돈을 벌어 서점을 차릴 계획이었다. 3년을 일하며 돈을 모았고 부족하지만 목돈을 마련했다. 대출을 더하면 서점을 차릴 수 있을 것이다.


2024.01

건물주에게 털어 놓았다. 가게를 내 놓아야 할 것 같다고. 월세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 월세라는 이름의 무게가 이렇게 무거웠던가. 재료값 40만원과 아끼고 아낀 1인분의 카드값 80만원, 월세, 대출 이자까지 내고 나니 이제는 통장 잔고가 바닥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월세가 너무 비쌌던 것이다.


2023.04

9개월 동안 상가 자리를 알아보았다. 딱 내 마음에 드는 곳은 없지만, 나름 괜찮은 곳이 몇 군데 있다. 거기에서 열심히 인테리어를 해보면 구상대로 가능할 것 같다. 나의 가게? 아직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높은 매출? 성공하지 못해도 좋으니, 손님들이 나의 공간에 와서 즐겁게 힐링하고 가시면 좋겠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손님도 많아지고 장사도 잘 되겠지.


2023. 12

뉴스에 자영업 폐업률이 사상 최대치라는 기사만 보인다. 내가 어쩌다 이 시점에 들어왔을까. 참 미련하다. 이제와서 한탄해봤자 뭐하겠나. 위기는 언제나 있었고, 그만큼 기회도 있고. 분명 돈을 버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나는 그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좌초될 순 없다.


2023.03

가게 인테리어는 숲에서 책을 읽는 듯한 밝은 느낌을 주고 싶다. 다른 서점과 다르게 밝은 우드톤으로 하고, 책도 빼곡하게 넣지 않고 여백의 미를 살려야지. 책이 많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니다. 얼마나 좋은 책을 선별해 두는 지가 중요한 것이지.


2024.12

신간을 들여야 하는데, 현금으로 매입할 여유가 없다. 아무래도 이번 달은 새로운 책을 사기 어려울 듯하다. 우리 가게에 가져다 놓고 싶은 책이 한 박스가 넘는데, 아쉽다.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현실이 뒷받쳐 주지 않는다.


2023.06

배달 영업은 우리 가게와 어울리지 않는다. 브랜딩의 한 예로 일관성 있게 영업을 하며 우리 가게의 아이덴티티를 확고히 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너무 시끄러우면 책 읽는 데 방해가 되니 주말엔 4인 이하로 인원수를 제한했다. 시끄러운 소음에서 벗어나 주말만큼이라도 고요하게 하루를 힐링하셨으면 좋겠다.


2024.01

이번달부턴 배달을 시작할 생각이다. 북카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홀 매장 영업에 최선을 다했지만, 여전히 신규 손님 유입률이 적다. 단골 전환율도 높지 않다. 회전율, 회전율. 얼마나 ‘많이’ 팔리게 만드느냐가 영업 유지의 관건이다. 오프라인 매장 매출을 반전시킬 파워가 부족하다. 캐시카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매출의 3배가 되지 않으면 가망이 없다.


2023.05

메뉴는 가나슈 마들렌으로 정했다. 그리고 소금빵. 마들렌은 책을 보며 먹기에 부담도 없고, 소금빵은 요새 인기가 많으니, 식사대용으로 좋을 듯하다. 워낙에 빵순이라 홈베이킹을 자주 했었다. 매일 베이킹 영상을 보다보니 순서는 모두 외웠다. 잘 팔리면 좋겠다. 쿠앤크 맛이랑 로투스 쿠키도 올리고, 뽀또 맛도 만들어야겠다.


2023. 12

소금빵은 아무리 해도 내가 원하는 고소한 향이나 박삭한 식감이 나지 않는다. 조금 더 겉면이 얇고 폭신했으면 좋겠다. 빵이 너무 질겨지기도 한다. 하루만 지나도 딱딱해 진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이래서 같은 업종에 가서 배운 후에 가게를 차리는 게 도움이 된다 했던 것 같다. 그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나의 꿈에 치여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날이 후회된다.


희망은 있다. 이게 끝이 아니니까. 서점을 내 놓은 거지, 내 인생을 내 놓은 건 아니니까.


우리가 글을 쓰고, 남의 이야기를 읽는 건 실패의 과정을 엿보며 성장한다. 분명 실패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일을 살아가길 주저하지 않는다. 고도를 기다리는 디디처럼 미련할 수 있지만, 나는 그게 인생이라는 걸 알고 도전하는 나를 기록하고, 영감을 채워나갈 예정이다. 글만이 나의 존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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