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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리 Jul 14. 2021

전유를 향하는 변호

김영민의 『중국정치사상사』서평

사진 사회평론아카데미

   

국가 정체성의 시대     


바야흐로 국가 정체성에 대해 생각할 때이다. 한국인은 단군 이래로 한반도에 자리를 잡아 살아온 민족이라는 서사는 영토적, 혈통적 원천 등을 동원하여 한(韓)민족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옛날부터 한반도에 살아온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이 닫힌 관념은 역사적으로 단일한 공동체가 고유한 경계를 유지하며 지금까지 계승되어 왔다는 인상을 준다. 문제는 이러한 상상이, 지속적인 국경의 변천과 주변과의 인적교류라는 통제되지 않은 역사적 변수와 모순될 뿐만 아니라 정의상 새롭게 이주하는 외지인을 포용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이 해묵은 관념은 국내에 입국한 외국인의 존재가 이슈로 부각될 때마다 되살아난다. 전통적으로는 외국인 노동자의 처우와 관련된 각종 이슈들에서부터 2018년 제주도 예멘 난민신청자의 입국, 그리고 현재 코로나19 대유행 상황 등 일단 한국 땅을 밟은 외국인들을 마주하면 한국 사회는 이러한 관념을 소환하여 배타적인 태도의 ‘정당한’ 근거로 사용한다.


그러나, 머지않은 미래에 이러한 관념은 전략적인 수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 최저수준이며, 전체 인구는 이미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가능인구는 감소하지만 평균소득은 증가하는 상황에서, 재화와 서비스를 알맞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이 필요한 공간에 외국인 노동자가 필연적으로 배치되기 마련이다. 이미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각종 업무를 담당하고 있고, 그 수 또한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폐쇄적인 한민족 관념은 무엇으로 대체될 수 있는가. 이러한 전환기에 우리를 하나의 공동체로 생각하게끔 하는 새로운 상상이 필요하다. 이러한 질문은 다양한 형태로 제기될 수 있다. 예컨대, ‘한국인은 누구인가?’, ‘한국인을 공화적/문화적 원천으로만 구성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것은 충분히 열린 관념인가?’ ‘대한민국의 건국일은 1948년인가, 1919년인가?’, ‘통일신라 이전의 역사를 소급할 수 있는 연구는 충분한가?’ 등등.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이 난제가 한국만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른바 전근대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새로운 국민국가를 설립한 중화인민공화국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국가 정체성의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해왔다. 최초로 천하를 통일했다고 알려진 진나라부터 계산해보더라도, 이른바 중원을 놓고 부침을 겪은 주요 왕조가 일곱이 넘는다. 기원전 221년부터의 장대한 역사 속에서 수축과 팽창을 반복한 국경과, 전도되고 다시 제자리를 찾는 과정을 반복한 한(漢)족과 이민족의 왕조는 적어도 국가 정체성 관념의 변천에 있어서 우리에게 중요한 참고자료인 셈이다.


저자 김영민은 『중국정치사상사』를 통해 세계 문화의 중심을 자처했던 이른바 ‘중국인들’ ‘어떠한 역사적 조건들’을 근거로 ‘그들 스스로를 동일한 집단’이라고 강력하게 믿어왔는지를 묻는다. 이 책은 기존의 서사를 본질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이제껏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던 내용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서사를 구성한다. 특히 유교가 중국의 전제적 통치형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였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제공한다. 이번 서평에서는 비판 대상이 되는 기존 논의의 대표작으로서 샤오궁취안의 『중국정치사상사』를 함께 비교분석함으로써 중국정치사상사의 전통적인 맥락 속에서 김영민의 대안적인 서사가 갖는 함의를 음미해보고자 한다.



서사 간의 경쟁     


어떤 국가의 정치사상사가 경쟁하는 서사를 가진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샤오궁취안과 김영민이 전제하고 있는 근본적인 사상사관의 차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핵심은 정치사상사가 발견되는 대상인지, 구성되는 대상인지에 대한 입장 차이에 있다.


샤오궁취안은 정치사상사를 발견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한다. 그는 원저의 범례를 통하여, ‘시대’별로 ‘영향이 비교적 크다고 판단되는 정치이론’을 중심으로 ‘객관적인’ 서술을 지향하였으며, 주관의 영역인 ‘논평’마저도 사상의 ‘역사상의 위치를 밝히자는 의도’에 국한했다고 말한다. 이처럼 유명한 사상가들의 사상을 단순히 나열하는 방식을 성인전식 사상사라고 하는데, 실제로 존재했던 사상들 간의 연결성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엄밀한 의미의 서사라고 부르기에 어려움이 있다.


반면, 김영민은 서론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며 ‘사건’은 발견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사건들 간의 연속성’을 의미하는 ‘서사’는 일종의 ‘형식적 일관성’을 가지며, 사상사가가 ‘부여’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간주함을 밝혔다. 특히, 현실과 일대일로 대응하는 거대한 크기의 지도는 무용하다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주장을 인용하여 사상사의 재현적 속성을 밝혔고, ‘사상사를 위한 객관성’이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며 의미가 포착되지 않은 다른 많은 현상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있음직한 조직화를 통해 구현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두 입장을 비교한다면, 김영민의 전제가 더욱 설득력 있으며, 나아가 서사 경쟁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샤오궁취안은 이른바 객관성을 지향했지만, 한정된 지면에 사상사의 일부를 선택하여 배열하는 행위조차 사상사가의 주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불완전하고, 또한 서사 부여의 몫을 독자에게 남겨놓는 데 그쳤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김영민은 사상사에서는 절대적인 객관성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더 설득력 있는 주관성만이 존재할 수 있음을 밝힘으로써, 비로소 ‘사상사를 위한 객관성’과 ‘서사의 설득력’이라는 비교기준을 통해 서사 간의 경쟁을 가능하게 했다고 평할 수 있다.

  


송나라 리학(理學)에 대한 서술 비교


샤오궁취안에 따르면 중국정치사상은 중국의 전제군주 정치체제를 정당화하는 이론적 근거이다. 그는 특히 유교가 진나라 이후 청나라까지 지속된 전제군주 정치체제에 가장 잘 적응하였기 때문에 오래 통용됐고 영향력도 컸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전제군주 정치체제는 진·한에서 시작하여 그후 별로 크게 변한 것이 없다. … 전제천하의 정치사상은 진·한에서 명·청 사이의 정치제도를 그 배경으로 삼고 있다. 선진시대의 제가는 역사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에 따라서 그 종파의 성쇠가 결정되었다. 적응력은 유가의 그것이 가장 강하여서 도통이 가장 길었고, 그 실제의 영향력도 가장 컸다.


그러나, 그는 남송대의 주희(朱熹, 1130~1200)가 집대성한 성리학에 대해서는 그 성과를 오직 철학적 측면으로 한정했다. 다시 말해, 광의의 유교는 전근대 중국 정치사상사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전제군주 정치체제를 정당화해왔지만, 이른바 리학(理學)으로 불리는 협의의 유교는 그 뛰어난 철학적 체계에도 불구하고 정치사상사의 측면에서 기여한 바가 없다고 본 것이다.

이학의 무리들은 남쪽으로 건너간 뒤의 위망한 세상에서도 오히려 성명과 의리를 고담하면서 정심과 성의로써 구국의 방책으로 삼고자 했다. 시무에 통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 이학가들의 철학사상은 … 간추리자면 모두가 인도(人道)를 정치의 근본으로 삼고, 치술에 앞서 ‘정심 성의’를 강조했다. … 절세의 철학적 천재로 나타났을 뿐, 실제의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새로운 공헌이 없었다. … 송의 유자들은 이치를 몰랐다. 그래서 강을 막아 다른 곳으로 흐르게 하듯이 억지로 전제정체가 완성된 때에 요, 순의 마음이 전수될 것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것이 실용에 맞지 않는 고담이라는 것은 깊이 따질 필요도 없다.


요컨대, 샤오궁취안이 보기에 남송대의 도학은 개인의 도덕적 수양 문제에 집중하였을 뿐, ‘치술’의 측면에서 옛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가 동시대의 주류적인 ‘치술’로 평가하는 왕안석의 신법에 대해 “공허한 심성의 이야기를 배척하고 실질적인 부강의 사무를 궁구”했다고 서술한 점을 고려한다면, 신법의 대립항으로서 도학은 ‘공허한 심성의 이야기’인 ‘정심 성의’를 중심으로 현실 정치에 접근하는 ‘억지’였다.


그러나, 김영민은 이러한 기존 견해를 비판하며 오히려 도학이 공화적 비전으로 이해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는 샤오궁취안의 주장과는 반대로, 도학이 전제군주제를 정당화하지 않는 방식으로 중국정치사상사에 기여했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일견 사변적으로 보이는 이 시대의 도학이 어떻게 공화적 비전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 흥미로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최신 연구들을 일련의 논리적 흐름에 따라 배치함으로써 당시 남송 엘리트들이 관직 없이 지방사회에 머무르면서도 이데올로기적 정당성과 정치적 권위를 창출해낼 수 있었다는 서사를 제공한다.


이와 관련하여 김영민의 논의를 간략하게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1) 로버트 하트웰의 연구에 따르면, 남송 엘리트는 그 수에 비해 관직의 수가 부족하여 지방에서 활동한 점이 두드러진다. 동시에 그들은 세금 수취, 지역 방어, 빈민 구제 등 준정부적 업무를 보조하거나 대신했다. (2) 영미권 학자들에 따르면, “다수의 지식인이 중앙 조정을 윤리적, 정치적 권위의 궁극적 원천으로 대하지 않기 시작”했다. (3) 전국의 지방서원에서 비-관직 현자들이 숭상된 점, 도학자들이 도덕적 자아 수양을 무엇보다 중시한 점, 그리고 그들이 관직만큼이나 지방사회에서의 공헌을 중시한 점 등을 고려할 때 ‘남송 시기’의 지방 엘리트들은 자신의 활동에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나아가, (4) 도학의 철학적 자아관에 따르면, 도학의 이상은 사실상 “무한한 극기”를 통하여, “기호와 의무의 간극”을 없애는 주체를 성립하는 것이다. (5) ‘이일분수’ 개념으로 집약되는 도학의 통일성 관념에 따르면, 인간 본성과 우주에 적용되는 이(理)는 동일하다. (6) 이로써 부분과 전체, 즉 개인의 자아 수양과 전체로서의 사회에 대한 기여는 통하게 된다.


이어서, 논리적 설득력을 더하기 위하여 반론-재반론 구조가 사용된다. 실로 도학의 발전에 의하여, 부분과 전체가 연결될 수 있는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개인이 천하를 변혁할 수 있다는 주장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한 반론에 대하여, 김영민은 (1) 담약수(湛若水, 1466~1560)와 증패의 대화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은 잠정적 결론을 제시한다. 형이상학의 차원인 ‘이(理)의 세계’에서는 개인이 세계를 전유할 수 있으나, 현실 정치의 차원인 ‘사(事)의 세계’에서는 적극적 실천을 위하여 관직을 필요로 한다. (2) 또한, 기록에 따르면 당대에 “관직을 거부함으로써 영향력을 획득한 도학자들이 상당”했고, “명, 청 시기 도학자들은 (적어도 겉으로는) 관직을 목표로 하는 거업에 대하여 부정적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3) 따라서, 당대의 사람들은 현상계에서의 정치적 위계에도 불구하고, 형이상학계에서는 모두 보편과 연결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동등한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세계관에 근거한다면, 지방 엘리트들은 반드시 관료가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이러한 서사가 성립할 수 있는 이유는 샤오궁취안의 성인전식 사상사와는 달리 김영민의 사상사가 특정한 테마 즉, ‘형이상학적 공화국’을 중심으로 남송대의 정치사상사를 재현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현은 ‘사상사를 위한 객관성’에 기초하여, ‘서사의 설득력’을 갖춤으로써 허구가 아닌 서사의 지위를 획득한다. 특히, 샤오궁취안이 “송나라 이후 3백여 년 동안의 정치사상은 이학과 공리의 2파로 크게 나눌 수 있다”고 서술하면서도, ‘송나라’라는 시대적 기준에 얽매인 나머지 단순 나열식의 사상사를 제공한 것과 달리, 김영민은 ‘형이상학적 공화국’이라는 서사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위해 ‘송나라’라는 시대적 기준에서 벗어나는 ‘담약수와 증패’ 및 ‘명, 청 시기 도학자들’ 등을 논거로 끌어다 쓰고 있다. 즉, 1279년 멸망하는 남송 왕조를 사상사 서술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사용하기보다, 오히려 남송 이후 지속된 정치사상사의 특성을 밝히는 데 집중하는 적극성을 발휘하여 설득력 있는 서사를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신중국, 그리고 신한국 


이러한 논의를 종합해볼 때, 저자는 기존의 중국정치사상사 서사가 유교에 가한 부당한 비판으로부터 유교를 구해내는 작업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제주의를 정당화하는 유교를 이른바 왕조에나 어울리는 정치사상으로 간주한 신중국 역사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이는 1945년에 출판된 샤오궁취안의 『중국정치사상사』 이후 학계의 발전된 논의를 반영한 것인 동시에,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한 신중국이 현대에 들어 다시 중화를 전유하고자 하는 모순을 이해하기 위한 거대한 기획이다.


주지하듯이, 결사적인 태도로 전통적인 것과 결별하고자 했던 중국 현대사의 광기는 유럽 제국주의의 침탈에 의해 추동된 근대화를 완성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아편전쟁으로 대표되는 치욕의 역사를 딛고 일어서기 위하여 중국 공산당이 시행한 강박적인 개혁정책은 수천만 명의 목숨을 대가로 이른바 ‘전근대’적인 흔적들을 지워나갔다. 왕조국가의 정치사상으로 지목된 유교 또한 단절되어야 할 과거의 유산이었다. 이처럼 유교를 위시한 중화 관념을 현대 중국이 다시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파워로 삼고자 하는 모순을 모순 없는 언어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김영민의 서사가 필요하다.


이 대안적인 서사의 함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재정립된 유교의 의미는 현대 한국의 국가 정체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칠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중국 못지않게 대한민국도 제국주의의 침탈에 의한 근대화를 거쳤고, 그 과정에서 건국된 국가는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곧 주된 이데올로기로서 ‘유교’를 긍정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지는 않는다. 명나라의 멸망 이후 조선은 이른바 ‘소중화 이데올로기’를 통하여 청나라를 대신해 중화를 계승하고자 했음에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유교’는 주로 성차별과 권위주의 문화의 사상적 배경으로서 기억되기에 그친다. 이 점에서 한국 또한 신한국인 셈이다. 조선이 이어간 도학이라는 거대한 문화적 유산으로부터 우리는 포용적인 정체성으로 향하는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중화는 다시 한 번 국적성/종족성과 분리되어 전유될 수 있을까.




도서 정보

* 김영민, 『중국정치사상사』, 사회평론아카데미, 2021.

* 샤오궁취안(소공권) 저, 최문, 손문호 옮김,『중국정치사상사』, 서울대학교출판부, 1945/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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