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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리 Nov 19. 2021

두 번의 서스펜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스포 포함!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두 장면에서 관찰자의 서스펜스를 연출한다. 첫 번째 장면은 여자 주인공 케이티가 동네 마트의 보안직원 아이반에게 받은 번호로 연락할 때이다. 가족의 생존과 직결되는 다른 생필품은 계산대에 올려놓되, 자신의 몸을 위한 위생용품은 훔쳐 달아나려 했던 케이티는 절도 현장에서 붙잡히고 만다. 금전적인 문제를 겪는 동시에 “예쁜” 케이티를 도와주고 싶다는 아이반의 말은 흔한 작업 멘트도, 순간적인 동정심의 발로도 아니다. 아이반의 꺼림칙한 호의는 등장인물을 지켜봐 온 관찰자로 하여금 불안함을 느끼게 만든다. 떨어지기 직전의 화장실 타일처럼 불안하고, 식료품 지원소에서 참지 못한 허기만큼 위태롭다. 위험한 말이 이끄는 장소에 결국 도착한 케이티를 자세히 훑어본 사람은 “한부모 모임의 친절한 이웃”이 아니었다. 케이티가 문을 열고 들어온 댄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 장면에서 긴장감은 비로소 완전히 해소된다.


서스펜스란 침펄식 표현으로 [징기징기-징기징기] 하는 배경음이 깔리면서, 시청자는 알고 있지만 등장인물은 알지 못하는 위험이 등장인물을 향해 전개되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다. 케이티도 아이반의 말에서 꺼림칙함을 느끼지 못했을리 없다. 그러나 나는 생각건대, 통화버튼을 누르는 그녀의 손끝에서 일말의 기대같은 것이 스치지는 않았던가. 암담한 상황이지만 완전한 자포자기의 심정이 아님을 알기에, 그 예정된 위험을 향해 걸어갈 수밖에 없는 등장인물은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서스펜스를 느끼게 만든다. 


두 번째 장면은 케이티의 딸 데이지가 댄을 걱정하여 찾아왔을 때이다. 40년 경력의 목수지만 심장 건강의 문제로 당분간 일할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댄은, 영화 내내 질병수당을 타기 위한 복잡하고 지난한 행정절차와 맞서 싸운다. 본인의 상황에 좌절하지 않고 어려운 이웃을 위로하기까지 하는 댄은 꺾이지 않는 생존을 향한 의지를 표상한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댄은 데이지의 노크에 반응하지 않는다. 조용한 문틈 사이로 언뜻 흔들리는 누더기가 보인다. ‘데이지가 그의 죽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윽고 문을 열고 데이지를 끌어안는 댄의 모습, 그리고 케이티와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질병수당 항고 심사”를 위해 걸어가는 장면에서 관찰자의 불안함은 다시 가라앉는다. 일말의 희망이 보이는 상황 속에서 긴장한 모습의 댄은 세수를 하기 위해 혼자 화장실로 향한다. 혹시 모를 상황을 예견하며 최고조에 이른 관찰자의 긴장감은 비보와 함께 완전히 해소된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주는 불안함과 긴장감은 등장인물의 경제적 취약성과 복지행정의 불확실성이 결합한 결과이다. 당장의 가스, 전기요금 및 충분한 음식을 안정적으로 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개인은 기약 없는 행정절차 앞에서 무력하기만 하다. 현대 복지국가에서 경제적 취약성이 인간의 존엄을 갉아먹는 과정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개인의 삶에서 얼마만큼의 ‘예측가능성’이 확보되는지 또한 매우 중요한 삶의 질의 척도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질병수당 자격 탈락에 대한 항고절차의 지연이 불러온 결과는 참담하다. 댄은 최저생계를 위한 모순적인 “구직수당”의 증명 과정에서 “제재대상”에 오르며, 남은 것은 “수치심”뿐이라고 자조한다. 그가 마지막까지 요구한 것은 “인간적 존중”이었다. 절차적 예측가능성의 확보는, 이 영화가 지적하고 있는 다른 문제들, 예컨대, 복지 수혜자의 수를 최소화하는 것이 지상 목표인 듯한 소극 행정과, 열악한 서비스와 불분명한 책임 소재의 문제를 낳은 행정의 민영화, 그리고 디지털 소외 등에 비하여, 적은 노력으로 명확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경제적 취약성은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모욕적인 결과로 이어지곤 한다. 복지 체계는 이러한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여야 한다. 복지체계에서의 탈락은 정상성으로부터의 최종적 이탈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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