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모임에서 뱅크시 전시회에 갈 사람을 신청받는다기에 화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엄청 유명한 사람이야”라는 주변의 말만 듣고 일단 신청했다. 전시장이 종로에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지도를 보니 전시장인 ‘그라운드 서울’은 내 첫 직장과 너무 가까운 곳에 있었다. 직접 가서 보니 20여 년 전에는 요정과 같은 술집이었던 곳이 전시장이 되어 있었다.
뱅크시는 얼굴 없는 화가로도 유명하다. 1974년 영국 남부의 작은 도시 브리스톨에서 태어났다는 추정 이외에 그의 신상에 대한 공식적인 정보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예술 테러리스트라고 칭하고 있으며, 규율과 규제를 싫어한다. “이 세계의 거대한 범죄는 규율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규율을 따르는 데에 있다.”라는 말에서 그의 생각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뱅크시의 그림은 그의 사회 현상에 대한 저항 의식과 반감을 그대로 보여준다.
전시된 그림들은 그래피티(graffiti)에 의해 탄생하였다. 그래피티는 스프레이를 이용해 공공장소에 글과 그림 등을 남기는 행위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 나라에서도 이를 불법행위로 간주한다. 뱅크시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가 그것인지도 모른다는 합리적인 추정이 가능하다. 뱅크시의 그림은 주로 스텐실이라는 기법으로 탄생한 것도 그 때문인 듯하다. 그래피티 작업 현장이 노출되지 않게 짧은 시간에 벽에 그림을 그리고 사라져야 체포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소개할 뱅크시의 작품은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n)》, 《꽃을 던지는 사람(Love is in the air)》, 《자본주의 붕괴(Festival)》이다. 세 작품은 가장 잘 알려진 뱅크시의 대표작이기도 하고, 특히 내가 오랫동안 그림 앞에 머물러 생각에 잠기게 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풍선과 소녀》는 2002년 영국 런던 쇼디치(Shoreditch) 근교의 건물 담벼락에 남겨진 벽화를 회화로 복원한 그림이다. 이 작품 앞에 서자 풍선을 떠나보내는 소녀의 모습이 나를 떠나지 못 하게 했다. 정말 손에 쥐고 간직하고 싶었을 빨간색 하트 모양의 풍선이 손에서 떠나가는데, 소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것을 잡을 힘이 부족해 보인다. 풍선이 멀어져 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넋 놓고 보고 있을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무언가 소녀를 움직이지 못하게 잡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림의 옆에는 “항상 희망이 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남겨져 있다.
난 이 작품에서 '집착'이라는 단어를 연상했다. 과도한 집착은 불행을 초래한다. 행복을 위해서는 집착이라는 터널을 벗어나야 한다. "집착을 우리 손에서 놓았을 때에야 바로소 다가올 것에 대한 기대감과 희망으로 행복해질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소녀는 그것을 절감하고 있으리라...다른 그림들을 관람하다 다시 한번 이 그림 앞에 섰다. 이번에는 희망이라는 풍선을 소녀가 잡으려 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그림이다.
이 그림과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2018년 영국 런던의 소더비 경매에서 이 그림은 약 15억 원에 낙찰되었는데, 자동 파쇄되어 반쯤 찢겼다. 2021년에 찢긴 그림은 ‘쓰레기통 속의 사랑’이라는 작품명으로 다른 사람에게 약 300억 원에 다시 판매되었다.
《꽃을 던지는 사람》은 2007년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속한 베이트 사후르의 한 건물 벽에 처음으로 그려졌다. 서안지구는 팔레스타인의 행정구역에 속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지역이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을 예루살렘의 동성애자 행렬 습격 사건과 연결 지어 보는 시각도 있지만, 뱅크시가 이 그림에서 두 나라의 분쟁을 무력이 아니라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결하자는 호소를 담아냈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이 그림에서는 뱅크시가 평화, 반전, 비폭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화염병이나 돌멩이가 아니라 꽃을 던지는 사람의 모습에서 권위와 폭력에 대항하지만, 무력이 아닌 평화로운 방법으로 저항 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뱅크시가 화염병 대신 꽃다발을 사용한 이유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에 일어난 미국의 학생운동에서 비폭력 저항의 의미로 사용했던 ‘플라워 파워(Flower Power)’를 모티브로 했다.”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 작품은 상표권 소송으로도 유명하다. 폴 컬러 블랙이라는 회사에서 이 그림을 무단으로 카드에 인쇄해 사용했는데, 뱅크시는 2014년에 이 회사를 상표권 도용으로 고소했다. 2년의 재판 끝에 뱅크시가 상표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판결이 난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작가가 정확히 누군지 모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Festival》에서는 뱅크시가 자본주의에 대해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 작품은 ‘자본주의 붕괴’라는 부제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자본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모순을 나타냈다. 축제기념품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그런데, 축제기념품인 빨간색 티셔츠에는 ‘자본주의 붕괴(Destroy Capitalism)’라고 쓰여있고, 사람들은 펑크, 고스, 히피의 패션을 하고 있다. 즉, 자본주의에 반항하는 모습으로 자본주의에 순응하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뱅크시의 자본주의에 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핑크, 고스, 히피의 패션을 하며 반자본주의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스타일의 외관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축제의 기념품을 사기 위해 기꺼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자본주의의 착실한 순응자들처럼 보인다. 티셔츠에 인쇄된 “자본주의 붕괴”는 활자로서만 허공에 메아리 칠뿐 그에 응하는 실천과 지지는 따르지 않는다. 《그라운드 서울의 그림 설명》”
이외에도 처칠, 엘리자베스 여왕 등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한다. 내가 정형의 틀에서 생각하고 행동해 왔다면 뱅크시는 그러한 것을 과감하게 탈피하라고 내게 얘기해주는 것 같다. 일탈의 쾌락을 잠시 느끼게 해 준 작품들이 아니었나 싶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해 본다. 뱅크시의 그림은 그래피티로 불법이지만 재물손괴죄로 잡혀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최근에 뱅크시가 벽화를 그린 주택의 가격이 약 4억 원에서 72억 원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그러자 집주인은 집을 처분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경사가 22도로 가파른 오르막에 지어진 건물 외벽에 그려졌다. 경사를 이용해 벽화 속 할머니의 재채기가 옆집 쓰레기통을 넘어뜨리고 사람까지 쓰러뜨리는 것처럼 묘사했다.
이번 전시회는 국내에서 열린 뱅크시 전시회 중 최대 규모라고 한다. 또한, 뱅크시 그림의 인증 기관인 '페스트 컨트롤'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증받은 작품들로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10월 20일까지 전시회가 진행되니 한 번쯤 가 볼 만한 곳이라고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