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에서 알려주기를, 작년 오늘 랭기오라 베이커리를 갔다고 한다. 이건 완존 깜놀이다. 일년만인 오늘 그 빵집을 갔다 왔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에 남편과 했던 이야기이다.
버스타고 함 가보자고, 작년처럼 파네토네가 있으면 사오자고, 처음에는 쪼까 망설이던 남편이 그러자고 한다. 아들에게 그런 얘기를 했더니 혹시라도 픽업이 필요하면 전화하라고 한다.
왕복 버스 시간이 세시간이 안되니까, 서둘지 말고 널널하게 출발하자고 얘기가 다 되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아침이 되니까 또 귀차니즘이 슬슬 올라왔다.
"가? 말아?"
"...가자고"
남편도 마음속 사정은 비슷한지 대답이 시원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미련이 있었던지 가자고 한다. 그렇다면 하는 수 없어서 출발,이었다.
시간은 1시간 9분, 버스는 환승을 해야했다. 정류장은 여덟 곳과 마흔 여섯 곳, 걸어야 하는 거리가 합 1400미터였다.
시작점인 첫 정류장까지 700미터를 걸으려니까 기분이 묘했다. 초등학교때 소풍가던 기분도 나고, 이제라도 그만둘까 하는 마음까지 오락가락했다. 환승 정류장에서 십여분을 기다리는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이쯤되면 다시 그만둘까 하는 마음이 뭉게뭉게 올라오는데 망설이는 사이에 환승버스가 왔다. 이제는 늦었다.
버스에 앉으니까 쪼까 긴장이 되었다.
이민 20년차, 남편과 함께 버스는 처음이었다.
"인자는 빼박이네"
실없는 우스개 소리에다, 두리번 거리며 촌티를 줄줄냈다. 고속도로에 들어섰더니 바깥 풍경을 보는 것이 나쁘지 않았고 처음이라는 그 기분이 보태져서 마음이 들뜨기까지 했다.
"이건 완존히 제주도 기분난다이"
버스를 내려서는 700미터를 걸었다.
죽 늘어선 상가를 지나노라니 고색창연한 상가건물들과 유리창이 예뻤다. 지진전의 치치 생각도 나고 해서 구경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남편의 걸음을 따라갈려니 마음이 바빴다.
드디어 빵집에 도착했다. 기대했던 파네토네도 없었고, 오늘따라 사고 싶은 빵도 없었기에 쪼까 거시기했지만, 입가심을 하고 무료 와이파이도 하고... .
이제는 돌아갈 시간, 뜻밖에도 하차했던 정류장이 아니고 빵집에서 가까웠다. 정류소가 가까워서 좋다 하고 올랐더니 오늘의 2탄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애가 전화를 했다. 혹시 픽업올까냐고, 지 부모가 미아될까바... . 아빠 옴마 살아서 집에 간다고 했더니 평소 내 화법을 아는 아들애는 웃지도 않았다.
15분 후에 출발한다기에 여기가 종점이자 출발점 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때부터 랭기오라 주택가를 좌회전 뱅글, 우회전 뱅글, 치치보다 좀 더 널찍해 보이는 주택가와 크리켓 운동장 등의 버스 정류소들마다 정차를 했다. 20여분을 그러고 나니까 눈에 익은 도로와 상가가 보였다. 아까 우리가 내렸던 타운홀 정류소가 나왔다.
"인자 진짜 집에 간다이"
"운전 안하이 참 좋네"
노스랜드몰 정류소에 내렸더니 환승버스가 출발할라꼬 깜박거리고 있었다. 재바른 남편이 뛰어가서 아슬아슬하게 붙잡았다. 버스를 내리면서 크게 땡큐를 외치고 손까지 흔들었다. 가사양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지 응대가 좋았다.
사 온 빵으로 점심을 묵었다.
풍선 같은 하루였다.
내년에도 이런 우연이 겹칠란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