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주제다/남영신/아카넷/2014
"주제가 있는 글이란 글 전체가 주제로 수렴(의견이나 사상 따위가 여럿으로 나뉘어 있는 것을 하나로 모아 정리함)되는 글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 읽기다. 이 책도 어는 글쓰기 책 추천 도서에서 발견한 책이다. 칼럼을 잘 쓰기 위해 읽어야 할 책으로 어렴풋이 기억된다. 역시 메모를 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잘 찾을 수 있는 색인목록도 필요함을 느낀다. 나이가 들어감에 명석한 두뇌보다 역시 믿을 것은 기록이다. "국어를 배우면 주제를 알고 수학을 배우면 분수를 알아야 한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글뿐만이 아닌 삶도 어쩌면 이 주제를 제시한다면 그것을 뒷받침하는 일들로 일관성 있게 이뤄진 삶이 정말 힘들다는 걸 나이가 들으면서 배운다. 적당히 타협하고 이런 게 인간적인 거라며 용인이 늘어가는 삶 대신 대쪽처럼 한 가지 주제를 , 가치관을 두고 그것을 추구하고자 일관되게 살아가는 이들을 우린 잘 살았다고 하거나 참 어른이라고 한다. 변절하거나 중간에 갈아타는 경우의 삶들이 많기에 어쩌면 이 주제 있는 삶은 더 빛을 발할 수 있다.
"한국해설자 : 저 기술은 가산점을 받게 되어 있어요.
서양해설자 : 나비죠? 그렇군요. 마치 꽃잎에 사뿐히 내려앉는 나비의 날개 짓이 느껴지네요.
한국해설자 : 코너에서 착지 작세가 불안정하면 감점 요인이 됩니다.
서양 해설자 : 은반 위를 쓰다듬으면서 코너로 날아오릅니다. 실크가 하늘거리며 잔물결을 흩뿌리네요!
한국해설자 : 저런 점프는 난도가 높죠. 경쟁에서 유리합니다.
서양해설자 : 제가 잘못 봤나요? 저 점프! 투명한 날개로 날아오릅니다. 천사입니까? 오늘 그녀는 하늘에서 내려와 이 경기장에서 길을 잃고 서성이고 있는 천사입니다. 감사하고 감사할 다름이네요.
한국해설자 : 김연아가 경기를 완전히 지배했습니다. 금메달이네요! 금메달!, 금메달!
서양해설자 : 울어도 되나요? 정말이지 눈물이 나네요. 저는 오늘 밤을 영원히 기억할 겁니다. 이 경기장에서 연아의 아름다운 몸짓을 바라본 저는 정말 정말 행운아랍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 신이시여!
이 책에서는 귀감이 되고 접하기 어려운 필사 문장 또는 칼럼, 논설문들이 예시로 몇 편 등장한다. 모든 걸 점수로 평가하는 우리나라 해설자와 기량 중심으로 평가하는 서양해설자의 차이점을 통해 결과와 능력중심의 우리나라 교육현실과 승진을 해야 하는 모든 직장인들의 인사고과와도 연결 지어 되볼아보게 한다. 이것도 주제의 역설일까. 뒷받침 문장이 글쓰기는 주제다라는 주제보다 다른 것에 관심을 두는 것. 일관성이 결여된 문뒷밭침 문장이다. 그래도 이 문장은 학벌중심, 점수중심, 순위중심 등 결과와 실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교육풍토를 적절하게 비판한 사례글이다. 단 서양해설자의 해설은 너무 오글거리는 것은 사실이다. MBTI T와 F의 차이일까. 아니면 삶의 대응 방식이 어쩌면 나라를 잘 만난(?) 이유로 삶의 여유가 있는 서양과 하루하루 각자도생이자 생존경쟁인 급급함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에 갇힌 동물보다 자연공원에 방목된 동물이 더 자유로운가. 겉으로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하나도 없다. 허용된 자유는 언제든 허락한 측에서 철회할 수도 있는 불완전한 자유, 아니 정확히 말해 자유를 표방한 기묘한 억압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자연농원의 동물은 자신을 가두는 사방의 벽 쪽으로 가기보다는 본능적으로 가운데로 모인다. 하긴 벽에 직면하는 순간, 자신이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 테니 얼마나 불쾌한 일이겠는가. "한계를 넘지 않는다면, 너희들 마음대로 해도 좋다." 이것이 자로 허용된 자유의 논리이다. 허용된 자유를 자유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자신을 검열하게 된다. 체제가 우리를 핍박하려고 할 때, 우리는 나약하게 외칠 것이다. "저는 한계를 지켰는데, 왜 그러세요?"너무나 어리석고 나약한 한탄을 토해 내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허용된 자유를 거부하고 자신의 자유를 찾아야 한다.
- 강신주 <김수영을 위하여>
주제문은 우리는 허용된 자유를 거부하고 자신의 자유를 찾아야 한다는 문장이다. 이를 뒷받침하고 수렴하는 문장들이 앞에 촘촘하게 열거되어 있다. 동물의 자유와 인간의 자유가 대응할지는 모르겠지만. 또 지나친 디테일일지는 모르지만 앞에느느 자연공원으로 나오고 뒤에는 자연농원으로 나온다. 지금은 에버랜드이지만 예전에는 자연농원이었다. 이에 대한 오타인 것 같다. 출판사에 알려줘야겠다. 이것도 주제의 역설이다. 이 단위글도 진정한 자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인간들 역시 정해진 법과 제도 틀 안에서 자유를 허용한다. 하지만 이 법과 제도라는 틀이 없다면 진짜 무법천지가 정글이 되지 않을까. 그 법과 제도가 만인을 위한 평등한 법과 제도라면 괜찮겠지. 특정 계층을 위한 편법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접근하지 못하도록 위 글처럼 벽으로 막아두거나 접근 권한을 주지 않는다면 그 역시 문제다.
일한합방성명서
아! 우리 단군으로부터 4천 년의 신성한 역사를 지니고 우리 태조가 500년 왕업을 창시한 땅에서 살고 있는 2천만 국민 동표여! 국가는 독립하고 국민은 자유로 경쟁무대에 뛰어들 조국 정신이 2천만의 머릿속에 충만되어 있다는 ㅇ것은 진실로 인정하는 바이다. 만약에 이러한 정신에서 벗어나서 남의 구속과 억압에서 사는 것을 편안하게 여기고 남의 노예가 되기를 바라며 아부하고 의뢰하는 것만을 달게 여겨 좋아하는 것은 홍노흑만(紅奴黑蠻)의 종족도 오히려 수치스럽게 여길 일이다. 그러나 나라의 정세를 가늠해 보고 시기에 맞게 변통하는 것을 잘하지 못하여 도리어 몰락의 독을 흡수하고 멸망의 화를 자초하는 말로에 빠져 들어가도 멍청하게 각성하지 못하는 것은 비유하면 조국에 대한 정신은 머릿속에 충만하지만 이미 더는 어찌할 수 없는 한탄을 품게 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오늘의 상태는 이 근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때이다. 생각해 보라! 2천만 국민의 눈앞에 닥친 위급한 형편이 과연 어떠한가? 살래야 살 수 없고 죽으래야 죽을 수도 없다. 이미 노예로 희생되는 비참한 지경에 떨어진 오늘날에 있어서 과거를 돌이켜보고 앞날을 생각하면 어찌 앞길이 막막하고 눈앞이 캄캄한 느낌이 없겠는가? 이것은 하늘이 돌보아주지 않아서도 아니고 스스로 초래케 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갑오년 일본은 일청전쟁을 일으켜 거액의 전비를 소모하고 수만 명의 군사를 희생시켜 가면서 청나라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고 우리 한국의 독립을 확고히 해주었다. 그런데도 정사를 어지럽히고 호의를 배격하여 이 만대의 기초를 능히 지키지 못한 것은 우리 한국 사람들 스스로가 초래케 한 것이다.
마침내 일로전쟁의 인과를 초래하여 일본의 손해는 갑오년의 10배나 되었으나 우리를 러시아 사람들의 범 아기니에 한 덩어리의 고기로 먹히게 되는 것을 면하게 하고 온 동양 판도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에 노력하였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이 선린주의에 즐거이 따르지 않고 도리어 이 나라에 붙었다 저 나라에 붙었다 하는 폐단을 만들어내어 마침내는 외교권을 남에게 넘겨주고 보호조약을 체결함에 이른 것도 또한 우리 한국 사람들 스스로가 초래한 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관계가 이미 밀접해졌으니 감정을 풀고 기술을 배우며 문면의 모범을 점차 조금씩이라도 받아들여야 하겠는데 도리어 헤이그 특사 문제를 만들어내어 일대 정국의 변동을 일으키고 7 조약을 계속하여 체결하게 된 것도 우리 한국 사람들 스스로가 초래한 것이다.
시국 형편이 완전히 달라진 뒤로 재산을 늘리는데 힘스게 하고 생활을 펴이게 하여 교육을 발전시키고 지식을 넗히게 한 지 3년 동안에 한 가지 사업도 발전시키지 못하고 안으로는 권세와 이약을 다투고 밖으로는 폭도와 비적이 창궐하여 인민의 생활은 아침과 저녁도 고려하지 못하게 되어 점점 극도에 빠지게 한 것도 우리 한국 사람들 스스로가 채택한 것이다.
이토오태사가 백성들을 보살펴주고 동궁을 이끌어 주며 우리 한국을 위하여 수고를 다한 것은 잊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도 해외의 하얼빈에서 변괴가 생긴 것으로 인하여 일본 전국의 여론이 물 끓듯 하여 한국에 댇한 정책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혹은 어떠한 위험을 불러일으킬지 모르게 된 것도 우리 한국 사람들 스스로가 채택한 것이다.
종래에 우리 한국은 전제정치로 인민들이 권리를 속박하여 자유롭지 못하였던 민족인 까닭에 스스로가 채택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하여도 될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보고 앞날을 생각하면 안위존망을 결코 민족의 책임으로 돌린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 지난날의 교훈이 오래지 않은 만큼 그 전철을 밟지 말고 500년을 지내온 종사가 폐허로 되고 2천만의 백성이 한 명도 남지 않을 비참한 지경에 빠질 것이다.
오늘 라이 어떠한 때인가? 외교권 한 가지를 이미 넘겨준 결과로 재정이 우리에게 있는가? 군기가 우리에게 있는가? 통신이 우리에게 있는가? 법률이 우리에게 있는가? 이른바 조약이라는 것은 하나의 무용지물이 되고 나라의 기백과 백성의 목숨은 빠르게 죽음의 구렁텅이로 떨어져 가고 있다. 오늘에 지난날이 다시 오지 않고 내일에 오늘이 다시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제오늘을 알지 못하는 만큼 오늘에 내일을 대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 우리 2 천마산 국민의 머릿속에 충만된 조국 정신을 떨쳐내어 큰소리로 외쳐서 지금 일본의 여론이 주장하는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하여 그 파란을 안정시키면서 우리 황제폐하와 일본 천황 폐하가 하늘까지 통할 하나로 뭉친 정성으로 애달프게 호소하여 우리 황실을 만대에 높일 수 있는 기초를 공고히 하고 우리 백성들에게 일등 대우의 복리를 누리게 하며 정부와 사회가 더욱더 발전하게 할 것을 주창하여 일대 정치적 기관을 이룩하도록 하는 것이 곧 우리 한국을 보호하는 것이다.
죽으래야 죽을 수 없는 우리 2천만 국민은 노예의 멸시에서 벗어나고 희생의 고통을 면하여 동등한 대열에 서서 완전히 새롭게 소생하여 앞을 향하여 전진해 보고 실력을 양성한다면 앞날의 쾌락을 누리고 뒷날의 살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은 확연 명료하다. 아! 오늘 만 번의 죽을 고비를 넘어 한 번 살아날 길을 애달프게 호소하는 것은 단군으로부터 4천 년의 역사와 태조가 500년 왕업을 창시한 큰 터전인 종묘사직을 길이 편안하게 하고 신성한 민족을 편안케 하려는 하나의 양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만약에 이 기회를 이용하지 않으면 하늘의 신령이 반드시 죄를 주리라. 우리 2천만 국민에게 맹세를 다지며 이 뜻을 성명한다.
- 1909년 12월 3일, 일진회 회장 이용구와 회원 100만 명의 이름으로 한일합방을 요구하는 성명서
글쓴이는 마지막 연습문제로 위 글을 실었다. 주제와 소주제를 분석하고 주제가 적절한지와 주제와 소주제 간에 통일성이 있는지, 소주제의 뒷받침이 적절한지를 써 보도록 안내했다. 글 자체로 보았을 때는 형식과 짜임면에서는 주제를 잘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는 뒷받침 소주제가 모두 부적절하다.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와 의병활동, 헤이크 특사 모두를 자국 중심이 아닌 일본 중심으로 해석하고 있다. 회원이 100만이라는 것도 놀랍다. 글만보면 매우 그럴듯하지만 일본의 여론을 잠재우려는 글이다. 한일합방도 아니고 일한합방이라니.
작가는 마지막 장에서 기록하는 글쓰기 중 개인사를 써보도록 권유한다. 드라마를 보다보면 시대가 빌런이라는 생각이 들때가 종종 있다. 시대 사건사건마다 개인 사연들이 다 있을 것이다. 이를 하나로 모으는 방법, 즉 공동체가 공통되는 담론을 만들어 꾸준히 의견을 나누는 마당을 만들어 갈등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것, 작가는 언어를 바탕으로, 즉 글쓰기를 토대로 사회가 발전하기를 꿈꾼다. 이와 결을 같이 하는 이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사회 변화를 위해 주장하는 글이나 칼럼을 쓰고 싶은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책이다. 마지막 이 책 부록에 글쓰기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어찌보면 주제의 역설이지 싶지만, 드라마 간접광고처럼 보이지만 부록이라 한 권의 주제와는 무관할지도 모르겠다. 학자나 연구자, 높은 자리에 있는 분(?)만이 아닌 누구나 글쓰기를 통해 사회와 소통하고 함께 성장하는 글쓰기를 꿈구는 것은 이오덕 선생님 삶을 가꾸는 글쓰기 정신과 닮았다. 그러기에 이 책은 글쓰기 덕후들에게 널리 알려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