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산 Jan 12. 2023

#15.'모검' 직장 내 호칭

직책명이나 존칭은 없다. 그냥 별칭만 부르면 되는 민주적인 곳  

  지난 2022년 1월 발령 공문을 받고 교육청을 찾았고, 바로 이곳으로 왔다. 이름도 어마무시한 중간지원조직. 처음 이곳에 인사를 왔을 때 별칭, 즉 예명, 별명을 정해두라고 했다. 성함과 직책명을 쓰지 않고, 무슨무슨 남자도 붙이지 않는다. 별칭만 부른다고 했다. 얼마 전 보았던 프로배구 모 팀의 작전타임시간이 떠올랐다. 서로 편하게 반발하며 영어식 이름을 부르는 팀의 모습을 보았다. 그 팀의 순위는 높지 않았지만, 감독은 다른 팀으로 옮겼지만 그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토니! 브라운! 잭! 윌리스!' 이 이름들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단 영어식 이름이라는 게 조금 서운했다. 고운 우리말 이름도 좋았을 텐데. 

 

  회복적 생활교육 연수를 가면 꼭 별칭을 사용했다. 첫 시간 긴장을 풀고 마음을 여는 시간에 사용했던 별명을 쓰는 카드가 A4 삼각대 한 면에 자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이오리듬이나, 이름의 뜻, 올해 가장 기억 남는 일 등. 지금까지 사용했던 별칭을 추적해 보면 '섬진강', '은결', '모모'였다. 3월 정식 출근할 때까지 별칭을 생각해오라는 명령 아닌 명령을 받았다. 이게 다 인수인계 때 배웠던 거버넌스 문화를 위한 방법 중 하나라고 한다.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로 원활한 소통과 민주적인 조직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난 일주일간의 고민 끝에 '보검'이라고 정했다. 처음에는 현재 글명인'한량'도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반대가 너무 많았다. 바쁜 직장 생활에 '한량 한량'하며 부른 염두가 나지 않고 이미지가 좋지 않아 주변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을 것 같다고 한다. 난 빠른 수긍을 하고 두 번째로 생각했던 '보검'을 이야기했다. '보검'은 닮은꼴 앱에서 찾은 연예인 이름이다. 다들 믿지 않았지만 그 앱은 분명히 내 얼굴을 인식하고 엄청난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응답하라 1988'의 박보검을 골라줬다. 믿지 못하겠다는 듯 그 앱이 어떤 거냐고 묻는 이도 있었고. 보건복지부 소속 팬인지 절대로 보검이라 부를 수 없다며 자음 'ㅂ'의 위를 떨어뜨린 'ㅁ'을 사용한 '모검'으로 절충안을 냈다. 그 이후 보검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한 둘이 되었고 결국 난 모검이라고 불리고 있다. 박보검이 제대를 해서였는지도 모른다. 


 학교에 있었다면 아직도 누구누구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아니면 부장님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꺼냈을 것이다. 관리자인 교장, 교감선생님을 제외한 모든 선생님들은 동등한 입장이라 그래도 교직 문화는 평등한 면이 많다. 그래서 다들 맡는 직책에 따라 부장을 뒤에 따라 불러주곤 했다. 정보업무만 맡았을 뿐인데 '정보부장'으로 불러줬던 학교도 있었다. 이렇게 직책명이 중요했다. 그냥 누구누구 선생님이라고 해도 좋은데 말이다. 


  아직은 호칭을 부르고 불리는 시작 단계이지만 이렇게 호칭이 편해지면서 부르는 게 훨씬 부드럽고 소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단 본명이 가끔 생각나지 않아 민원인들에게 전화 연결이나 부를 때 낯선 별칭을 이야기하면 의아해하거나 당황해하는 경우가 있다. 호칭으로 찾는 거버넌스. 서로 부를 때 평등하다는 건 소통의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