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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머 Oct 05. 2022

글감이 없는 게 글감입니다


 또 글감이 없다. 이쯤 되면 글감이 없는 상태가 디폴트이고 글감이 생기는 날이 특별한 날 아닐지. 글감이 무슨 감도 아니고 기다리면 익어서 떨어지냐. 내가 찾아다녀야 하는 게 맞지. 그래 그게 맞지 그런데...


 하나의 잘 익은 글을 내보내려면 일단 열매가 있어야 한다. 그 열매를 묻을 적당한 땅이 필요하다. 그 땅을 마음이라고 하자. 일종의 여유라고도 볼 수 있겠지. 그런데 내겐 그게 없다. 마음이고 여유고 다 없다고. 그냥 하루하루 살아내느라 멋진 뭔가를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일어나서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밥 먹고 출근한 다음 허겁지겁 일한다. 퇴근하고 돌아와서 밥 먹고 운동하고 잔다. 그 사이 어딘가에 여유를 끼워 넣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글이고 뭐고 드러누워 자고 싶다. 사실 지금도 눈이 막 감긴다. 오늘 하루는 건너뛸까도 생각했지만 찝찝해서 그러지 못했다. 그렇다. 나는 글이 좋아서 쓰는 게 아니라 안 쓰면 찝찝해서 쓰는 인간이다. 이런 인간이지만... 더 이상 나와의 약속을 깨는 짓은 그만하고 싶다.


 그럴듯한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과연 건강한 욕망일까. 어쨌든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된 곳에 올리는 글이니까 너무 구리면 안 되니 적당한 정도로만 구리게 포장하는 것... 그게 내 방식이다.


 며칠 동안 계속 글을 썼다. 어쨌든 매일 쓰기로 다짐했으니까. 그런데 도저히 글감이 안 떠올라서 비공개로 일기만 잔뜩 썼다. 요즘은 하루에 25분씩 쓰고 있는데, 25분은 일기 쓰기엔 엄청 긴 시간이더라. 그래서 긴 일기를 썼다. 일기도 매일 쓰니 지겨워서 다른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글감이 없다는 하소연을 글로 쓰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척척 글을 쓸까? 대단하다. 어떻게 자기를 다 드러낸 글을 쓸까? 궁금하다. 쓰려면 나를 더 드러내야 하는데 나는 그게 두렵다.


 이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써도 되나 걱정을 잠시 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이미 에너지를 전부 회사에 쓰고 왔으니 생각할 힘이 없다. 어떤 유명한 작가가 말했다. 글은 써야 는다고. 대신 에너지가 많을 때 쓰라고. 아마 말똥한 정신으로 쓰라는 거겠지. 지금 남아있는 1%의 에너지로 쥐어짜낼 수 있는 건 ' 그래. 내일은 아침에 글을 쓰는 거야.' 하는 생산적인 다짐뿐. 근데 아침은 아침대로 잠이 덜 깨서 헤롱대느라 집중 안 되던데...


 이렇게 쓸 얘기가 없으면 그냥 안 쓰면 되는 거 아닐까? 음? 쓸 말이 없어도 엉덩이 힘으로 의자에 앉아서 빈 종이(화면)를 노려보는 것이 미덕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할 얘기가 없는데도 반쯤 정신을 놓고 단어와 단어를 늘어놓고 억지로 마침표를 찍어 꼴만 갖춰야만 하는 걸까.


 응. 그래도 해야 한다. 쓰는 게 맞다. 말이 안 되고 모자라더라도 일단 쓰는 게 중요하다(고 누가 그랬다). 이 글을 아무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지나고 부끄러움이 찾아오면 슬그머니 삭제될 글입니다...


 앞으로 5분 남았다. 아주 천천히 퇴고를 한 번 하고 발행 버튼을 누르겠다. 아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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