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 - <장면들>, 손석희
1. 전체 사회가 아니라, 기득권과 영향력있는 집단을 위해 경비견 노릇을 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기존의 사회시스템을 지켜내도록 하는 것.
2. 그 시스템에 대한 모든 잠재적 침입자를 감시하고, 지배세력이 미처 알지 못한 침입자에 대한 경고음을 울리는 존재.
3. 그런데 그런 상황은 때로는 지배그룹 내의 부조화에 의해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
4. 경비견으로서의 언론은 지배세력에 의존하긴 하지만 복종하지는 않으며, 지배세력 간의 불화가 일어날 경우 그 갈등을 정치화하기도 한다.
5. 이 과정에서 언론은 권력 엘리트들에게 문제 해결자를 자임하면서 권력의 현상 유지를 위한 해법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6. 결론적으로 경비견으로서 언론의 목적은 특정한 지배집단을 위해 경비를 서는 것이 아니라 지배 시스템을 지켜내는 것이며, 이 시스템에 위협이 되는 존재를 향해 짖는 것이다. 기득권화된 언론 자체가 생존하려면 그 시스템이 지켜져야만 하므로 이는 당연한 것이다.
'앵커브리핑' '팩트체크' '비하인드 뉴스' '문화초대석'. 이들 코너들을 돌면 새로운 저널리즘이 보였다.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문화 초대석'을 빼고는 모두 매일 제작할 것을 고집했다. 찔끔찔끔 나가서는 시청자들에게 각인되기 어렵다고 봤다.
뉴스를 진행한 이래,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1분도 여유가 없었던 날들이었다.
편집회의 두번에, 그날 나가는 모든 뉴스를 사전 체크해야 하고, '앵커브리핑' 원고에 매달리는 동시에 '팩트체크'와 '비하인드 뉴스'의 아이템과 원고까지 검수해야 했다. 그러고 나면 그날의 '엔딩곡'은 뭐냐고 재촉해오는 것이다.
시장경제 속에 있는 언론사가 어떻게 거기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수익구조가 시장에 있는 한 그것을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신문의 초창기부터, 특히 대중신문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그 '장사'의 '도구'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좋은 도구'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