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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부장 Jan 19. 2023

비운의 노력파에게 행운이

받은 메일함. 클릭. 우선 업무 외 메일부터 지우는 게 일이다. 사실 바로 지우지 않는다. 어지간하면 광고메일들을 다 열어보고 지운다. 그 시간에 일을 했으면 더 빨리 마치고 일찍 잠들거나 드라마 한 편을 더 볼 수도 있는데 굳이 스팸처리하지 않는 나의 요상한 습관.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라서는 아니다. 그냥 유해한 나의 업무 워밍업. 택배상자가 늘어난다. 


그날도 익숙한 광고메일들. 그런데 그 가운데 대번에 눈에 띄는 낯선 메일. “작가님께 제안이 도착했습니다!” 나를 기자라고 부르는 데는 <오마이뉴스>, 나를 작가라고 호칭할만한 데는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이다. 이건 뭐지? 하며 메일을 클릭했다. 


“오늘 아침 우연히 오마이뉴스에 뜬 기사 <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 이러고 삽니다>를 읽게 되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농사일을 참으로 유머러스하게 그려내셨네요.”


그 글은, 몸에 쇠붙이 하나씩은 갖고 있는 환자와 노인, 그래서 어쩌면 사이보그라 해도 괜찮을 우리 가족의 밭농사이야기였다. 삶의 고단함과 진솔함이 녹아 있어서 좋았다는 내용이었고 내친김에 나의 다른 기사도 읽었다고 했다. 브런치까지 찾아와서 다시 몇 편의 글을 더 읽고  브런치를 통해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텃밭 농사꾼으로 사는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줄 것 같습니다.”


세상에나! 출판사였다. 생면부지인 누군가가 읽어주는 것도 신기한데 책으로 내고 싶다니. 아. 나에게 행운이 이렇게도 찾아오는구나. 난 머리도 실력도 좋지 않아서 그저 평생 노력파, 그것도 남들의 두 배는 더 노력해야 그나마 성과는 절반인 효능감 없는 비운의 노력파라고나 할까. 좋게 말해서 대기만성형. 이렇게 한방에 찾아오시려고 운을 아꼈나. 

그동안 써놓은 글을 모아 출판사에 투고해 보려고 준비는 하고 있었더랬다. 출판 관련 강의도 듣고 출판사 명단과 DM을 리스트업 해놓았고 투고 메일 잘 쓰는 법도 검색했다. 거절당한 사례들과 그래도 실망하지 말라는 조언들도 도움이 되었다. 밥벌이가 바쁘다 보니 목표한 일정을 넘기긴 했어도 이번달까진 도전해 봐야지, 올해까지는 어떻게든 해보자는 사라지지는 않는 다짐을 안고 있었다.


메일을 내려가면서 읽는데 손이 떨렸다. 심장이 두둥두둥... 아, 이런 기분 얼마 만에 느껴본 건지...... 어떻게 하지? 뭐부터 할까? 함께 글을 쓰는 동지들에게 먼저 소식을 전했고 기쁨을 나누었다. 우리 글 쓰는 사람들은 내 글을 알아주는 출판사를 만나는 것이 정말 바라는 일이고 다들 언젠가 그 순간을 기대하며 꾸준히 글을 쓴다. 


다음날 답변 메일을 썼다. 짧은데 공들여 정성껏 썼다. 우선 인간적으로다가 감사인사를 어찌 안 할 수가 있을까.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는 문장에  지금 너무 기뻐서 키보드에 절이라도 할 것 같은 어수룩한 심정이 행여 행간에 비칠 것만 같았다. 메일 읽을 때부터 어찌나 떨리든지 그날 하루 내내 들뜬상태였다는 한 문장을 결국 쓰고야 말았다. 생각해 보겠다거나 몇 군데 투고라도 더 해보고 결정할까 싶다는 그런 신중함은 전혀 고려할 생각이 없다.


그 후엔 바로 출판사 대표님과 통화를 했다. 목차와 함께 원고를 모아 보냈고 몇 번의 통화를 더 하고 드디어 만났다. 나를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실제 공적 인물과 현실에서 만난 것도 꿈  같은데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작가와 대화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출판사 대표님의 인상도 좋았다. 계약까지 했고 지금은 원고교정 중이고 올해 초 출간 예정이다. 


에세이 쓰기 수업 시간에 나는 글쓰기질문은 안 하고 작가의 원고 교정과정이 궁금했다. 배지영작가 선생님은 본인의 교정지와 출간 일정 다이어리까지 보여주면서 적극적이었다. 교정하다 보면 토할 때까지 원고를 읽게 된다는 사실적인 표현도 들을 수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호기심정도일 뿐 내 일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여하튼, 작가나 받는다는 그 원고 교정지. 이걸 내가 받다니. 두세 차례 교정지를 받을 적마다 여전히 들뜨면서도 한편으로는 시험지 채점받는 기분도 들었다. 빨간펜 선생님처럼, 혹시 빨간 줄이 비처럼 그어져 있는 오답채점지 일까? 참 잘했어요. 도장일까? 교정도 교정이지만  전체 맥락상 작가의 이야기가 들어가면 어떨지하는 의견에 따라 새로 나의 이야기를 한두 개 정도 쓰기도 했다. 

“기자님의 기사가 방금 채택되었습니다. 이 기사를 지인과 함께 나누세요~^^“


<오마이뉴스>에 첫 잉걸기사가 채택된 날을 잊지 못한다.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났었고 하라는 대로 지인들에게 죄다 자랑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지인의 범주를 정의하는 정신적 고충이 매번 찾아오긴 하지만, 첫 알림 문자를 내 인생 역사 한 페이지에 기록한 후로 꾸준히 글을 쓴 지 2년 만에 또 한 번 찾아온 경사가 나는 그저 초현실주의같이 느껴진다. 외려 이젠 노력파로도 살지 않겠다고 다짐해 버린 나이 오십이 넘어서 말이다. 오래 살고 볼일이란 말이 이럴 때 쓰라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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