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봉투를 샀다. 이 봄에 웬 김장? 내가 큰 비닐이 필요한 이유는 김치랑은 아무 상관이 없다. 침대 덮을 게 필요했다. 거의 한 달째 하고 있는 이불 빨래, 거기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한 것이 김장 봉투였다.
나의 첫째 고양이는 12살이다. 고양이 어르신, 일명 ‘묘르신’이다. 소변을 화장실이 아닌 곳에 보기 시작한 것은 여러 달 되었다. 병원 검사는 이상이 없었고 스트레스일 수 있으니 잘 살펴보란 말을 해주었다. 잘 살펴본다고 내가 원인을 알아냈다면야 다행이었겠지만 쉽지 않다.
고양이와 인간 중 누구든 하나가 상대의 언어까지 할 줄 안다면 진짜 좋겠다는 간절함이 바로 이럴 때다. 화장실 환경 개선이든 소변 훈련이든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다 눈 위에 서리 친다고 고양이의 실수보다 나의 대비마저 항상 반 발작 느리다.
여기저기 고양이의 소변을 쫓아다니며 뒤처리를 하면서도 이러다 설마 침대는 아니겠지 했던 나는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멍청했는가. 설마 설마 하던 일이 하루아침에 그냥 벌어지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게 없는데 말이다.
고양이 화장실을 침대에 올려놓기까지 해 보았다. 눈앞에 화장실을 보고도 이 화장실만 아니면 된다는 듯이, 누가 영역 동물 아니랄까 봐 자신이 개척한 새 침대로 화장실을 지정한 이상 그 구역을 고수하기로 한 것처럼 보였다.
최대로 가능한 모든 청도 도구가 출동했으나 침대 겉만 닦였을 뿐, 이미 소변을 머금은 침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라도 해야 했어서 부랴부랴 방수 패드를 구입, 침대 위에 깔았다.
방수는 될지언정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암모니아 냄새, 누워서 들썩거릴 때마다 증기 기관차의 연통처럼 칙칙 푹푹 뿜어져 나오는 그 쩐 내 나는 암모니아를 견디는 것은 두 어 달이면 충분했다.
다시 구입한 새 침대는 초동대처를 잘하여 암모니아로부터 지킬 수 있었으니 침대 위에 있는 것만 빨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불 빨래만 하다 정말 하루가 다 갈 지경이었다. 건조대에 널어놓은 이불은 다 마르지도 않았는데 세탁기에서 이불이 돌아가고 있었고 세탁실 바닥에는 그다음 이불이 차례를 대기하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큰 비닐을 생각해 내고 나서야 드디어 이불 빨래를 멈출 수 있었다. 김장봉투 3장을 테이프로 연결하여 침대 이불 위에 펼쳐 덮어놓았다. 외출하고 들어와 보면 그 비닐 위에 귀여운 옹달샘이 만들어저 있다.
새벽에 토끼가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도 못할 암모니아 옹달샘. 아늑한 스위트홈의 비주얼로는 꽤 형편없지만 처리하기로는 이불 빨래보다야 대충 열다섯 배는 간편해져서 고맙기까지 했다.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다가도 부스럭 부스럭 소리가 난다. 뒤돌아보니까 우리 야옹이가 침대로 뛰어 올라 비닐 위에서 자리를 봐가며 엉거주춤 영락없이 쉬~~할 자세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 바로 내 옆에서도 소리 없이 완전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우리 고양이, 사뭇 담담해 보이는 현장범의 표정. “나뷔야, 안 돼~!” 나는 소리를 질렀고 고양이는 놀래 뛰어 내려가서 어기적어기적 진짜 화장실로 가는 것이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학습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이 비닐하우스도, 옹달샘도 괜찮다. 나의 고양이와 함께라면.
고양이 소변은 정말 냄새가 고약하다. 일반세제에다가 표백 살균세제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 어느 날엔가는 고양이가 컴퓨터 의자에 오줌테러를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침대에만 온 신경을 쓰는 사이에 고양이는 의자를 노렸던 것이다. 버리고 또 사기엔 침대로 충분하지 않을까.
의자를 욕실로 굴려 들여놓고서는 스펀지가 있는 시트에 뜨건 물을 한참 부어대고 세제를 뿌려 이삼일을 불리고 표백 살균세제로 또 이삼일을 흠씬 적신 채 두었다. 샤워 호수로 충분히 물 뿌리는 것 말고는 헹굴 방법도 없다. 양지바른 베란다에 또 이삼일을 눕혀 겨우 말렸다.
그렇게 나를 고생시켰어도 나는 우리 고양이가 예뻐 죽겠다. 나이 든 고양이는 짠하다. 어지간한 장난감에 흥미가 없어진 지 오래고 잠이 늘었다, 잠만 잔다. 자는 모습도 전 같지 않다. 불러도 귀가 쫑긋하지 않을 정도로 시체처럼 잔다. 진짜 죽었나 식겁을 하고 흔들어 깨운 적도 있다.
나는 창 쪽으로 책상에 앉아 일하는데 하늘보다는 거실 고양이들을 볼 수 있도록 인테리어를 바꿔야 할 것 같다. 이제 보니 늙어가는 우리 고양이들이 내 등만을 보고 있었다는 생각에 슬퍼졌다. 아직은 딱딱한 사료도 잘 먹고 책상을 한 번에 팔딱 올라오지만 조만간 중간 받침대도 놓아줘야 할까 보다.
언젠가는 시력과 청력을 읽어갈 테고 그루밍도 하지 않을 날이 올 것이다. 질병으로 아파하고 수척해질 우리 고양이를 생각하면 눈물이 저절로 난다. 펫로스 증후군은 정말 상상조차도 하기 싫다.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인가. 많이 쓰다듬어주며 잘 살필 뿐. 남은 시간이 얼마일지 모르니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자 하는 자세만으로는 너무 무책임한 집사가 아닐까. 영양제 검색이나 하고 고양이와 나의 얼굴을 익힌 단골 동물병원을 만들어놓은 것 말고 뭘 더 할 수 있을지, 나중에 아주 나중에 지금 이 시간을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부터 공부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