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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충만 Jul 01. 2019

배스킨라빈스 광고의 진짜 문제

시인이 시어를 통해 심상을 남기듯, 베스킨라빈스 광고를 만든 사람은 무엇을 소비자들의 마음에 남기고 싶었을까?


첫 번째는 ‘톡톡 튀는 상큼한’ 맛이고, 두 번째는 ‘핑크 스타’라는 이름에 걸 맞는 핑크 색이다. 시인이 고르고 고른 시어처럼 톡톡 터지는 이미지와 팝팝 하는 배경음악, 다양한 이미지 효과들로 우리 마음에 그림을 그린다.


이런 의도를 잘 표현하기 위해 11살 여자 아이 모델을 기용했다. 성인 여성 모델이나 남자 아이 모델이 아니라 어린 여자 아이 모델이다. 톡톡 튀는 상큼함, 강렬한 핑크를 잘 표현하기 위해 어린 여자 아이 모델이 제격이라고 여긴 것이다.



광고를 보고 아무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 나처럼 불편한 사람도 있다. 꼭 여자 아이를 둔 부모나 여성만 불편한 것은 아니다. 아이가 없는 보통의 남성도 이런 광고는 불편할 수 있다.


내가 이 광고가 불편한 이유는 특정 장면 때문은 아니다. 치마 길이의 문제도 아니고, 어깨가 드러나는 옷을 입어서도 아니다. 화장도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동네 놀이터만 가도 아이들은 짧은 반바지를 입고 열심히 뛰어 논다. 더운 여름이라 민소매 티도 잘 입는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도 요즘은 화장을 많이 한다.


핵심은 우리 사회에서 톡톡 튀는 상큼함과 핑크핑크한 느낌을 표현하는데 성인처럼 꾸민 어린 여자 아이가 적합한 이미지가 되었다는 점이다. 통용되는 언어,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다. 마치 시인이 우리 마음에 상큼함과 핑크를 구체화하기 위해 여자 아이라는 시어를 사용한 것이다. 광고도 언어라서 보는 사람이 동일한 감각을 떠올릴 것을 기대하고 만든다.


나이가 지긋한 중년 여성 모델이 이번 광고의 모델이라고 상상해보자. 보는 사람이 만든 사람의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 11살 남자 아이를 모델로 해보는 것은 어떨까. 톡톡 튀는 상큼함과 핑크핑크한 느낌을 내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남자 아이는 맞지 않다. 상상 자체가 안 된다.


90년대 부르뎅 아동복 광고 모델로 나왔던 여자 아이들은 어떨까? 동일한 연령이고, 같은 성별이지만 90년대 여자 아이 모델에게 우리가 기대하는 이미지는 지금의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성인과 흡사하게 꾸며진 11살 여자 아이는 이런 컨셉을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 된 것이다. 말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같은 언어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그렇기 때문에 이번 광고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럽고 보기 좋은 광고라고 느껴지는 것이다.


90년대 부르뎅 아동복 광고



그럼 무슨 문제가 있는가?


11살 여자 아이를 만나보면 톡톡 튀는 상큼함이나 핑크핑크함, 성인 여성과 흡사한 느낌은 찾아보기 어렵다. 자연스러운 이미지도 아닐뿐더러 스스로 노력해서 도달할 수 있는 컨셉도 아니다. 어른들이 만든 환상이다. 하지만 그런 환상도 계속 소비되면 일상의 언어가 된다.


문제는 점차 우리 사회가 여자 아이에게 이런 이미지를 기대하고, 여자 아이 스스로도 이런 이미지가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는 점이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광고(특히 아이스크림 광고라서 아이들에게 더 잘 노출 될 것이다)에서 이런 이미지로 나오는 또래를 보는 아이는 어떤 느낌을 받게 될까?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기대하는 아름다움, 상큼함, 여성스러움은 이런 것이라는 것을 학습한다. 마치 언어를 학습하듯 아이는 이미지 언어도 빠르게 학습한다.


또한 어른들도 여자 아이에게서 이런 이미지를 기대하고 상상한다. 여기에는 남녀가 따로 없다. 많은 댓글에서 아이가 무척 이쁘게 잘 나왔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계속 반문하는 이유다. 낯설지가 않다. 이미 자연스러운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건 여자 아이에게만 주어진 짐이다.


남자 아이는 광고에서 어떻게 나타날까? 몇 달 전 나온 제스프리 광고를 보자(아래 참고). 주체적이고 천진난만한 장난꾸러기, 사고뭉치, 많이 놀고 건강해 보이는 아이. 우리 사회가 기대하는 전형적인 남자 아이다.


다행히 제스프리 광고에서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을 바꿔도 이야기는 성립한다. 우리 사회가 성 고정관념에 대한 고민을 점차 넓혀가고, 실제 여자 아이들이 광고에서 나온 것처럼 수동적이지도 다소곳하지도 않다는 경험적인 근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럼 베스킨라빈스 광고는 남녀를 바꿀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에서 여자 아이에게만 적용하는 이미지 언어가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이번 베스킨라빈스 광고가 90년대에 방영됐다면 어땠을까? 사회적으로 통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시도한다. 이를 통해 최근 들어 여자 아이들에게 특정 이미지가 사회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배경에는 이익을 얻는 그룹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는 베스킨라빈스의 광고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일상적인 이미지 언어를 차용해 광고를 만든 것뿐이고, 성인처럼 보이는 11살 여자 아이의 눈웃음과 새초롬함이 먹히는 우리 사회가 있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언어는 계속 사용될수록 강화되고 나중에는 표준어가 되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걸 그룹과 화장품, 아동복 패션, 방송과 유튜브 등 환상 속 꾸며진 여자 아이 이미지를 강요하는 시도는 있어 왔다. 그런 것이 언어를 구축하고 사람들이 사용하며 점차 퍼져나가고 이제는 메이저 광고 영역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단호해져야 한다.


“옆반 아이는 이뻐서 유튜브하면 10만각인데 전 공부도 못하고 이생망이죠.”(14살 여자 아이)
“넌 좋겠다. 나랑 똑같은 9살인데 6살처럼 어려 보여서.”(초등학생 뷰티 유튜버)
“엄마, 나 다이어트해야 돼? 뚱뚱해서 못 생겼대.”(7살 여자 아이)
“스트레스 1등이 성적이라면 2등은 외모인 거 같아요.”(13살 여자 아이)


이번 배스킨라빈스 광고의 진짜 문제는 입술 클로즈업도 아니고 우유가 뿌려져서도 아니다. 남녀의 대결은 더욱 아니다.


외모로 인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아이들. 사회가 강요하는 아름다움이 나다운 모습과는 너무 달라서 내 얼굴은 못 생겼고, 내 몸은 아름답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우리 아이들. 우리가 풀어야 할 진짜 문제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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