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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만 Mar 11. 2020

주부라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오늘 내가 주운 말 - 자기소개 시간, 어느 학우가


하는 일을 말하고 싶지만 주부라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일은 가치 없는 것일까.  

책을 낸 바 있고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오늘같이 자기소개 시간이 되면 참 난감해진다. 남이 하는 일이 뭐가 그리 궁금할까. 평일 낮 시간에 이렇게 상담 수업이나 듣고 있는 팔자라면 대부분은 직장인이 아닐 거라는 걸 누가 모르는가.

"작가예요" 하고 당당히 말하고 싶지만 글을 써서 번 돈으로 생활을 감당할 수 없으니 이것을 내 업이라고 말하기는 애매하다. 책을 낼 때 받은 계약금은 최저 임금 아르바이트생의 한 달 월급 정도였고 가끔 운 좋으면 받게 되는 공모전 상금은 그저 좋은 날 받게 되는 용돈 정도이니 내가 과연 직업인이라 말할 수 있을까 싶다.

거의 대부분의-사실 전부와 다름없는- 생활비를 남편이 벌어오는 데에 의지하고 있으니 어쩌면 나의 진짜 직업은 주부가 맞을지 모르겠다. 가사노동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시간당 10,569원(2019년 기준)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돈을 받는 게 아닌지라, 하는 일을 '주부'라고 말하기가 꺼려진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아팠다. 어느 학우분이 상담 수업 시간 첫날 자기소개를 하는데 이렇게 말했다.


"하는 일을 말하고 싶지만 주부라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이십 대 때, 나는 영화를 찍었다. 스무 살의 겨울,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를 보고 흔해 빠진 표현이지만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소리 나게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그 숨을 꼴깍하고 천천히 목 아래로 넘기며 두 눈이 부워오를 정도의 아름다움을 거기서 보았다. 그 뒤로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영화 워크숍 등을 찾아다니고 단편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일 년 정도 알바를 하고 3-4개월 정도 단편 영화를 찍었다. 이틀 간의 촬영에 한 달 넘게 준비를 하고 또 그 이상의 시간을 후반 작업에 썼다. 알음알음 면식을 익힌 이들의 촬영 현장에서 거마비 정도만 받고 스태프 일을 했다. 몇 편의 연출작이 생겼고 몇 편의 연출부 활동 경력이 쌓였다.

그럼에도 "무슨 일 하세요?"란 질문엔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반응은 항상 비슷했다.

"영화 찍어요. 장편까진 데뷔 못했고, 단편 영화..."

"와! 무슨 작품이에요?"

"말해도 모르실 텐데..."

"아~ 뭐 독립 영화 그런 거 찍으시나 봐요?"

그러고 나면 나의 멋쩍은 미소와 함께 대화는 끝난다.

몇 년을 그렇게 살았지만 영화를 찍어 번 돈이 없으니 난 아무것도 안 한 거나 다름없었다. 내 이십 대는 그냥 아무 일도 안 한 것이 되어버렸다.


주부란 일도 마찬가지다. 엄마란 일도 마찬가지다. 결혼을 하고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누군가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사 일이 생겼다. 육아라는 신체적, 정신적 노동이 필요해졌다. 그 필요에 의해 생겨난 '주부'라는 일은 왜 직업인으로서 당당하지 못한 걸까. 주부로 십 년, 이십 년 살았던 사람들은 왜 자기 인생에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고 말할까. 당장에 눈에 보이는 돈 몇 푼을 벌지 못한다는 그 이유만으로 자기 삶의 의미와 가치가 모두 사라져 버려도 정말 괜찮은 걸까.


나는 글을 쓴다. 여타 직장인들이 하는 것처럼 회사에 출퇴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일하는 시간에 나는 좋은 작품을 쓰고자 노력한다. 물론 그들만큼 일상적으로 일을 하진 못한다. 그것은 내가 그리 못하는 것이지 작가란 직업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럼 나는 직장인 정도의 전업 작가는 안 되더라도 알바 작가 정도는 되지 않을까.


나는 글을 쓴다. 이게 나의 일이다.

나는 집안일을 전담하고 있다. 이것 역시 나의 일이다.

언젠가 자기소개를 할 일이 있으면 그땐 당당하게 말해야겠다.


"저는 작가이자 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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