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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mi Dec 04. 2021

혼자 돌기 좋았던 올레 7-1코스

그러나 힘은 든다

Day 1. 고근산 돌면 7-1코스는 끝난 거에요.

올레 7-1코스 엉또폭포 근처에 있는 카페, 정원이 참 예뻤다

올레 7-1코스는 처음으로 혼자 돌았던 코스다. 서귀포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 신시가지를 거쳐 고근산 정상을 넘어 제주 구시가지에 위치한 제주올레여행자센터까지 이어지는 코스. 산길이나 인적이 드문 밭길같이 중간중간에 혼자 걷기에 조금 무서운 길이 있긴 했지만 처음 혼자 걷기를 성공한 코스다. 두번에 걸쳐 걸어, 약 한달정도 간극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시작하자마자 내리던 비


첫날, '이번엔 혼자 도는 올레길이다!'라며 나름 큰 결심을 하고 올레길 트래킹을 시작하자 마자 비가 왔다. 신시가지에 위치한 서귀포 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해 겨우 5분쯤 걸었을때 비가 오기 시작했다. 왠지 김이 빠졌다. 다시 집에 돌아갈까 고민을 했지만  그렇게 어중간하게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근처 베스킨라빈스에 들어가 커피를 시키고 억지로 기다렸다. 오락가락하는 제주도 날씨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으니 갑자기 비가 온 만큼, 비가 계속 오진 않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30분쯤 기다리니 비가 좀 잠잠해졌다. 우산도, 우비도 없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준비도 허술하고 혼자인만큼 조금 더 걱정이 되긴 했지만 원래 뭔가를 하다보면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는가.


엉또폭포

7-1코스 초반부에는 엉또폭포가 있다. 예상치 못한 비로 잠시 코스 중단을 했었기 때문에, 혹시 엉또폭포를 볼 수 있을까 아주 사아아알짝 기대했지만 결국 이 날은 폭포를 보지 못했다. 비가 쏟아붓듯이 와야 엉또폭포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내가 올레7-1코스를 돌던 날은, 비가 정말 살짝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비가 많이 오면, 몰려든 관광객들로 인해서 엉또폭포를 보기가 힘들다. 지난번에 정말 비가 많이 왔을 때, 회사 동료들과 보러 왔지만 주차장이 된 진입로만을 보고 한참을 기다리다 돌아가야 했다.)  엉또폭포 근처 무인카페의 스크린을 통해 시원하게 내리는 엉또폭포를 보며 아쉬움을 달래본다. "그래, 오늘은 메마른 엉또폭포를 보았으니 다음에는 시원하게 내리는 엉또폭포도 볼 수 있겠지. 둘 다 봐야 엉또폭포를 제대로 본 거 아니겠어? 지난번엔 차만 보고 폭포는 구경도 못했었잖아"라고 나름의 정신승리를 한다.  


고근산도 산이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엉또폭포를 지나 고근산으로 향했다. 다행히 걱정했던 비가 계속 오지는 않았는데, 고근산 정상을 찍기가 생각보다 힘들었다. 이것도 산이라 이건가. '제주도에는 한라산 말고는 없는거 아니였어?' 라고 생각하다 큰 코 다쳤다. 습하고 덥고, 혼자 걷는데 무섭고, 외롭다 보니 온전히 나의 체력에만 더더욱 집중하게 됐다. 고근산 산책로 정비를 하는 기간동안 조금 더 수월한 우회로를 사용했다는데, 의도하진 않았지만 내가 7-1코스에 도전했을 때는 산책로 정비가 끝난지 얼마 안된, 아주 기가막힌 타이밍이었다. 조금 더 일찍 도전할걸 하는 후회를 조금 하긴 했지만, 그래도 묵묵히 정상을 찍고 내려가는데 나름 기분이 상쾌했다. 하지만 고근산을 내려오니 나머지 올레길을 마무리할 열정이 동나 있었다. 다음 번에 이어서 돌아야지. 고근산 정상 찍었으면 오늘 할 일은 다했다! 하며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Day 2. 서귀포 구시가지 돌기

그로부터 약 한달이 지난 11월 초, 7-1코스 나머지를 돌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다. 가야지, 가야지 생각은 늘 하면서도 한번 흐름이 끊긴걸 다시 이어붙이긴 역시나 힘든 것 같다. 우리네 인생이 무언가를 하든, 혹은 하지 않든 늘 어떤 이유가 생기고 그런게 당연하다. 차가 없는 나로써는 역주행으로 도는 것이 돌아올 때 더 좋을 것 같아, 종점에서 지난 번 그만둔 지점까지 돌기로 했다. 구시가지에 위치한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서 걷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시작과 동시에 스탬프를 다 찍었다. 그리고 역순으로 돈 걸 증명이라고 한 듯 종점 스탬프를 거꾸로 찍었다. 조금 어이가 없는데, 나름 의미부여가 되는게 재미있었다.

역시나 귤의 고장 서귀포답게 여기저기서 귤을 파는 노점들이 보였다. 이게 바로 제주의 모습이지, 정겹다. 무언가 다른 목적을 갖고 걷는 게 아니라, 걷는 그 행위 자체에 집중을 하며 걸음을 걸으면 때론 다른 것들이 보인다. 늘 내가 지나치는 공간이고, 생활하는 공간이지만 내가 늘 걷던 길과는 살짝만 다른 길을 걸어도 다른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는 올레길을 걷는게 좋다. 환경도 물론 나를 만들지만, 내가 환경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나를 둘러싼 환경도 분명 달라진다.

이런저런 이유로 많이 지나치게 되는 구시가지이지만, 이런 공간이 있는 걸 알았을까. 봉림사를 지나 구시가지에 위치한 공원을 걷는데, 마음이 평안해졌다. 그렇게 공원을 지나고, 또 다시 귤밭을 지나고, 하논분화구를 지나고. 고근산이 포함된 전반부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올레길을 완주했다. 혼자 걷는 만큼 이어폰이 친구가 되어주었다. 10km 남짓 걸었을까. 지난번 그만두었던 서호마을다목적회관 부근까지 완주 끝! 그러고도 체력이 좀 남아 집까지 걸어갔다. 전반부보다는 훨씬 수월했던 7-1 후반부. 역시, 7-1코스는 고근산만 돌면 다 돌은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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