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버릇인 듯, 혼자 미는 유행어인 듯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ㅇㅇㅇ에 영혼을 뺏기다’이다. 뭔가 하나에 미쳐서, 그 하나만 생각하느라 다른 것은 아오안(아웃 오브 안중)인 상태를 일컫는 말인데 사랑에 영혼을 뺏기다, 돈에 영혼을 뺏기다 등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 내가 올해, 2022년에 영혼을 뺏긴 단 하나의 것을 꼽는다면 의심의 여지없이 부동산이다.
약 7년 전 처음 독립을 시작한 이후로 3개의 집을 거치며 정말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집마다 추억도 많았고, 그 집을 떠날 때마다 그 추억들이 전생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추억이 담긴 장소, 식당, 카페 등은 그 가게가 망하지만 않으면 언제든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많은 추억과 에피소드가 있는 집은 찾아갈 수 없다는 게 참 슬프고, 아쉬운 일이다. 물론 갈 수야 있겠지, 무단침입으로 경찰서도 갈 각오를 해야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내 인생의 특별한 순간에 집이 있었지만 올해만큼 정말 다이내믹하게, 인생을 저당 잡힌 듯 부동산이 내 모든 순간에 있던 적은 처음이다.
재앙의 시작은 작년 12월 말에 올라온 SH주택공사의 행복주택 공고문이었다. 새 아파트에서, 저렴한 월세로, 최대 6년 동안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조건이었고, 그런 사실을 나 말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기에 경쟁률 또한 치열했다. 영등포 소재의 회사 덕분에 나는 1순위로 영등포구에 있는 행복주택에 지원할 수 있었고 무려 144:1의 경쟁률을 뚫고 1차 서류 전형자가 되었다. 이제 경쟁률은 5:1로 줄어들었다. 서류를 열 번 넘게 꼼꼼하게 확인한 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등기를 보냈다. 이때가 2월이었고 4월에 최종 발표가 예정되어 있었다. 최종 결과는 무조건 추첨이었다. 이때부터 각종 무속신앙 맹신이 시작되었는데 등산을 가면 꼭 돌을 쌓아서 기도하고, 조계사에 가서 촛불 공양도 했었다. 미쳤었죠.
“무조건 될 거야!”라는 주변의 말에 “에이 아니야..”라고 하면서도 매일 평면도를 보며 어떤 인테리어를 할지 고민하던 중이었다. 오늘의 집 어플에 스크랩한 물건이 쌓여가자 발표일이 다가왔고, 발표일 당일 팀원들에게 “저 5시쯤 울면서 뛰쳐나가면 그냥 떨어진 거라 생각해주세요.”라는 농담을 하면서도 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사람이 이렇게 맹목적으로 믿으면 뭐다? 망한다! 결국 나는 희망의 끈을 품을 수도 없는 예비번호를 받고 광탈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차라리 될 수도 없는 예비번호를 받은 것이 다행이었다. 재빨리 플랜 A, B, C를 생각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행복주택이 떨어진 시기와 당시 살던 집의 전세 만기일이 너무 붙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3주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행복주택이 되었다면 빠르게 단기 오피스텔을 구해서 살다가 입주할 생각이었는데 그것이 무산되자 다른 작전이 필요했다. 단기로 갈 이유가 없으니 빠르게 새로운 집을 구하자는 생각이 서자 정말 수능 공부하는 것처럼 밤새 네이버 부동산과 직방, 피터팬을 뒤지고 주변에 아는 공인중개사 분을 소개받아서 한 다가구주택 전세를 둘러봤다.
생각해 보면 이때 제정신이 아니었다. 집도 다가구에, 컨디션도 딱히 좋지 않았고, 2억 5천이라는 전세가를 그 동네 시세와 비교해 볼 생각을 못했다. 하지만 이삿날이 촉박하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계약을 했고, 재난은 예상된 것이었다. 자세히 설명하면 부동산 책 한 권이라 길게는 못 쓰지만 일단 다가구 주택에 전세로 들어갈 때는 무척 주의해야 한다. 다가구는 전체 건물이 한 명의 주인으로 되어있는데 혹여나 집주인에게 문제가 생겨서 건물이 경매에 넘어갈 경우 그 집에 등록된 선순위 보증금이 차례대로 먼저 빠져나간다. 그래서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의 보증금이 얼마냐가 중요하고, 이 금액에 따라 은행은 대출 여부를 결정한다. 공인중개사는 집주인에게 물어본 후 내 앞에 선순위 보증금이 정확히 10억 원이라고 했지만 내가 직접 확정일자 열람을 떼어보자 10억 원이 훨씬 넘는 숫자였다. 은행은 선순위 보증금이 너무 많단 이유로 대출을 거절했고, 나는 열흘 간에 싸움 끝에 계약금을 온전히 돌려받을 수 있었다. 집주인은 다른 은행은 된다는 대출을 한 곳만 알아보고 결정했다며 나를 까다로운 사람 취급했다. 하지만 애초에 한 곳이라도 대출을 거절한 은행이 있다는 거, 다가구주택은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어렵다는 점, 시세보다 높은 전세금이었다는 것은 나에게 충분한 계약 파기 사유였다.
결국 나는 또 갈 곳이 없어졌고, 이때가 집을 비워야 하기 10일 전이었다. 결국 빠르게 들어갈 수 있는 3개월 단기 임대 오피스텔을 구했다. 엄마가 볼까 봐 여기 금액은 못 적지만… 거의 서울에서 뉴욕 체험을 할 수 있는 금액이랄까. 그래도 집 문제로 아픈 머리를 위한 치료약이라고 생각해 계약했고 무사히 이사까지 마쳤다. 이제 3개월 동안 새로운 집을 또 구해야 했다. 작년 12월부터 시작된 고민이 5월까지 이어지자 머리에는 부동산 말고는 다른 지식을 쌓을 여유가 없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은 그나마 할 수 있었기에 운동을 하고 걸어 다녔지만 다른 지식을 머리에 넣는 것은 할 수가 없었다. 영어 공부, 독서, 피아노 공부 등 올해 목표로 해놓은 여러 공부들이 있었는데 시도도 못하고 매일 퇴근하면 누워서 부동산 어플만 볼뿐이었다.
그리고 매일 시간이 날 때면 동네를 돌아다니며 임장을 다녔다. 역과의 거리, 주변 환경, 보안 등을 고려하여 10개 정도의 마음에 드는 오피스텔을 추렸고 그것들을 모두 네이버 부동산에 관심 물건으로 등록했다. 그러면 그 물건에 새로운 매물이 등록될 때 나에게 알람이 울린다. 보고 괜찮으면 해당 공인중개사에게 연락해서 집을 보러 갈 수 있는지 문의했다. 하지만 아무리 허위매물이 없다고 광고해도 전세 혹은 월세 물건의 80%가 허위매물이더라. 늘 같은 패턴이니 지겹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사실 그 집이 대출이 안된다.’ ‘어제 나갔다.’ ‘이사 날짜가 한참 뒤다’ 별별 이유로 현재 그 물건은 볼 수 없다고 말하며 나에게 현재 예산과 희망하는 동네를 물어본다. 예산을 말하면 그 가격에는 구할 수 없다고 하며 더 높은 가격에 매물을 소개해준다. 나는 이걸 부동산 가스라이팅이라고 명명했다.
수많은 가스라이팅을 당한 끝에 나름 진짜 매물을 보는 눈이 생겼는데 그 팁을 몇 가지 전달하고자 한다. 일단 진짜 매물은 이사 가능 날짜가 정확히 명명되어 있다. ‘즉시 입주’ 이런 거는 거진 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7월 말이든, 정확하게는 7월 22일이든 이런 날짜가 명시되어 있는 물건을 찾자. 그리고 진짜 매물은 생활감 있는 사진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신축 입주 전 사진? 이것도 가짜 매물일 확률이 높다. 마지막으로 네이버 부동산에 ‘집주인 확인’이라고 쓰여있는 마크가 있다면 진짜일 확률이 높다. 보통 네이버에 매물이 오르면 그 매물의 실제 집주인에게 연락해 실제 여부를 확인하는데, 그렇게 확인된 물건에는 마크가 붙기 때문이다. 보통 오피스텔이나 큰 연립주택은 근처에 전담 공인중개소가 있기 마련이다.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았다면 직접 공인중개소를 찾아가 번호를 남겨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느낌일 수 있는 네이버보다 직방에 좀 더 허위매물이 덜 한 것 같다. 직방 위주로 찾아보는 것도 추천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부동산 야매 전문가가 되어갈 때, 딱 내 조건에 맞는 물건을 발견했다. 바로 연락해서 다음날 집을 봤고, 당일에 계약 의사를 정해 가계약금을 보냈다. 단점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단점을 상쇄할 장점이 있었기에 이 집을 최종 결정했다. 당일 바로 결정하게 된 것에는 그동안의 공부가 빛을 발했다. 애초에 그 오피스텔의 위치와 준공연도를 알고 있었고, 주변 비슷한 평수 시세, 그리고 흔하지 않은 투룸 구조라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바로 계약 의사를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집도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집을 사지 않는 한 계속해서 벌어질 일이니 겸허하게 수긍하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가계약금을 보내자 거짓말처럼 부동산에 뺏긴 영혼이 점차 돌아오게 되었다. 이제 부동산 어플을 안 보게 되었고(대신 오늘의집 어플은 보고 있지만), 주변의 오피스텔을 훑어보며 걷던 버릇도 사라졌다. 불안정한 주거가 사람의 심리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었던 반년이었다. 이번 집도 언젠가는 떠나야겠지만 최소 2년 동안은 부동산 때문에 골머리를 썩힐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감옥에서 해방되는 느낌이다. 7월 이사 이후에는 제발 부동산 대신 다른 것에 영혼을 뺏겼으면 하는 마음이다.
부동산 이제 그만 내 뇌에서 나가주길…
2022.6.27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