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를 회사에 놓고 와서 핸드폰에 키보드 연결해서 쓰는 중. 고수는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데, 난 고수가 아니니 무효. 오늘의 글쓰기는 힘들어서 아주 간략하게 쓰려함.
혼자 산지 6년 차, 혼자 살면서 가장 먹기 힘든 음식은 무엇일까. 비싼 참치회? 냄새나는 삼겹살? 바로 비빔밥이다. 김밥천국에 있는 상추 조금, 열무 조금 든 그런 비빔밥 말고 삼순이가 소주에 함께 ‘캬하’ 하고 먹는 반찬 가득한 집 비빔밥 말이다.
가족들이랑 살 때는 엄마가 밤에 출출할 때 만들어줬던 평범한 비빔밥이었는데, 혼자 살 때는 최고 사치 음식이 되어버렸다. 그냥 마구잡이로 비빌 때는 몰랐다. 한 그릇의 비빔밥을 위해서는 7첩 반상급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독립 솔로 무비를 찍을 수 있는 히어로들을 한 데 모아서 어벤저스를 만드는 것과 같달까.
언제 한번 사무치게 비빔밥이 먹고 싶어서 역대급 도전을 한 적이 있었다. 라인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금치나물, 무생채, 멸치볶음을 생각했는데 하나하나 이런 난관이 없더라. 그나마 이 중에서 시금치가 제일 쉬웠다. 시금치 데치고, 씻고, 다진 마늘, 깨소금, 참기름으로 버무리니 나름 맛이 나더라. 그다음 무생채? 무 썰다가 손 썰 뻔했다. 결국 강판에 밀어버렸는데 즙이 많이 나와서 양념 간도 애매해진 이상한 무생채가 되어버렸다. 멸치볶음은… 마치 멸치회를 먹는 것처럼 비린 맛이 강했는데 그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래도 고추장, 참기름, 계란 후라이로 버무리면 다 맛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야무지게 비벼봤다. 이렇게 고생했는데도 맛은 없었다는 슬픈 결말로 이어지진 않았다. 고추장, 참기름이 큰일 했다. 하지만 뭔가 20% 부족한 맛이었고 그 이후로 직접 비빔밥을 만드는 시도따위 하지 않았다. 비빔밥의 매력이란 자고로 빠르고 간략하게 나트륨과 탄수화물로 허기를 채우는 맛이거늘, 반나절 걸려서 먹으니 이맛도 저 맛도 아니더라.
해답을 찾은 곳은 망원시장이었다. 1인 가구의 핫플레이스답게 망원 반찬 가게에는 특이한 구성의 상품을 팔았는데 바로 1인 비빔밥 세트였다. 고사리, 시금치, 도라지, 무생채 등의 나물이 조금씩 담겨있었는데 5천 원어치면 두 번은 먹을 수 있는 알짜 구성이었다. 그런 점이 재래시장의 매력이고, 그걸 사랑했는데 왜 영등포에는 없는 건지 아쉬울 뿐이다.
시장이 사라진 지금, 남은 해답은 하나였다. 엄마와의 화해. 주말에 엄마 집에 가서 비빔밥으로 쓸 반찬들을 조금씩 훔쳐왔다. 싫어하는 도라지나물은 과감히 빼고 내가 좋아하는 오이지, 멸치, 오징어채를 가져왔다. 쓱쓱 비비다가 너무 색이 진하다 싶으면, 밥을 더 넣고, 색이 너무 연하다 싶으면 반찬을 더 넣고. 마치 미술 공부하는 것처럼 색상을 조절할 수 있는 게 비빔밥의 매력 같다. 모든 것은 살로~
물론 과하게 섭취한 탄수화물은 뱃살로, 나트륨은 내일의 붓기가 되겠지만 밤에 와구와구 먹는 비빔밥의 맛을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소주 안 먹은 게 어디야. 쩝
2022.7.4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