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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사삼공삼 Apr 24. 2021

사람이 무섭지 귀신이 무섭나

아니 난 아직 귀신이 더...

최근 한 달간, 화요일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길어지면 일요일까지 서울에 일정이 꽉 차 있었다.  이렇게 서울을 자주 가는데, 춘천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아침 일찍부터 잡힌 스케줄도 있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춘천에 돌아가서 쉬는 걸 포기하고 명동 쪽에 숙소를 잡았다.

아주 합리적인 가격의 게스트 하우스였다. 호스트는 친절했고, 방도 가성비를 따져 보면 나쁘지 않았다. 뭐랄까, 어우, 이 가격에 이 정도면 감지덕지야! 할 정도라고 하면 얼추 맞겠다. 2층 침대가 두 개 놓인 4인실 여성 전용 도미토리였는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거의 항상 나 혼자 방을 썼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이 모든 일은 혼자 있을 때 일어난다.

나는 귀신을 무서워한다. 정말로 진지하게 무서워한다. 공포 영화? 근처에도 못 간다. 가끔 인스타에 올라오는 무서운 썰 같은 것도 누르지 않으려 애쓴다. 저런 거 좋아하지도 않는데 도대체 왜 올리는 거야! 하면서. 귀신이 무섭지? 하고 생각해보면,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한 것이, 파악할 수도 없는 존재라는 점이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무지에 대한 공포.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

어쩌다 가위에 눌리면, 이 공포와 두려움은 놀랍게도 엄청난 공격성으로 변한다. 아니 무섭다며…? 무서우니까 퇴치해야지! 어제도 그랬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세 시간이 넘게 사람들과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겨우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서 침대에 쓰러졌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꿈을 꾸다가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아. 가위인가.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피곤해 죽겠는데 제대로 잠도 못 자게 만드는 이 귀신을 공격해서 쫓아버리겠다는 일념으로 인상을 잔뜩 썼다. 그렇게 잠에서 반쯤 깨어났는데, 옆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아! 귀신이 아니라 옆 침대를 쓰는 다른 사람이 늦게 들어왔나 보다. 사람 소리였네. 호호. 안심이다.

그렇게 푹 자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방은 내가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 혼자였다.




약 2년쯤 전, 일이 있어서 대만에 간 적이 있다. 10킬로는 우습게 넘어가는 캐리어를 끌고 두 시간 동안 대만 지하철과 기차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결국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자그마한 방에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가 있었고, 저녁 7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진이 다 빠져버린 나는 후다닥 씻고 기절했다. 세상 모르고 잠들었다가, 누군가 침대를 흔드는 꿈을 꾸고서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떴는데, 침대가 정말 흔들리고 있었다.

잠에서 덜 깬 정신으로 음? 침대가 왜 흔들리고 있지? 내가 잘못 느끼고 있나 싶었다. 그러다 책상에 올려둔 화장품 통을 보았는데,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 그렇담 침대만 흔들리는 건가? 왜 침대만 흔들리는 거지? 침대 밑에 사람이 있어서 침대를 흔들고 있는 건가..? 하고서 다시 기절했다. 네 시간쯤 뒤 다시 깨어나서 정신을 차리고서는 기함했다. 진짜 지진이었던 것이다. 지진 때문에 침대가 흔들거려서 잠에서 깼는데, 침대 밑에 사람이 침대를 흔들고 있는 줄 알았어! 라는 내 말을 들은 친구들은 어이없어했다. 그 상황에 잠이 오냐고.

침대 밑에 사람이 침대를 흔들고 있는 건가? 라는 의문이 들고서 넉살 좋게 다시 잠들 수 있었던 건, 사람은 무섭지 않기 때문이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고서 사람인가 보구나, 하면서 안심했던 건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내게 해를 끼칠 수 있는 것은 이미 죽은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직 사람보다 귀신이 더 무섭다. 철이 들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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