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림고개를 올라가는 언덕엔 수제 돈가스가 엄청 맛있는 집이 있어. 가게 주인분이 주문을 잘못 받아서 돈가스도 메밀국수도, 심지어 스프에 레모네이드까지 먹게 되었던 날. 겨우 반쯤 먹고 나머지는 남겼다고 했더니, 다음엔 꼭 같이 가서 남김없이 다 먹어 버리기로 약속했던 거.
기억나?
언덕을 다 올라가면 잠깐 평지가 나와. 오른편으로 길이 하나 더 있는데, 거기엔 우리 또래 친구들이 직접 농사를 지어서 요리하는 식당이 있어. 속이 편안한 한식이야. 입맛이 없을 때 가끔 그 곳에서 명란 파스타와 카레를 시켜 먹곤 했는데, 정말 맛있는 곳이야. 꼭 같이 가보고 싶었어.
이제 내리막이야. 내리막길엔 아주 고즈넉한 독채 숙소가 있어. 성인 두 명만 예약제로 받는 곳이래. 벌써 내년 2월 예약을 받기 시작했더라. 비싸고, 조용하고, 좋은 곳 같아 보였어. 가끔은 한량처럼 저런 곳에서 단둘이 호사를 누려 보는 것도 좋았겠지.
조금 더 내려가면 맨드라미와 도라지가 심겨져 있는 커다란 화분이 길가에 놓여 있어. 여름엔 보라색 별 같은 도라지 꽃이 한가득 피더라. 사실 난 흰 도라지 꽃을 더 좋아하지만, 너와 함께 걷는다면 보라색 도라지 꽃도 꽤 귀여워 보일 것 같다고 생각했었어.
자, 이제 다 도착했어. 여기가 첫서재야. 야트막한 담이 있고, 담 너머엔 수 십년은 되었을 것 같은 키 큰 하얀 라일락 나무가 있어. 그 밑에는 튼튼한 나무 벤치가 있어서, 라일락 꽃이 반겨주는 초여름 봄날이 오면 그 아래에서 꽃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는 그림을 그릴 수 있어.
오래된 나무로 만들어진 문 손잡이를 잡고 큰 유리문을 힘차게 열면, 따스한 공기가 우릴 감싸안을 거야. 서재지기 두 분이 다정한 눈빛으로 어서 오라며 한껏 낮춘 신난 목소리로 맞아 주시겠지. 그리고는 귀여운 메뉴판을 가리키면서 뭘 마실 거냐고 속삭이실 거야.
네가 메뉴를 고민하는 동안 재빨리 오른쪽으로 걸어가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창가 앞 테이블이 비었는지 한번 슥 볼게.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다. 그럼 너랑 나란히 앉아서 통유리창 밖 라일락 나무를 보면서 그림책을 읽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다 졸리면 고개를 쭉 빼서 왼쪽 방에 있는 커다란 안락의자가 비었는지 볼 거야. 생긴 것만큼 편한 그 의자는 정말 묘한 매력이 있어서, 반드시 여기 앉아서 이 책을 다 읽을 테다! 하고 굳게 다짐한다 해도 어느 순간 꼬르륵 잠들어버리거든. 의자와 찰떡같이 어울리는 책 모양 방석은 아마 돈키호테였던 것 같아. 내가 잠들었을 때 네가 곁에 있어주면, 영문도 모른 채 잠들었다 해도 좋은 꿈을 꿀 것만 같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