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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miyou Sep 12. 2020

글쓰기 전공자의
빈 문서 포비아 극복 시도기 ①

나는 글쓰기를 전공했다. 


라고 쓰지만 그렇게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글을 쓰지 않고, 잘 쓰지도 않는다. 

이제는 글 쓰는 것이 두려워지는 단계에까지 온 것 같다.


내가 문예창작을 전공하게 된 것은, 잘하는 것이라곤 

말랑거리다 못해 질퍽거리는 감성에 파묻혀 

글자 몇 자를 끄적이는 것뿐이었고, 


노래만 하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지원해주겠다는 

부모님의 바람에 올라탄 

첫 번째 꿈을 포기한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이다.

 

물렁물렁한 감성에 매일같이 듣는 것이라곤 라디오뿐이었고, 

라디오 작가가 되고 싶었다. 

라디오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정보를 찾다 보니 

내가 진학해야 할 과는 문예창작이었다.

(그 꿈도 내려놓은 지 꽤 오래되었다)


겨우겨우 대학 문턱을 넘어서고 보니 사실 나는 글을 쓰고 싶어 온 것이 아니었고, 

내가 입학한 대한은 예술이 아닌 인문계열의 문예창작이었다. 

그리고 나는 소설도 시도, 수필도 어쭙잖게 쓰면서 

교수님 눈에 들고 싶어 안달 난 그저 그런 학부생에 불과했다. 

시고 소설이고 수필이고 잘 쓰지 못하는 대신, 열심히 썼다. 


마감에 맞춰 수많은 습작품을 냈고,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대학생활의 방점이 노는 것에서 배우는 것으로 조금씩 옮겨가다 보니 

욕심도 났고, 최선을 다하기도 했다. 


이만하면 ‘문예창작’을 전공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자신감도 생겼다. 

적어도 졸업장을 받고 대학에서 방출되기 전까지는.


지난 2월 졸업을 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것이 어느덧 6개월을 넘기고 있다. 

일반적인 취업 준비생과는 조금 다른 루틴을 따라가고 있어서인지 이렇다 할 성과물이 없다. 

이것저것 건드려본 것은 많지만 결과물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게으르기 때문이다. 


전공생일 때는 그래도 컴퓨터 앞에 자주 앉았고

(과제를 위해 억지로라도) 

그러면 뭐든 써졌다. 


‘빈 문서’가 썩 두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문예창작’ 학사 졸업장을 가진 

‘빈 문서’가 두려운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 잘 쓰고 싶다는 욕심에 둘러싸이다 보니 쓰는 것이 두려웠다.


사실 어릴 때부터 뭐든 꾸준히 하는 걸 잘 못했다. 

집중력도 짧고 싫증도 잘 내는 탓에 뭐든 금방 사랑하고 푹 빠지고 금방 빠져나왔다.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소문난 '금사빠'였다


일기장 한 권을 가득 채운 적이 없고, 

어느 연예인 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좋아한 적이 없다. 

꾸준히 채워온 기억이 없는 터라 

대체 나란 인간은 어떻게 되어먹은 구조일까 

궁금해하기만 오조 오억 번째...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쓰다 말 것 같다. 

호호 어디에도 올리지 못할 나의 끄적임. 

자기비판의 주기가 짧아질수록 더 불안해진다. 

이제 그만 자야지. 내일은 꼭 마감할 수 있길.


아무튼, 글쓰기를 전공한 빈 문서 공포자의 공포 극복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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