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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일팔 May 19. 2023

파리

161003 - 161008



파리의 어머니 세느(Seine). 그 젖줄을 따라 내로라하는 프랑스의 자손들이 그녀를 끼고 돈다. 살갗 하나 없이 차가운 금속의 뼈만으로 육체미를 뽐내는 에펠탑을 시작으로, 혁명과 약탈의 피로 점철된 전설들이 장엄하게 루브르의 벽을 따라 써내려 간다. 오르셰는 공감할 수 없지만 경이로운 인상들과, 지금이라도 캔버스를 찢고 뛰쳐나올 듯한 고전들의 향연이다.



레오 카락스가 사랑을 이야기하는 퐁네프 다리. 우디 앨런이 비에 젖는 파리를 찬양하는 알렉산드르 3세 다리. 이 다리들을 따라 걷다 보면 지금 당장 무도회가 열려도 어색하지 않을 궁전들과, 왕족들이 마차를 타고 거니는 정원들이 나온다. 그리고 또 한 골목만 돌아도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이 무심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내려본다. 이곳에서 파리는 불멸한다.



신화에서 스틱스 강은 올림푸스의 신들에게 불멸을 선사하고, 지상과 저승의 경계를 가른다. 세느 역시 ‘그랑제콜(Grandes Ecoles)’로 대표되는 프랑스 엘리트주의를 그대로 베껴내어 파리의 지상과 저승을 가르고 있다. 빛이 찬란할수록, 어둠은 더 깊게 내린다.



세느의 세찬 동맥이 희미하게 느껴지는 곳에, 몽마르뜨 언덕이 사크레쾨르 성당을 이고 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이름을 듣기만해도 어지러운 가지각색의 와인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곁들인다. 그 군중 속에서 와인 한 잔의 가격에 자신들의 재주를 파는 사람과, 그 한 잔도 못되는 가격에 에펠탑을 파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 마저도 없이 빈 손으로 나와 남의 가방을 예의주시하는 소매치기들은 세느의 찬란한 빛이 만들어내는 어둔 그림자 속을 헤맨다.



몽마르뜨에서 더 멀리, 더 북쪽으로 가면 파리의 끝에 벼룩시장이 나온다. 이곳의 사람들은 지옥의 삶의 생생하게 살아간다. 가짜를 팔고 그 가짜마저 훔치는 사람들. 죽은 듯이 누워있는 사람들과 죽은 것들의 시체가 아무도 치울 엄두를 못 내는 쓰레기같이 버려져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빛이 닿지 않는 이 칠흑 같은 어둠에 익숙해진 듯, 그저 서로의 어깨를 부비며 제 갈 길을 간다.

파리의 삶은 한 장의 아웃 포커싱 기법으로 찍은 사진과 같다. 모든 이들 카메라를 들고 초점을 맞춰 셔터를 누르는 도심 한복판 강가의 삶은 선명하고, 그곳에서 멀어질수록 흐릿하게 뭉개져 버린 변두리의 삶은 이름도, 형체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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